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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Feb 21. 2019

칼 라거펠트의 죽음, 그리고 패션계의 차별과 혐오

내가 그를 추모할 수 없는 이유

패션계의 아이콘, 살아있는 신화라 불리는 칼 라거펠트가 19일 8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소식을 들은 모델과 패션업계 종사자, 그리고 수많은 샤넬 팬들은 SNS를 통해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그가 남긴 업적을 추모하고 그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며. 하지만 내가 그에게 따듯한 추모의 인사를 건네기 힘든 데에는 그가 생전 행했던 수많은 인종 차별과 혐오 때문이다.


라거펠트는 2012년 메트로 파리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가수 아델을 두고 "She is a little too fat" 이라며 아델의 몸매를 지적했다. 그에 대한 해명으로 다음 해인 2013년에 CN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I never said that she was fat, I said that she was a little roundish; a little roundish is not fat. But for such a beautiful girl, after that she lost eight kilo [17.6 pounds] so I think the message was not that bad."라며 용서받지 못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또 그는 영국의 칼럼니스트 피파 미들턴을 "나는 그녀의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며 "그녀는 오직 뒷모습만 보이는 게 낫다"라고 폄하했다. 한편 그가 찬양하는 빅토리아 베컴은 "아이를 넷이나 가진 후의 그 몸이란. 그런 몸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녀는 매우 절제력이 있다." 라며 무례한 품평을 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미투 운동이 "지긋지긋하다""(성추행을 폭로한) 여배우들이 자신이 겪은 일을 기억하는 데 20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놀라게 했다. 목격자가 없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피해자들을 의심한 건 어쩌면 그에겐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2018년 <보스턴 글로브>의 보도로 스타일리스트 칼 템플러의 성추행 혐의가 드러났을 때는 그를 옹호하며 "(스타일리스트에게) 바지가 내려지는 게 싫은 모델은 수녀원에나 가라"며 되려 피해자인 모델들을 비난했다.


패션 디자이너들의 차별과 혐오는 비단 라거펠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때 한국 10대들을 '아베 좀비'로 물들였던 아베 크롬비&피치의 CEO인 마크 제프리스는 2006년 <살롱>과의 인터뷰에서 “젊고, 아름답고 마른 사람들만 우리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 “잘 생기고 멋지지 않은 사람은 우리 손님이 아니다”라고 말해 소비자들의 보이콧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2018년 H&M은 자사 홈페이지에 흑인 아동 모델에게 'Coolest Monkey in the Jungle'이라는 후드티를 입혀 소비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그런가 하면 2012년엔 영국의 의류 업체 매드하우스는 세탁 취급 표시에 '... 혹은 당신의 여자 (부인이나 여자 친구)에게 주세요. 세탁은 그들의 몫이므로'라는 놀랍도록 시대착오적인 문구를 적어 논란이 됐다.



칼 라거펠트가 훌륭한 디자이너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혐오성 발언을 한 전적이 용서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가해자의 미래를 충분히 걱정해주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수많은 모델들을 179cm에 46kg (실제 모델 최소라의 키&체중)가 될 때까지 뼛속까지 바싹 말렸으며 일반인 여성들이 이런 비현실적인 몸매를 선망하게 하고 그를 이용해 배를 불렸다는 사실이다. 현 패션 시스템이 얼마나 착취적인가는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뼈밖에 남지 않은 모델에게 살을 더 빼오라며 캐스팅을 거절하고, 패스트 패션 업게들은 제3 국의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은커녕 기본적인 의료보험도 들어주지 않고 그들을 노예처럼 굴린다. (기사) 모델들을 거식증에 걸리게 함으로써 일반인 여성들에게 '마른 여성만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몇몇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여성은 '상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때문에 라거펠트가 "마른 모델을 기용하는 이유는 고객이 마른 모델이 걸친 옷을 더 소비하기 때문이다. 마른 모델을 욕하는 여자들은 소파에서 감자칩이나 먹으면서 투덜대는 뚱뚱한 여자들 뿐이다." 라며 소비자들을 탓한 건 정말 뻔뻔하다. 마치 코르셋이 '자기만족'이라며 개개인을 탓하는 백래시와 그 맥락이 비슷하다. 여성들이 눈가리개를 한 채 맹목적으로 코르셋을 주워 입기까지 얼마나 많은 미디어와 남성들의 세뇌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마른 몸과 예쁜 얼굴을 선망하는 게 마치 여성의 ‘본능’인 양 부추길 뿐이다. 그 흐름을 따르지 않는 여자는 라거펠트가 말했듯 투덜대고 뚱뚱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한심한 여자가 된다. 코르셋을 씌운 것도 남성, 그걸 쓴 여성을 희화 하하고 폄하하는 것도 남성이다. 지금도 누군가 쉽게 던진 말 한마디 때문에 지구 어딘가에선 어린 여자아이가 밥을 굶거나 먹토를 하며 몸과 마음 모두 바싹 말라가고 있다. 단지 피부색이 어둡다는 이유 만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토록 유해한 혐오와 차별의 굴레를 우리는 이만 끊어내야 한다. 핑계와 책임 전가는 필요 없다.



Farewell Karl, you won’t be mi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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