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산, 그리고 유원지
겨울여행의 묘미는 역시 눈이 아닐는지. 그래서 사실 엄청나게 많은 눈을 볼 수 있는 삿포로 같은 곳을 가고 싶었으나, 시간도 돈도 넉넉지 않은 글쟁이는 국내 여행만 가도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
게다가 때마침 올겨울의 대미를 장식할 폭설이 내려준 덕에, 진짜 겨울을 만나고 왔다. 속초에서.
서울에서 세 시간 정도를 달려 속초에 도착했다. 도로가 온통 눈이다. 배가 고프니 일단 밥부터 먹어야지.
속초에서의 첫끼는 봉포 머구리집. 워낙 유명한 곳이라 20분 정도 기다려 먹었다.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 집. 3월에 확장 이전하는 모양이다.
봉포 머구리집은 사실 물회보다도 성게알밥 때문에 간다.
배도 채웠겠다, 얼른 바다를 보러 가야지. 눈 덮인 바다. 얼마나 예쁠까.
해변 근처에 가자마자 탄성이 나왔다. 바다를 보기도 전인데 눈이 너무 예뻤다. 이렇게 예쁜 눈을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주말인데도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날이 추워 그런가. 바다는 겨울이 제맛인데.
아까 봤던 소나무 숲으로 간다.
날이 너무 춥기도 했고, 또 조용히 바다를 보고 싶어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속초는 눈을 포크레인으로 치운다. 노란색 포크레인이라니 귀엽다.
숙소에서 먹을 횟감을 사러 중앙시장으로 발을 옮겼다.
건어물이 그득그득. 저기에 맥주 한잔 하면 딱이겠다 싶었다.
지금이 제철이라는 밀치와 광어를 골라 회를 떴다. 밀치를 큰 놈으로 잡아주셨다는. 여기에 작은 문어도 하나 삶았다.
문어는 다 먹었고, 회는 조금 남겼다. 배가 너무 불러.
숙소가 설악산 소공원 근처였는데, 하. 눈 덮인 산에 둘러싸여 있는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 바다 사람인 나조차도 겨울산 앞에서, 정확히 말하면 눈 덮인 산 앞에서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조식을 든든히 챙겨 먹고 등산 채비를 했다. 완만한 비선대 코스로 갈 계획.
그렇게 이른 아침이 아니었는데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바람이 꽤 불어 나무 위 눈은 대부분 아래로 떨어졌지만 등산로는 하얗고, 하얗고, 또 하얗기만 했다. 오겡끼데스까를 얼마나 하고 싶던지.
비선대까지 오르는데 길이 조금 미끄러웠지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조금 욕심을 낸다고 금강굴까지 올랐는데, 바람도 세게 불고 얼음은 얼어있고, 진짜 경사는 90도 수준이라 거의 도착해서는 무서워서 울음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겨우겨우 도착하고 보니 금강굴 안이 너무 아늑해서, 목탁 치는 스님의 뒷모습이 너무 평안해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땡깡피면 안 되겠다 싶더라. 조용히 합장하고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혼잣말로 자기 최면을 좀 걸긴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훨씬 편했다.
내려오는 길에 무료로 차를 마실 수 있는 가게(?)가 나온다. 몸 녹이기 좋다.
첫날은 바다, 둘째 날은 산, 돌아오는 날엔 다시 시내에 들렀다.
그러다 보석 같은 곳을 발견! 청초호 근처 작은 놀이공원이다. 겨울엔 원래 닫는 건지, 아니면 눈이 많이 와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적이 없던 곳. 눈이 있으니 더 끝내주게 예뻤다.
호수를 뒤로 하고 레이스 카, 기차, 타가 디스코까지 놀만한 건 다 있다. 놀이공원에 빠질 수 없는 회전목마까지.
속초 여행의 마무리는 지역 음식인 도치알탕으로. 김치 맛이 팔 할이겠지만 묘하게 맛있었다.
다음 여행은 또 언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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