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준 Jan 25. 2020

과대평가된 노력

압축고속성장이 끝난 시대의 룰 변화


서울신문에는 5주에 한번씩 기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이 설이라서 명절에 맞는 주제를 써볼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그런 내용은 저 외에도 쓸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이번에는 노력에 대한 제 견해를 써보았습니다. 노력은 분명 좋은 것이고 훌륭한 것이죠.


그러나 노력만으로 무언가 아웃풋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연히노력에 대한 과대평가입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다른 요소들을 전부 노력으로 치환하는 것도 과대평가고요.


시대는 갈수록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당장 전후와 개발시대때까진 우리나라에 자본 가진 사람도 드물었고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도 드물었죠. 그래서 개개인의 축적된 요소차가 적기 때문에 노력의 차이가 큰 역할을 합니다.


노력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 뿐이다.그리고 심지어 노력하는 기질마저도 환경과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죠. 과거와는 환경과 조건이 많이 달라졌으며 다른 요소의 차이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노력은 최소한의 조건으로 그 역할이 줄어들어갑니다. 과거의 경험과 개인의 경험에 기반해서 일반화를 해서는 곤란한 이유죠.


노력이 과대평가 되었단 얘기는 노력이 아무런 쓸모가 없단 얘기가 아닙니다. 제가 이런 주제로 이야기할 때마다 '그럼 노력이 아무런 쓸모없는 것이냐?'라고 모 아니면 도 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노력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만 노력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져서 그걸로는 차이를 만들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간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기본 정도가 되어버리고 있는 시대라는 거구요. 그렇기에 최소한의 기본이 마치 아웃풋을 결정하는 요소인 것처럼 얘기한다면 이것은 실질적인 영향력에 비해서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주제는 1440자라는 한정된 지면으로 다루기엔 너무나도 이야기할 것이 많고 조금 더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글자수 제한 없는 설명은 다음달 초에 나올 제 새 책을 확인해주ㅅ... 읍읍...

아무튼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 잘 보내세요.


-----------------------


어렸을 때 노력과 성실의 좋은 결과에 대해 참 많이 듣고 자랐다. 성공한 사람들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성공하신 분들이 직접 나와서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사실 참 좋은 조언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말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정말로 옳은 조언인지는 조금 생각이 필요한 주제 같다.


인간에게는 모두 하루 24시간이라는 같은 시간이 부여된다. 부유하건 가난하건 많이 배우건 못 배우건 다르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인지자원 또한 한정돼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높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돼 있다. 바로 이런 시간적 한계와 인지자원의 한계 때문에 개인이 투입할 수 있는 노력의 총량은 제한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두가 노력하고 모두가 애쓴다면 개인이 투입하는 노력은 그 한정된 총량에서 상향 평준화돼 버린다. 따라서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개인 간의 차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노력 외에도 많은 조건이 존재한다. 자본의 차이, 인적 네트워크의 차이, 경험의 차이, 정보의 차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본, 인적 네트워크, 정보 등은 애초에 개인에게 부여된 양이 다르고 그 상한이 없기 때문에 개인 간에 발생하는 격차는 노력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 때문에 개인 간의 노력 격차가 매우 작은 상황에서는 노력이 아닌 이런 요소로 경쟁이 결정된다.


우리는 이미 전후 3세대 이상을 거쳐 왔다. 개인의 노력은 2세와 3세에게 계승되지 않으나 자본과 인적 네트워크, 그리고 정보와 같은 것들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축적되고 계승돼 개인 간의 차이는 더더욱 벌어지게 된다. 아마 나보다 아래 세대로 간다면 이러한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노력을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나의 위 세대와 어르신들이 그러한 말을 믿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체험했던 경험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로 올라갈수록 개인 간의 자본, 인적 네트워크 등의 격차는 지금보다 작아진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균등할수록 노력의 차이는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때는 그 좋은 말이 옳은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격차가 커졌기에 더이상은 옳은 말이 아니다.


개인은 자신이 사회 전체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많은 자본과 정보 등을 보유하고 있는지 또한 자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이 가진 자일수록 자신이 노력해서 잘 됐다고 믿기 마련이다.


이것이 제대로 된 평가일까? 개인 간의 자본과 정보 등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앞으로 더 그럴 것이다. 노력이 만들어낸 차이는 점점 미미해져 간다. 이런 세상에서 노력은 분명 과대평가돼 있다. 지금이 노력에 대해 재평가할 시점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전월세 임대료 동결 루머와 독일의 임대제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