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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Sep 18. 2018

'탈조선'을 한다는 것

Photo by Lubov' Birina on Unsplash


처음 한국을 떠난 게 2011년, 올해로 7년째 나는 7,213마일 너머의 미국에서 지내고 있다. 

유학을 올 당시에만 해도 한국엔 유학 붐(특히 조기유학)이 한창 꺼져갈 때라 주변에 해외로 나간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능력만 된다면 떠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이를 지지하는 홈페이지도 생겼고 그 안에는 해외 이민 및 취업 정보를 나눌 수 있는 <탈조선> 게시판도 있다.

떠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나라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슬프게도 우리 세대는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운 것 같다.


정든 고국을 떠나 타지에 정착해 살겠다는 데에는 굳은 결심과 막중한 책임감이 뒤따른다.

그나마 친인척이 있는 경우는 조금 낫지만 머나먼 타국 땅에 낯선 이방인으로 살아가기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경험이다. 나 또한 그랬고.


그렇다면 '탈조선'을 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한국에 여혐이 있다면 여긴 +인종차별이 있다

나 또한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둔 여느 한국의 딸로서, 졸업 후 미국에 정착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엄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뭐든지 쿨~할 것만 같았던 미국도,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수적일라 치면 한국 TK의 그것을 넘어서는 경우를 숱하게 봤다. 다양한 민족이 한데 모여 뒤섞여 사는 만큼, 미국 남부의 보수는 지지하는 정당을 넘어서 종교, 인종, 외교, 성별 등 그 종류도 많다. 사실 지내면서 컬처 쇼크라고 할만한 게 거의 없었는데 이게 가장 충격이었다.

인종 차별은 겪어본 바로는 여성 차별과 그 고통이 비슷한듯하다. 둘 다 상대를 이해시키기 힘들고, 그 대상을 타자화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졸업할 때 서양 미술학 수업에서 쓴 에세이에 나는 "동양과 여성은 투명성, 타자성, 일반화, 오리엔탈리즘, 고정관념 그리고 인종적 페티시에 있어서 그 맥락을 같이 한다."라고 썼다. 서양인 혹은 남성의 관점으로 본 둘은 결국 이방인이고 남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만 떠나면 유토피아가 있을 거라 환상을 품는 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동양인이 서양에서 설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다. 이민 첫 세대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United Airline 사건 때 볼 수 있었듯 동양인은 큰 논쟁거리가 되지 못한다. 희화화나 안 되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칭챙총 소리는 일주일에 7번씩 들어도, 흑인에게 니거라고 조롱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가 뭐겠는가. 먹이 사슬의 최하단, 그곳에 동양 여성이 있다.


끝없는 외로움

나는 외로움을 타는 성격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독립적이었지만 1년에 한두 번 밀려오는 외로움은 정말 나를 잠식시키곤 했다. 특히 연말이 돼서 현지 친구들이 가족들과 휴일을 보내거나 가족 여행을 가거나 할 때면 주말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이건  누군가에게 의지할수록 독이 되는지라, 홀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오롯이 나 자신만을 믿고 멘탈을 다잡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도 처음 몇 년간이나 애틋하지 못 본 지 2년이 넘어가면 하루에도 몇백 개씩 오던 단톡방 알람은 줄어들고, 마음의 거리또한 멀어진다. 자동으로 인맥 정리가 된달까, 시간이 지나며 정말 진득한 관계의 사람들만 남게 된다.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홀로 서기

해외 생활은 한국에서 자취하는 것과는 힘듬의 정도가 다르다. 언어는 둘째 치고,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 정말 많은데 그때마다 주변에 도움받을 현지 지인이 없으면 난처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하고 탁월한 구글링 실력, 도움이 되는 현지 친구들은 필수불가결이다. 기본 업무 처리기간이 한 달은 훌쩍 넘는 보험사와의 전화도, 학교와 회사에 각종 서류를 제출하는 것, 비자 문제 등을 모두 혼자 해결해야 한다. 

이 밖에도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게 돼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우도 더러 보았다. 한국에서는 활기차고 외향적이다가도 언어의 벽, 언어와 문화의 벽에 부딪혀 본의 아니게 내성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건 그나마 언어가 늘면서 조금 나아진다.


음식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있는 미국은 (동남부 지역) 한국 음식을 찾고자 하면 찾을 수는 있다. 대학 때까지 있던 곳은 아주 작은 한인 마트가 차로 20분 거리에 딱 하나뿐이었고 한국 식당도 두어 개뿐이었다. 때문에 한국 음식이 먹고 싶으면 뉴저지에 있는 HMART의 온라인 스토어에서 비싼 배송비를 지불하며 레토르트 제품을 사 먹거나 한인 마트나 식당에 가서 질에 비해 부풀려진 값을 치러야 했다. 선택지가 넓지 않으니 한인 식당 이래 봤자 그 음식이 그 음식이었고 고국 음식이 그리울 때면 집에서 겨우 계란밥이나 해 먹으며 식욕을 달래는 정도였다.

취직을 하며 대도시로 이사를 온 후에는 한국 음식 품귀현상이 한결 나아졌다. 곳곳에 한국 음식점이 있고 웬만한 건 마트에서 적절한 가격에 사 먹을 수 있다. 그래도 뼈다귀 해장국이나 authentic 한식을 먹기 위해선 1시간 여를 운전해, 한인 타운에 가야만 한다. 한국에서라면 동네 24시 해장국집에 가서 8000원 정도에 국밥 하나를 가볍게 먹을 수 있지만, 이곳에선 사치다.

"한국 음식쯤이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식욕이 거의 없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나와 살며 지금까지 이게 가장 큰 불만이었다. 추억이 담긴 음식을 먹는것, 요새 말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왠지 단점만 나열해 놓은 듯한데, 사실 장점 또한 많다. 비가 온 후에 땅이 굳어지듯, 둥지 밖으로 나와 사는 일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혀줬다. 자신의 한계를 매일같이 시험하며 많은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누가 물어도 값진 경험이라 말할 수 있고, 다시 시간을 돌린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 글은 해외 생활의 실상을 파헤치는 글도 아니고, 탈조선을 저지하거나 선동하려는 목적도 없다. 다만, 큰 결정을 하기에 앞서 이런 장애물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알고 오는 것과, 모르고 오는 것은 무척이나 다르므로.


만약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해외로 이주 계획이 있다면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준비된 자에겐 기회가 온다. 낯선 땅에 첫 발걸음을 내딛기 전, 많은 사전 조사와 준비로 꼭 성공적인 해외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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