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밤이었다
조용한 밤이었다. 그날도 남편과 나는 토요일 하루를 산청에서 보내고 자정이 다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앞집으로 온 택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낸 사람은 분명하게도 지우였다. 딸아이는 취업을 한 후로 서울 회사 근처에 전셋집을 구해 살았기 때문에 이곳으로 짐을 보낼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짐을 보낸다면 그건 우리가 지우에게 보내야 하는 경우였다. 영문도 모른 채 남편은 일단 택배 상자를 집 안으로 밀어 넣었고 나는 지우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맞아. 내 짐이고, 연차 냈어. 좀 길게. 곧 내려갈 거야. 그리고 나 당분간 엄마 집에서 지낼 거야.”
그렇게 대뜸 집으로 내려온 지우는 일주일이 넘도록 거의 말이 없었다. 나와 남편이 몇 번이나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그냥’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누가 너 괴롭혀?”
딸아이를 채근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남편은 ‘지우 엄마’하고 나를 불렀다. 가끔 지우가 방에서 회사 일로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나는 TV 소리를 낮추고 귀를 기울였는데, 지우를 위해 자유적금 계좌 하나를 개설했던 것도 바로 그즈음이었다.
지우는 말 그대로 키우기 수월한 아이였다. 알아서 뭐든 잘 해냈고, 걱정을 하게 할 일도, 목소리를 높일 일도 없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지우 같은 자식이면 셋도, 넷도 키울 수 있겠다며 부러워했다. 중학교 3년 내내 학급반장을 맡을 정도로 모범적이었던 딸은 외고를 거쳐 원하는 대학까지 무난하게 합격했다. 모든 것이 ‘지우다웠다’. 대학생이 된 지우는 학기마다 한두 번 집으로 내려왔다. 남편과 나는 지우가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기차역 앞에서 딸을 기다리며 지우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기대감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 시절, 지우의 반짝이던 맑은 눈은 이른 봄의 싱그러움을 닮아 있었다. 모든 가능성을 품고 어떤 것에라도 스스로를 내던질 수 있을 아이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지우는 인턴 생활을 거쳐 원하던 보험회사에 바로 입사했고,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제 나이에 비해 승진도 빨랐다. 딸의 삶은 무엇이든 계획하는 대로 흘러갔다. 그즈음 남편과 나는 산청에 작은 땅을 하나 사서, 주말마다 그곳에서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우리의 지난날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지우의 짐이 택배로 집 현관 앞에 도착한 것은 그런 평범하고 확실한 날들 중의 어떤 하루였던 것이다.
집으로 내려와 보름쯤 지났을 때, 지우는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봄기운이 완연하게 차오르기 시작한 4월 초였다. 남편은 집 바로 뒤의 나지막한 산을 종종 오르곤 했는데, 그날은 지우와 나도 함께였다. 아직 힘이 다 실리지 않은 연약한 초록빛 잎들이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아직 다 익지 못한 연푸른 잎들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파도처럼 줄을 지어 흔들리면, 아카시아 향이 그 소리를 타고 온몸을 간지럽혔다. 나무 사이로 뿌려진 따뜻한 햇빛이 폭신한 땅 위에 추상화 같은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좋은 회사 다녀서 좋지?”
지우는 두세 걸음 뒤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귀를 스쳐 지나갔다.
“좋지! 우리 딸이니까 좋은 회사는 당연한 거지.”
“만족스러웠어. 어떤 때는 아주 보람 있는 일로 느껴지기도 했었고…. 사람들 불안감을 없애주는 게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었잖아.”
지우는 등산객들이 쌓아 올린 돌탑 옆에 아슬아슬하게 한쪽 다리를 올린 채로 말했다. 경사진 흙바닥을 짚은 등산 스틱이 딸의 오른쪽 손바닥 밑에서 계속 미끄러졌다.
“그래, 그 좋은 회사, 언제 다시 올라갈 생각인 거니, 응?”
지우와 나 사이로 예닐곱 명의 등산객이 숨을 헐떡이며 지나갔다. 후미를 맡은 등산객의 가방 옆구리에 꽂힌 깃발이 보였다. ‘산메아리 산악회’.
“그랬었는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불안 덕분에 내가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그리고 급기야는 내가 사람들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더라고. 건강이라는 게, 인생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어요. 아니,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런 말로. 보험이라는 건 그걸 끊임없이 이용하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거기서 이기면 나는 돈을 버는 거고.”
그 당시 나는 지우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저 드디어 나에게 속 이야기를 꺼낸다는 사실이 반가워 그에 맞는 적절한,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경험이나 지혜를 주어야겠다는 생각만 앞섰다. 으레 직장인들이면 겪는 슬럼프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라든지,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 오는 피로감. 아니면 타지에서 혼자 살아내는 외로움. 그런 것들이 딸아이가 일을 그만둔 이유라고 생각했다.
“직장이란 게 다 그런 거지. 엄마도 직장생활 해봤잖니. 내가 지금 뭘 위해 이러고 있는가, 하는 생각. 근데 그때만 잘 견뎌내면 또 한 10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다시 마음 다잡고 돌아가야지. 잘 할 수 있어.”
진심이었다. 그 시기를 잘 지내고 나면 인생이란 것은 언제나 노력하고 감내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진다고 나는 지우를 다독였다.
“근데 엄마, 사람들은 보험을 들어놓고서도 불안해하더라? 그러면 우리 회사는 그 늘어나는 불안감만큼 보험료를 조금씩 올려. 사람들은 굳이 낼 필요가 없는 돈을 매달 꼬박꼬박 쏟아 붓고 있어. 그러면 회사는 고객들에게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어서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불편한 곳이나 아픈 곳은 없는지를 물어.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걱정할 것들이 또 있었네요, 라고 말하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야. 좋은 보험 상품을 만든다는 건 결국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회사에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는 상품이 뭘까를 생각하는 일인 거야.”
지우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짧은 정적이 흘렀고, 나는 어서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먼 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래, 뭐. 그런데 또 그런 게 있어야 보험회사가 돌아가는 거고, 거기서 일하는 근로자들도 먹고사는 거고, 그래야 이 사회도 발전하는 거고. 그런 거잖아.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사람 사는 게 다 그래.”
지우는 올렸던 다리를 내리고 돌탑 쪽으로 돌아섰다. 바람에 딸아이의 검은 머리칼이 이리저리 날렸다.
다음 날, 지우는 다시 회사에 돌아갈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2편에서 계속)
© 일러스트: Unsplash의Annie Spr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