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선, 쇠소깍, 렛츠런팜, 하도리, 세화 그리고 종달리
한 달 반 만에 다시 제주를 찾기로 한 날은, 모두가 각자의 sns에 파란 하늘 사진을 올리며 행복해하기에 바쁜 날이었다.
하늘이 파랗다는 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구나. 사람들 다 비싸고 반짝이는 것만 찾는 것 같아도 사실은 다들 이렇게 소박한 데서 행복을 느끼는구나, 새삼 행복은 참 별게 아니다 싶었다.
안 그래도 제주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떴던 나는, 그날 어디에나 있던 것 같은 즐거운 에너지를 느끼며 전보다 더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처음으로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이라(!) 새롭기도.
도보로 여행할 때는 가기 좀 꺼려졌던 남쪽을 둘러보고 싶었던 터라, 숙소는 표선해수욕장 근처 민박집으로 잡았다. 조경이 좋았고 가게에서 키우던 강아지 두 마리도 너무 살가워 괜히 대접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곳.
표선에서 아침을 보내고 넘어간 쇠소깍. 투명카약이 유명하다는데 이날 운영은 하지 않았다. 유명 관광지답게 사람이 약간 붐비는 곳이라, 일부러 또 찾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곳.
쇠소깍 근처에 오면 꼭 들려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 생겼다. 외관이나 가게 분위기에 매력을 느껴 찾아간 곳이지만 주인이 정성을 들여 내는 음식이 훌륭하다. 정식 한 가지만 판매하는데, 일주일마다 메뉴가 바뀐다고 한다. 내가 찾은 날엔 일본식 돼지고기 조림인 '부타노카쿠니'가 나왔다. 이제껏 먹은 조림 중에 단연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유채나물에 돼지고기를 싸서 겨자를 살짝 곁들이면 최고다.
요즘 이렇게 레트로 분위기를 내는 식당들이 제법 늘었는데, 바굥식당도 그런 곳 중 하나. 과하지 않은 실내 인테리어도 인상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주변 표선민속오일시장도 구경했다.
개인적으로 생선구이는 반건조해서 꾸덕꾸덕한 식감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렇게 시장 한편에서 생선 말리는 모습이 신기했다.
예전에 '제주에선 바다 말고 숲은 어디가 좋지요?'라고 누군가에게 물었을 때 추천받은 곳이 비자림과 사려니였다. 비자림은 한번 가봤으니 이번엔 사려니숲길로. 개인적으로는 비자림보다 좋았다.
사려니숲길 근처에 렛츠런팜이 있다. 가깝기도 하고, 제주도에 왔으면 말 구경을 빼놓을 수가 없어 들렀다. 마침 양귀비가 절정을 이루는 때라 럭키! 입장료는 무료다.
말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건 처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억이 잘 없는데, 털에서 나는 윤기가 장난 아니더라. 뒤쪽 숲으로는 사슴들이 사는 모양인지 말이 도망가지 말라고 쳐놓은 펜스 위로 사슴들은 폴짝폴짝 잘도 뛰어다니며 이리저리 누볐다. 야생...
다시 표선으로 돌아와 근처 카페에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야외 테라스도 멋지고 실내 분위기도 아늑하다. 테이블 간 간격이 좁지 않아 여유가 있고, 2층엔 편하게 쉴 수 있는 좌석도 꽤 많다.
다음날 아침! 기력을 보충하는 데는 역시 전복 삼계탕. 성산일출봉 근처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을 먹고 나선 바로 종달리로 출발. 제주도에 갈 때마다 다른 곳은 그냥 여행 왔다는 느낌이 강한데, 종달리나 세화는 괜히 집에 온 느낌 같다. 나한테 그만큼 편한 곳이기도 하고 시끌벅적하지 않은 조용한 동네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 걸까.
그런데 다시 찾은 종달리는 예전과 좀 달랐다. 마을 초입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큰 새 건물이 덩그러니 들어와 있고, 내가 좋아하는 판다 집도 사라졌다. 이렇게 변하는구나. 달라진 마을을 둘러보며 괜히 화도 나고 마음이 불편했는데, 고맙게도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어 준 풍경들이 있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종달리와 안녕하고 찾은 곳은 바로 옆 하도 해변! 세화에서 물놀이를 하기엔 왠지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 하도에서 잠깐 더위를 식혔다. 카약을 탔는데 어찌나 재밌던지. 물이 얕아 그냥 물놀이 하기에도 너무 좋았다. 이렇게 바다 옆에 살면서 틈만 나면 물놀이하고 싶다. 여름 정말 좋아.
빠질 수 없는 세화 나들이.
함덕 근처에도 들렀다. 역시 차가 있으니 이리저리 이동하기 편하구나. 내가 좋아하는 바람벽에 흰 당나귀 카페. 여기 앉아있으면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빠질 수 없는 고등어회와 소라회를 먹고, 이렇게 하루를 또 마무리.
마지막 숙소로 들렀던 곳은 숲 속에 자리 잡은 명상가의 집. 정말 조용한 동네에 있어서 사람이 거의 없고, 불편한 점이 있다면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 어려운 숙소라는 점. 호스트와 만날 기회도 거의 없지만 모든 이용객들이 요란하지 않게 쉬다갈 수 있다. 언젠가 한 일주일 내내 이런 곳에서 잡념 없이 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들뜨고 아쉽고 그리운 제주 여행을 마무리!
다음엔 또 어디를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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