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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Apr 25. 2019

손 나이테

나는 작은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집착까진 아니지만 유독 남들은 지나칠 것들을 나는 곧잘 발견해내고 흥분하곤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수학에 젬병인 내게 엄마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친척 언니를 과외 선생님으로 붙여주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언니가 뿌리는 향수, 쓰는 샤프마저 어른스럽고 멋져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언니를 어른스러워 보이게 했던 건 반짝이던 엄지 손바닥이었다. 피아노를 가르쳐 주던 선생님의 손도, 바이올린 선생님의 손도 그랬다. 손바닥이 반짝인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을 수 있다. 손바닥을 보면 엄지와 손목을 연결하는 통통한 살 부분이 있다. 난 내 바싹 마른 손과는 달리 반지르르한 언니의 손바닥을 보며 나도 언젠가 어른이 되면 저렇게 반질반질한 손을 갖게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결국 남의 손만 쳐다보다가 성적은 오르지 않았지만 어른의 손을 동경하며 나는 어느새 그때 언니의 나이를 넘어섰다.

시간이 지나며 매끈한 손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흐려져 갔지만 그게 내 나름의 “어른”의 상징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문득 책을 읽던 도중 나는 내 손바닥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분명 내 피부는 반질반질 윤이 났다. 스탠드의 각도를 틀며 요리조리 비춰보아도 살결이 매끈하게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만 스물네 살, 나는 이제야 어른이 된 것이다. 그것도 머나먼 타국 땅에서.

어린아이의 손을 보면 보송보송할 뿐 윤기가 나진 않는다. 생각해보면 엄지 손바닥을 포함한 손바닥 가장자리는 마찰이 가장 심한 곳이다. 시간이 지나며 많이 닳아져 반질반질 해진 것일 걸까? 아니면 나이가 들면 손에서 자연스레 윤기가 도는 걸까? 그런 면에서 내 손은 나이테라 할 수 있다. 나는 잠시 읽고 있던 책을 놓고 내 손을 한참 바라본다. 나는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만지고 보듬고 때론 부수며 살아왔던가. 손등은 어릴 때와 달리 피부가 얇아져 핏줄이 도드라지게 보이고 손가락 마디마디 주름도 깊게 졌다. 어디서 생긴지도 모를 자잘한 흉터도 이곳저곳 숨어 있다. 이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손안에 내가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 당신의 손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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