아빠를 다시 본 건 그때였다
은경 언니가 일을 끝내고 서큘러키로 넘어왔을 때는 저녁 여섯 시가 다 되어서였다.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허리케인 그릴에서 폭립과 생맥주를 먹으며 서큘러키의 분주해지는 저녁을 내려다보았다. 언니에게 아빠를 보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다 잘 계시지, 라고 묻는 형식적인 안부에 여기까지 와서 굳이 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렇다 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마주 보고 앉아 폭립을 먹게 될 줄 알았니?”
언니는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그때 폭립 빼곤 다 먹었던 것 같아. 진짜 온갖 음식을 다 만들어주셨으니까.”
“그랬지. 네가 유독 잘 먹기도 했고.”
매일 아침과 저녁, 하숙집 식구들은 1층 공용 주방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같은 시간에 밥을 먹는 사람은 셋 또는 넷이었고, 당시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던 은경 언니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마칠 즈음이면 들어와서 4인용 식탁에 빈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밥을 먹었다.
하숙집에서 지내는 2년 동안 언니와 나는 근처 맛집과 카페를 찾아다니거나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영화나 공연도 함께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니에게는 늘 약간의 벽 같은 게 있어서 그 벽 너머의 영역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런 언니가 반려묘 레이를 내게 맡긴 건 그래서 나에겐 꽤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그해 겨울, 언니는 석사 과정을 마친 기념으로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엄마는 고양이 털 알러지가 있어서 레이가 있는 방에는 아예 들어오질 못해. 일주일 정도만 지음이 네가 돌봐주면 좋겠어.”
나는 언니가 메모해 준 레이 돌봄 매뉴얼에 맞게 매일 레이의 화장실을 치우고, 자동 급수대에 일정량으로 물을 채웠다. 사료통이 비기 전에 밥그릇에 요일별로 조금씩 다른 사료를 넣어주었고, 기분이 내킬 때는 쥐포 냄새가 나는 간식도 실컷 먹였다. 작은 방울이 달린 장난감으로 바닥을 퉁퉁 치며 레이와 놀아주고 나면 내 옷은 온통 레이의 털이 붙어 엉망이 되었는데, 아무리 떼어내도 레이의 털은 콧잔등 위나 미간 사이에 기어이 한두 개씩 들러붙어서 하루 종일 나를 거슬리게 했다. 돌돌이로 옷에 붙은 털을 제거하고, 비누 거품을 가득 내어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레이는 귀여웠지만, 레이의 털은 성가셨다. 다음에는 버려도 되는 옷을 입고 가야지, 아니, 어떻게든 거절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레이가 급성 폐렴으로 죽어버렸다. 딱 한 달 뒤의 일이었다.
언니는 많이, 아주 많이 울었다. 나는 고양이가 폐렴에 걸려 죽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사람이 동물의 죽음에 그렇게 많이 울 수 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은경 언니는 레이가 제일 좋아했다는 청록색 담요에 죽은 레이를 쌌다. 그걸 품에 안고 밤낮으로 울었다. 며칠 후, 레이가 유골함에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왔을 때 언니는 또 울었다. 처음보다 더 많이. 레이야, 레이야, 하고 유골함을 앞에 두고 중얼거리는 언니를 보는 건 힘든 일이었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언니를 위로했다. 레이는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고, 언니와 함께했던 시간 동안 레이는 누구보다 행복했을 거라고. 하지만 언니의 슬픔은 하루도 빠짐없이 그대로였다.
지긋지긋했던 겨울이 지나갈 즈음, 언니는 호주로 떠났다. 그때 나는 4학년이었고,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해 이력서 수십 개를 기계적으로 써서 뿌려 넣던 시기였다. 놀러 와. 언니는 자기 몸집만 한 캐리어를 현관 앞에 꺼내어놓으며 말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던 거였다.
“그래도 지음이 네가 마지막에 레이를 봐줬잖아. 두고두고 그게 고맙더라고.”
