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3

오늘은 록스에 가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

by 이나무






“우리가 늦었지. 지음아, 인사해. 여긴 제스야.”

삼 년째 언니와 함께 일하고 있는 제스는 비스트로의 메인 셰프라고 했다.

“지음.”

제스는 서툰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는 악수를 청하며 시원스레 웃었다. 사람을 가득 태운 페리가 막 출발하고 있었다. 선착장 입구는 텅 비어 있었다.

제스는 우리를 단골 피자집으로 데려갔다. 하버의 메인 스트릿과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가게 천장에는 까만 갓 모양의 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 있었다. 주방 중앙에는 큰 화덕이 하나 있었고, 바로 옆 작은 문 사이로는 화덕용 장작더미가 쌓여있었다. 밀가루를 굽는 구수한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 우리는 영헨리 맥주와 함께 이곳의 대표 메뉴인 조개가 들어간 클램 피자, 그리고 언니가 좋아하는 포테이토 피자를 주문했다.

“클램 피자는 한국에 잘 없는 스타일이라고 들었어. 그래서 난 은경에게 클램을 먹어보라고 항상 권유하지만, 은경은 포테이토 피자만 먹더라고. 익숙한 맛을 포기하기 어려운가 봐.”

제스는 막 나온 클램 피자 한 조각을 내 접시 위에 올리며 말했다. 매콤한 소스의 간이 밴 쫄깃하게 잘 구워진 조갯살 위로 풍미 좋은 올리브유가 듬뿍 뿌려져 맛이 좋았다. 하지만 언니는 정말로 포테이토 피자만 먹었다. 마지막으로 추가했던 맥주 한 병까지 다 비워냈을 때는 시간이 꽤 흐른 후였고, 제스는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집에 가보아야겠다며 급히 자리를 떴다.

“제스는 호주 토박이야. 퍼스 출신. 조커 역을 맡았던 히스 레저 알지? 그 사람이랑 동향. 제스는 자기가 조커랑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느껴. 웃기지? 되게 단순하달까. 근데 또 가족들한텐 정말 잘해. 아마 오늘도 딸 전화를 받아서 들어가는 걸 거야. 좋은 사람이야.”

언니는 식어서 딱딱해진 포테이토 피자의 도우를 베어 물며 말했다.






아빠와 나는 등산 중이었다. 길을 모르는 산행이라 앞서 오르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 바짝 붙어 오르고 있었고, 그 사이 아빠는 계속 뒤처졌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굵은 빗줄기 때문에 아빠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아빠가 곧 올 거예요. 잠시만요. 빗속에 갇힌 채로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계속 이어지는 통화 연결음. 잠깐만요. 같이 가요. 다시 한참 동안 통화 연결음. 또 거기서 끝. 나는 왜 아빠가 있는 쪽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지? 그래서. 아빠는 어떻게 되었더라?







다음 날은 언니의 쉬는 날이었다. 며칠째 밤잠을 설친 탓에 피곤했다. 언니는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음이 너한테 이렇게 아침마다 밥을 챙겨주니 하숙할 때 같다, 그치?”

언니의 얼굴엔 특유의 장난스러운 웃음이 물려 있었다.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코끝을 찡긋거리며 놀리듯 웃는 언니의 그 표정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비가 심하게 쏟아붓던 가을에 도서관에서 책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리고는 빈손으로 비를 쫄딱 맞고 들어왔던 날이었다. 하숙집 앞 계단에 앉아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언니는 지금의 그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워. 원래부터 네 것이 아니었던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 잃어버릴 물건이었다고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두고두고 떠올렸다. 물건을 잃어버릴 때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오랜 친구와 손절을 결심한 날이나, 남자친구와 헤어진 날에도.

“오늘은 록스에 가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

록스는 언니 집에서 버스로 삼십 분 정도의 거리였다. 우리는 서큘러키에 내려 오 분 정도 더 걸었다. 서리힐이나 달링하버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밤색의 오래된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거리를 따라 걷자, 높이 솟은 조형물 주변으로 광장 하나가 나타났다.

“사암으로 만든 기념탑이야.”

사실 그건 탑이라기보다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3미터 정도 높이의 조각상이었는데, 멀리서 보면 매끄럽게 깎인 질감이 마치 목조 기둥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사다리꼴 모양의 암석 기둥 세 개가 모서리를 맞대고 있는 형태였다. 모서리가 닿는 세 개의 꺾인 면에는 발에 쇠고랑을 찬 죄수, 병사, 그리고 아이를 안은 이민 가족의 모습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언제라도 돌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올 것만 생생한 조각이었다.

“산업혁명 이후로 영국은 빈부격차가 심해졌대. 빈곤층이 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범죄자들을 수감할 장소가 부족할 정도였다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이곳으로 보낸 거야. 여기가 그때는 돌덩어리뿐인 땅이었거든.”

은경 언니는 조각상에 손을 짚고 기대어 서서 말했다.

“그래서 이름이 록스구나.”

“지상 낙원이라 불리는 이곳의 시작이 살 곳을 잃고 떠밀려온 사람들의 감옥이었다고 생각해 봐. 나는 가끔 이 땅이 묵묵히 그 어두웠던 과거를 치유해 왔다는 사실에 뭉클해질 때가 있어.”

