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4

일몰 아래의 언니는 아름다웠다

by 이나무





다음 날, 본다이 비치에서 수영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가볍게 나가려고 했지만, 언니는 어떻게 본다이를 가면서 물에 발 한 번 담글 생각도 안 할 수가 있냐며 물놀이에 필요한 몇 가지 물품들을 챙겨주었다. 어쩔 수 없이 무거워진 가방을 들고 비치로 가는 버스를 탔다. 비치는 서큘러키에서 버스로 40분 정도의 거리였다. 이동하는 동안 먹구름이 껴 급격하게 하늘이 어두워졌지만, 덕분에 파도가 좋아 비치에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스버그 수영장을 지나 본다이 비치 중앙으로 들어가자, 모래사장 바로 뒤로 잘 다듬어진 잔디밭이 펼쳐졌다. 가방에서 언니가 챙겨 넣어준 비치타월을 꺼내 잔디 위에 깔았다. 바람에 이리저리 뒤집히는 비치타월을 잡고 있기 번거로워 타월 위에 대자로 뻗어 드러누워 버렸다. 울퉁불퉁한 잔디밭의 굴곡이 등과 허리, 종아리까지 온전히 느껴졌다. 쏟아지는 파도 소리에 귀가 따끔거렸다. 온몸에 힘이 다 빠져버렸다. 이곳에 와야 했다.





1년 전, 나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시드니행 티켓을 쥐고 공항으로 향했다. 오랜만의 휴가였다. 감기 기운이 있는 아빠를 대신해 운전이 서툰 엄마가 공항으로 가는 경전철 역까지 데려다주었다. 열 시간이 넘는 긴 비행 끝에 도착한 호주는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해외여행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아빠와 엄마에게 나는 내가 보는 좋은 것들은 모조리 다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깨끗한 하늘은 말할 것도 없고, 공원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여유로운 호주 사람들의 모습이나 한국에는 없는 신기한 채소와 과일, 이름 모를 꽃나무들까지도. 아빠는 좋아했다. 함께 여행하는 것 같다고, 다음에는 꼭 함께 가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몰랐다. 전혀 몰랐다.

“지음아. 아빠가 돌아가셨어. 바로 한국으로 들어와.”

엄마의 연락을 받은 건 바로 이곳 본다이 비치에서였다.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아빠는 혼자 집에 있는 동안 쓰러졌고, 시장에 다녀온 엄마가 아빠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때였다. 새파란 수영복을 챙겨 물놀이를 해보겠다며 왔었다. 서핑 투어라는 걸 신청해서. 그대로 주저앉아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눈이 빠질 듯이 아팠다.

죽음이란 건 누구나 결국은 겪을 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빠의 사망신고서를 손에 쥐었을 때도, 아빠의 오래된 트럭을 팔 때도, 아빠방에 남겨진 아빠의 물건들을 보았을 때도. 나만 겪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한 달이 지났을 때, 나는 아빠 없이도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카톡을 보내고, 거실 천장 등을 바꾸고, 막힌 변기를 뚫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아빠가 자주 부르던 들국화의 노래를 들을 때면,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빠가 좋아했던 비비빅 아이스크림을 볼 때면 누구나 겪는 당연한 일이라는 그런 말 따위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후로도 신발장 아래에 놓인 아빠의 낡은 운동화 앞에 주저앉아 자주, 펑펑 울었다. 본다이 비치의 모래 위에서 울었던 그날처럼.

엄마와 나는 얼마 되지 않아 아빠와 함께 살던 오래된 집을 팔고,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 외곽 신도시로 이사를 했다. 새집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했다. 거실 창으로 뻥 뚫린 푸르른 산이 계절마다 바뀌었고, 아파트 앞으로 흐르는 천변을 걸을 때면 엄마는 참 좋다, 참 좋다, 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말의 끝에 불쑥 찾아온 무엇 때문에 입을 닫고 말없이 걸어야 했다.






“마지막 밤이니 천문대에서 인생샷 하나 남겨야지. 특히 일몰 때 거기 경치가 끝내주거든.”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은경 언니가 말했다.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언니는 출근 전에 나를 위해 떡볶이를 만드는 중이었다. 한인 마트에서 사 온 가래떡이 생각보다 너무 질어서 애를 먹었다. 언니가 출근한 후 나는 떡이 눌어붙은 냄비와 식기구를 설거지했다. 짐을 정리하고, 언니에게 주려고 가져온 고추장과 된장, 김과 한국의 과자들을 꺼내어 주방 펜트리에 채워 넣고 나니 어느덧 늦은 오후였다. 집 앞 공원의 큰 나무 그늘에서 시원한 롱블랙 한잔을 마셨다. 쓰레기 새라고 불리는 아이비스가 내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맞은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쪽으로 이동했다. 세 살쯤 되었을까. 오렌지색의 곱슬머리 남자아이가 노란 풍선을 손에 쥐고 있었다. 새가 가까이 오자 놀란 아이는 순간 풍선을 놓쳤고,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의 엄마는 유모차 안의 둘째를 챙기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천문대는 록스 쪽이었다. 나는 하이드파크에서 록스로 가는 버스를 탔다. 깨끗하고 매끈한 아스팔트 도로와 따뜻한 파스텔톤의 건물들을 지나자 서서히 적색 벽돌과 회색질 암석이 그대로 드러난 록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섯 시가 넘은 때였지만 호주의 여름은 너무나도 길어서 대낮처럼 환했다.

