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고 빨간 3

당신은 모를 거야. 그때 서주동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by 이나무






동여고 친구들은 대부분 동주역 근처의 럭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아파트 주변으로는 각종 학원이 들어섰고, 그 중엔 꽤 유명한 강사가 직접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우리는 모두 아디다스 슈퍼스타나 컨버스를 신었고, 대부분은 같은 학원에 다녔으며, 간혹 부모님의 직업까지 겹치는 경우도 많았다.

12월, 지오디의 6집이 나왔다. 딱 1년 만이었다. 윤계상이 없는 첫 앨범이었다.


지원이와 연락은 계속했지만, 그 횟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가 야간 자율 학습과 학원, 독서실을 오갈 때, 지원이는 언제나 학교 밖 어딘가라고 했다. 어쩌다 동네에서 지원이네 학교 교복을 입은 애들이 엉덩이를 겨우 가리는 짧고 타이트한 교복 치마를 입고 불편한 걸음으로 무리 지어 가는 모습을 볼 때면, 지원이를 찾아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다만 그즈음 서은빈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게 다였다.


지원이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건 수능을 앞둔 11월이었다. 정확하게는 딱 일주일 전이었다. 9월 모의고사 이후로 언어 영역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서 그날 나는 석식을 먹고 학교 앞 서점에서 비문학 문제집을 한 권 샀다. 그래봤자 별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빳빳한 새 문제집을 품에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학교 체육복 위에 기모 안감으로 된 후드집업을 껴 입었는데도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서점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오 분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나는 그날 학교 담벼락을 따라 계속 돌았다. 여섯 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도 사방이 깜깜했다. 담을 타고 넘어오는 학교의 소음을 듣지 않으려 나는 후드 모자를 뒤집어쓴 채로 바닥만 보고 걸었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지오디의 노래를 들은 건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파란 하늘, 하늘색 풍선은 우리 맘속에 영원할 거야. 너희들의 그 예쁜 마음을 우리가 항상 지켜줄 거야.


그래서 나는 지원이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텅 비워진 것 마냥, 아니, 온몸이 허우룩하게 비어버린 것만 같았던 그 깜깜한 밤에 지원이가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 한지원, 잘 지내나.

지원이에게 문자를 보내다가 들고 있던 문제집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학교 담벼락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가로등의 불빛이 발 아래 동그란 빛을 떨어뜨렸다. 그 빛을 따라 나는 계속 걸었다. 담벼락을 따라 계속 돌았다.

지원이에게서 답장을 받은 건 내가 문자를 보내고 3일이나 지난 후였다.

- 진짜 오랜만이네.

3일이나 지나버렸기 때문인지, 수능이 3일밖에 남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원이의 문자에 답하지 않았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안부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여 서울에서 4년의 시간을 보냈다. 취업 준비를 위해 잠깐 부산 집으로 내려왔을 때 서주동은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는데, 주공아파트가 있던 곳은 모두 재개발이 되어 높고 깨끗한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밀레니얼 경기장 주변으로도 주상 복합 형태의 고급 아파트들이 꽤 많이 들어온 상태였다. 새로 들어온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초등학교도 새로 생겼는데, 그 때문에 나와 지원이가 다녔던 학교는 새미로 인근의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만 가는 학교가 되어 학군지에서는 가장 기피하는 곳이 되었다고 했다.

“은지 니 고등학생 될 때 대로변으로 내려온 게 신의 한 수였지. 거기서 못 내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싼 값에 집 팔고 아예 다른 동네로 가뿟다드라. 서주동 안에서 갈 만한 데는 전부 집값이 엄청 올랐다이가. 우예 살끼고.”

나는 거실 창으로 보이는 밀레니얼 경기장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근데 지원이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그쪽에 계속 살았다 안했나?”

엄마가 물었다.

“그랬지.”

바닥에 떨어뜨린 수능 문제집을 주워 들며 이유 없이 펑펑 울었던 그날 저녁이 떠올라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아파트 쪽에 방금 당근 하나 떴네. 똑같은 거.”

남편이 신호를 기다리며 말했다. 나는 재개발로 새로 올라왔다는 새미로 바로 아래 아파트의 거대한 문주를 보고 있었다.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아파트 문주 아래에 노란 승합 봉고 두 대가 비상등을 켜고 대기 중이었다.

“봐 봐, 같은 거면 우리 아파트 쪽이 낫지 않나?”

폰 화면을 내게 들이밀며 남편이 말했다. 초등학생 서너 명이 보조 가방 하나씩을 들고 차례대로 봉고차에 올라탔다. 열 살쯤 되었을까, 아니, 열한 살, 5학년쯤 되었을지도 몰랐다.

“어떡하꼬? 거래 취소하고 우리 집 쪽 당근으로 연락해 봐?”

“거래 취소를 왜 하는데?”

아이들을 다 태우고 출발하는 봉고차를 멍하니 보다가 남편의 말에 놀라 내가 물었다.

“아니, 같은 값이면 우리 아파트 쪽이 나을 거 같아서.”

“왜?”

결혼하고 나서 남편은 10kg 넘게 살이 쪄버렸는데 그 바람에 축 처진 턱살을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왜라니. 그냥 좀 더 믿을만하니까 그러지. 이쪽 동네보다는 우리 동네 쪽이 낫잖아.”

그러는 사이 신호가 바뀌었고, 남편이 급경사의 오르막길에서 급하게 가속페달을 밟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리며 순간 목덜미가 저릿해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잘 올라가기나 해.”

남편은 새미로 앞 편의점에 차를 세웠다. 편의점 뒤 오르막길 너머로 서주동 첫 집이었던 아파트가 보였다. 외벽의 도색이 다 벗겨져 있어서 기억하던 모습과는 달랐지만, 첫 동의 7층, 그러니까 우리 집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맞은 편에 종이 가방 들고 있는 저 사람 같은데? 뭐 저래 시뻘건 색으로 들고 있노.”

남편이 조수석의 창문을 내리며 말했다. 창문으로 찬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밖은 생각보다 더 추운 것 같았다. 히터 열 때문에 꽉 막혔던 차 내부의 공기가 시원하게 뚫렸다.

“당신, 2002년 월드컵 때 기억나나?”

안전벨트를 풀며 내가 말했다. 남편은 핸드폰으로 다른 당근 매물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서주동이 난리가 났었거든.”

남편은 고개를 쭉 빼고 폰 화면을 계속 스크롤하고 있었다.

“당신은 모를 거야. 그때 서주동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차에서 내린 후, 나는 종이 가방을 들고 있는 여자를 찾았다. 횡단보도 앞에 선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폰만 보고 있어서 이목구비를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멀리서도 알아차릴 만큼 키가 크고 얼굴이 작았다. 나는 횡단보도의 신호가 초록색 불로 바뀌기를 기다렸다. 신호는 너무 길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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