우리는 곧장 언니의 록스 단골 티 하우스로 향했다. 파스텔톤의 아기자기한 카페 바로 위로 거칠게 깎여져 내린 절벽이 카페를 덮칠듯 아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저 암벽을 깎아서 여길 만든 거야. 주변 도로랑 터널까지도.”

가게 앞에는 하얀 파라솔이 펼쳐진 야외좌석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빈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가게 안에 자리를 잡았다. 오래된 벽난로 위로는 코발트색 화분이 그려진 금빛 테두리 액자가 걸려 있었고, 창문마다 우윳빛 광목천으로 만든 작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앤틱한 가구와 샹들리에의 조명 덕분에 모든 것이 세심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스콘 두 개와 클로티드 크림, 패션후르츠 잼, 그리고 함께 마실 따뜻한 홍차를 주문했다. 그곳에서 언니는 꽤 오랫동안 시드니에서의 생활에 관해 이야기했다. 주로 이곳에서의 만족스러운 점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를테면 저렴한 소고기와 깨끗한 공기, 동네마다 있는 크고 작은 공원과 가족 중심의 저녁이 있는 삶, 그리고 레이 이야기.

“레이는 여전히 보고 싶구나, 언니.”

나는 언니의 폰 잠금화면 속 레이 사진을 보며 말했다.

“지음아, 레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제일 처음 한 게 뭔지 알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었어. 매주 목요일이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었잖아. 그다음 날은 재활용품을 분리수거 하는 날이었고. 그래서 다음 날은 쌓여있던 택배 상자와 플라스틱, 스티로폼을 버렸지. 화장실 배수구에 엉킨 머리카락은 또 왜 그렇게 많았던지. 그냥 하루고 이틀이고 죽은 듯이 울다 자다를 반복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밥 한 숟가락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할 것 같았는데, 그날 저녁에 라면 한 그릇을 끓여 다 먹어 치웠어. 눈물을 흘리면서 냄비에 물을 올리고, 봉지를 뜯어서 라면을 끓였다니까. 더 놀라운 건 그날 밤, 소파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만큼 슬펐는데도.”

언니는 말을 끝내자 티팟에 우려진 홍차를 찻잔 가득 부었다. 붉고 검은 찻물에서 쌉싸름한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학교에 가서 남은 작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 시답잖은 인사를 나누고, 그러는 동안에는 레이 생각이 하나도 안 났어. 근데 또 화장실에서 양치할 때나 연구실의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낼 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 그럴 때마다 레이 생각에 숨이 콱 막혔어. 맞다. 나 이제 레이를 볼 수 없지. 그 작고 따뜻한 몸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까만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레이의 고요한 숨이 내 입술 위로 겹겹이 쌓였었는데.”

언니는 스콘에 잼을 바르며 말을 이어갔다.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다. 그 당연한 사실이 왜 그렇게 서럽고 절망스러웠는지 몰라.”

“아직도 레이가 보고 싶어?”

“당연하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서야 진짜 잃었구나, 하고 실감 나.”

나는 언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리지도, 흐느끼지도 않았지만, 언니의 얼굴은 슬펐다. 10년이나 지났지만 언제든 언니는 그 얼굴이 될 수 있다고, 어쩌면 더 깊고 견고한 슬픔이, 보이지는 않지만 해마다 새겨지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언니에게도 새겨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빠는 10톤 화물 트럭을 몰았다. 전국을 오르내리느라 아빠에게는 정해진 휴일이라고는 없었다. 아빠는 늘 바빴다. 하지만 기억한다. 방학이면 아빠를 따라 함께 다녔던 수많은 고속도로의 휴게소들을. 아빠가 끓여주던 꼬들꼬들한 라면을. 담뱃재가 가득했던 바지 주머니에서 가끔 동전이나 지폐가 나오는 날이면 엄마 몰래 주는 용돈이라며 내 입술 위로 비밀 손가락을 만들어 웃어주던 아빠를. 새우깡 봉지의 새우 모양을 잘라내어 커다란 세숫대야에 물을 채우고 그 위에 둥둥 띄우며 놀았던 아빠와의 여름, 차가운 새벽 밤의 공기를 뚫고 나가던 아빠를 자는 척하며 배웅했던 겨울도. 나에게 처음으로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준 사람. 요요의 줄을 당기는 박자를 가르쳐준 사람. 길고양이와 눈인사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 김치보다 햄이 더 많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었던 사람. 음정 박자 하나도 맞지 않아도 누구보다 멋지게 노래를 불렀던 사람을.


“레이가 보고 싶을 땐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보고싶어 하는 거지. 다음 분리수거일이 돌아올 때까지.”

언니는 그제야 조금 웃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거리에서는 버스킹 공연이 한창이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든 노인 세 명의 재즈 트리오 연주였다. 빨간 스웨터를 입은 베이스 연주자가 거리에 나지막한 리듬을 깔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그 주변을 둘러섰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경쾌한 리듬을 따라 몸을 뒤흔드는 초록의 가로수들까지 어우러졌는데 그건 슬픈 일이었다.

“이제 며칠 안 남았네. 또 가 보고 싶었던 곳 있어?”

언니가 물었다.

“본다이 비치.”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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