잠깐 언니에게서 그날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슬픈 얼굴.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성가셨던 레이의 털이 떠올랐고, 레이의 털이 가득 붙어 있던 청록색 담요와 하숙집 2층 언니의 방, 언니가 레이의 유골함을 끌어안고 울었던 그날의 서늘했던 공기와 아무리 밝혀도 어둡게만 느껴졌던 그 방의 조도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느 날 레이 유골함이 없어졌어. 온갖 데를 다 뒤져도 안보였는데, 엄마가 유골함을 치워버린 거였어. 집 앞 팽나무 알지? 그 밑에 레이를 뿌려줬다더라고. 나한테 미리 말도 하지 않고. 반쯤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지르면서 울었어. 엄마는 충분하다고 했어.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면서.”
생각났다. 그때 언니만큼 힘들어한 건 아줌마였다. 레이 때문이 아니라 언니 때문에. 사람이 죽어도 저만큼은 안 할 거라는 아줌마의 말에 우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야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떠나야겠더라고.”
건물과 가로등에 하나씩 불이 켜졌고, 손에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든 아이들이 달링하버의 여객선 터미널 앞 광장을 뛰어다녔다. 주변에는 줄기가 굵고 키가 큰 고목들이 항구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푸른 잎을 흔들고 있었다.
“호주는 진짜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버텼을까.”
언니의 시선을 따라 창밖의 나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남은 맥주를 마저 들이켰다. 맥주잔 표면에 맺혀있던 물이 테이블 위로 뚝뚝 떨어졌다.
언니는 일찌감치 출근을 하고 없었다.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나는 쌓여있는 그릇 몇 개를 설거지한 후, 거실과 침실을 청소했다. 이제는 고양이 털 하나 없이 깨끗한 곳. 입맛이 없어 먹다 남은 베이글을 입에 욱여넣었다. 뉴스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시드니의 곳곳을 생중계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산타 복장의 수영복을 입고 바다로 뛰어들거나, 인공 눈이 흩뿌려진 대형 트리 주변에 모여 앉아 야외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소파에 멍하게 앉아 별 뜻 없이 뉴스 화면을 보았다. 그리곤 꿈에 대해 생각했다.
호주에 오기 전부터 꽤 오랫동안 계속 비슷한 꿈을 꿨다. 아빠 꿈이었다. 아빠 꿈을 꾸는 날이면 나는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부터 잡았다. 메모장을 열어 꿈에 대해 떠오르는 것들은 몽땅 기록했다. 꿈에 대해 생각하려 애쓸수록 꿈의 내용은 더 희미해지거나 왜곡되어 버렸다. 그래도 아주 잊어버리는 것보다는 그게 나았다.
아빠가 집에 와서 수박을 먹고 싶다고 했다. 수박은 한 통에 4만 원이나 해서 아빠는 일부러 작은 수박을 골랐다. 그렇게 작은 수박은 몇 입 먹지도 못해. 나는 매대 위에 올려진 큰 수박 중에서 하나를 고르며 말했다. 이걸로 하자. 수박 한 덩이를 품에 안고 아빠를 향해 돌아섰다. 그런데 거기서 끝.
<곧 나가, 지음아. 같이 일하는 친구도 한 명 데려갈게. 달링하버. 어제 우리 립 먹었던 그쪽 알지?>
달링하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언니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조금 지난 때였다. 언니는 30분 안에 도착한다고 했지만 무슨 일에선지 조금 더 늦어지고 있었다. 허기가 몰려왔다. 멀리 오페라하우스와 고층빌딩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 아래로 감청색의 짙고 푸른 강이 넘실거렸다. 부풀었다 내려앉기를 반복하는 강물을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뱃멀미하듯 어지러워졌다. 아빠를 다시 본 건 그때였다. 북적이는 페리 선착장 입구에서 아빠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고정하고 아빠가 서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강 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쓰고 있던 모자가 뒤집혀 날아가 버렸다. 돌풍에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뒤돌아 모자를 찾는 동안에도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온몸이 떠밀릴 만큼 강한 바람이었다.
“하버는 바람이 세죠.”
연한 갈색의 짧은 곱슬머리 남자가 날아간 내 모자를 주워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눈과 눈썹이 바짝 붙은 파란 눈의 외국인이었다. 그 뒤로 은경 언니가 급히 뛰어왔다.
(3편에서 계속)
© 사진: Unsplash의Nicholas Doher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