은경 언니와 제스가 건너편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언니는 피크닉 가방을 들고 있었고, 제스는 어깨에 검은 삼각대 가방을 메고 있었다.

“지난번에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바쁘게 나갔던 게 마음이 쓰였나 봐. 오늘은 제스가 사진 기사를 하겠대.”

언니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큰 길을 따라 나오자, 연노란 색의 오래된 시계탑 하나가 보였다. 시계탑 뒤로 5층 건물보다 키가 큰 고목들이 싱싱한 잎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우거진 나무 뒤로 굴다리 하나가 보였다. 굴다리 앞에 다다르자 단단한 돌덩이로 된 계단을 따라 굴다리를 받치고 있는 거친 회색질의 암벽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언니와 나는 계단을 오르다 말고 계단 위에 앉아 사진을 하나 찍었다.

“기억해야 해, 지음.”

제스가 카메라 렌즈를 매만지며 말했다. 잠시 뒤 시간을 확인하더니 제스는 가져올 것이 있다며 계단을 내려갔다. 제스가 부인과 사별한 것이 이 년 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건 바로 그때였다.

“모르는 척해 줘. 제스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는.”

은경 언니는 돔 형태의 다리 아래 계단 쪽을 가리키며 한쪽은 하버브릿지로 연결되는 계단, 그 옆은 천문대로 연결되는 계단이라고 말했다.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는 동안 은경 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바람에 나뭇잎들이 푸스스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높게 세워진 돌담 너머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아득했다. 앞서 오르는 은경 언니의 뒷모습이 서쪽으로 지는 해의 긴 빛에 반사되어 보였다 말다를 반복했다.







서서히 언덕 위로 푸른 잔디가 펼쳐진 공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큰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거나, 둥글게 모여 서서 서킷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관광객 같았다. 언덕 위로 완전히 오르자, 하버브릿지를 중심으로 서큘러키와 달링하버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시드니항의 풍경이 펼쳐졌다. 하버브릿지 바로 아래로 큰 유람선이 느릿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공원에서 가장 큰 나무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곧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야. 여기에 딱 자리 잡고 있어.”

언니는 제스의 전화를 받고 잠깐 자리를 비웠다. 언니가 챙겨온 피크닉 매트를 넓게 펼치고 바람에 뒤집어지지 않도록 운동화를 벗어 모서리마다 올려두었다. 매트 중앙에 자리를 잡고 두 손을 엉덩이 옆에 받쳐 비스듬히 앉아 하버브릿지가 보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일몰이 시작될 것 같았다. 저물어가는 찰나의 순간을 잠시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기분 좋은 소란이 주변을 촘촘하게 덥혔다. 공기에도 색깔이 있다면 분명 그 순간, 공기는 색을 바꾸고 있었다. 조금씩 더 붉고 부드럽게. 그리고 그때 나는 마지막으로 아빠를 한 번 더 보았다. 아빠는 유칼립투스 나무 바로 아래 철제로 된 올리브색 벤치에 앉아 있었다. 두 팔을 벤치의 등받이에 기대어 올린 채였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멀리서 불어오는 훗훗한 바람을 맞고 있었다. 공기의 색이 조금 더 붉어졌다. 그건 실제로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저무는 해에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감은 두 눈으로 붉은 공기의 색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지음아.”

붉게 물들었던 눈 안의 공기가 뜨거워졌다. 색과 온도, 그리고 온몸을 휘감는 바람의 부드러운 촉감까지 생생했다. 아빠의 얼굴이 희미해졌다. 물을 묻힌 붓으로 덜 마른 그림 위를 문지르듯 어룽졌다.

“지음아, 제스가 과일이랑 와인을 사 왔어.”

제스는 손에 들려있던 와인을 피크닉 매트 위에 올려두었다. 비스트로에서 만들어 온 훈제 연어가 곁들여진 샐러드 박스와 호주산 소고기 스테이크도 꺼냈다. 살갗에 느껴지는 바람은 점점 더 시원해지고 있었고, 사람들의 소리는 한 데 섞여 어떤 선율처럼 들렸다. 제스는 삼각대를 펼쳐 매트 옆 잔디 위에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여 세웠다. 곧 완전히 붉은 하늘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환상적인 일몰이었다. 나는 어렴풋이 언니와 제스가 짧게 입을 맞추는 것을 보았다. 하늘의 색을 따라 언니의 얼굴이 붉게, 따뜻하게 물들고 있었다. 일몰 아래의 언니는 아름다웠다.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끝)






* 불확실한 미래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붕어빵을 팔던 '지우'처럼, 이도 저도 아닌 인생이지만 다시 또 꼿꼿하게 몸과 마음을 곧추세웠던 '아내'처럼, 착륙하지 못하고 외로이 허공을 빙빙 도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비행 여성들'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처럼 밝고 환한 마음이 되어, 소중한 이를 실컷 그리워하고 또 기대하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부질 없다 느껴질 때에도 그냥 매일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달리기'하듯 글을 썼습니다. (물론,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요!) '은지'는 '지원'이를 만났을까요? '시현'이는 보름달을 보았을까요?


브런치북 <기어이, 기꺼이>의 연재를 마칩니다.

기어이, 기꺼이 제 글들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사진: UnsplashDohyu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