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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Jun 29. 2020

노력과 정치적 보상

노력에 대한 보상은 타당한가?

인국공이 이슈가 되면서 노5력이 다시 한번 주제 거리로 오른 모양이다. 인국공 얘긴 남들이 많이 얘기했으니 나는 그보다 좀 더 포괄적인 주제인 노5력 얘기나 해볼까 한다. 내가 나름 관심을 많이 가졌던 주제기도 하니 말이다.


일단 이 질문을 생각해보는게 필요하다.


"노력과 고생은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왜 보상을 해줘야 하는가?"


흔히들 노력은 보상 받아야 하고 고생한만큼 누려야 한다고 여긴다. 그게 정당하고 공정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게 어째서 정당하고 공정한가를 물으면 꼬이기 시작한다.


성과와 노력/고생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면 노력과 고생에 대한 보상에 대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엄연히 이 둘은 다르다. 노력없는 성과는 없지만 성과는 노력으로 바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력과 성과를 분리하고 보면 노력에 보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요구가 얼마나 그 정당성이 취약한지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사회에서는 종종 노력이나 고생 자체에 대한 보상을 하긴 한다. 다만 이는 노력과 고생에 대한 보상이 어떠한 정당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이뤄진다. 노력이나 고생은 보상심리를 낳고 그 보상심리는 불만을 낳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만을 가졌다고 모두에게 보상해줄순 없으므로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질 뿐이다. 그래서 노력에 대한 보상은 노력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며 이는 매우 정치적인 보상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노5력과 고생을 이야기하며 학벌로 보상을 요구하는 20대들이 다른 세대에서 보기엔 우스워 보이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학벌, 시험성적 같은 것은 성과가 아니라 기본 요건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마냥 비웃기도 뭣하다. 나이든 직급이든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이 '정치적 보상'의 수혜자가 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직원에게 지급하는 임금이야말로 정치적 보상 그 자체다. 냉정하게 말해서 국내의 그 어떤 기업도(해외 기업은 내가 모르니까)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진 않는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생각해봐라. '세상에 저 일 하는데 저 연봉을 주다니' 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정규직이라서, 직장 내에서 성골인 공채 출신이라서, 오래 다녀서 등등의 이유로 성과나 역할을 생각하면 임금을 깎거내 내보내야 할 사람들에게 임금이 지불된다. (물론 자각을 못해서 그렇지 그게 당신일 수도 있다) 제 발로 걸어나가지 않는 이상 정상적으로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다. 이런 강력한 장벽도 정치적 보상의 결과물이다.


또한 기업에 따라 서로 다른 특정 학교 출신들이 강세를 보이곤 한다. 이게 특정 기업엔 특정 학교 출신들이 적합한 인재들이라고 말하는 건 양심 없는거다. 그나마 블라인드는 채용의 과정에서 정치적 보상의 가능성을 일부나마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 그렇게 채용에서도 정치적 보상이 작용한다. 승진도 다를바 없다. 직장인들이 정치적 보상이 눈 앞에서 작용하는 것을 경험할 대표 사례 중 하나니 말이다.


애초에 우리가 누리는 것 자체가 우리의 성과 때문이거나 노5력 때문이 아니다. 예전에 나는 대기업 정규직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금융 접근성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잘 생각해보라. 은행이 대기업 정규직에게 돈을 잘 빌려주는게 그 개인의 성과나 노5력을 인정해서겠는가? 대출은 임금과 직업 안정성을 담보로 한다. 근데 이 두가지는 정치적 보상과 매우 밀접하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이건 좀 웃기는 상황이긴 하다. 20대들의 노5력을 근거로 한 정치적 보상 주장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웃기긴 하지만 이걸 비웃는 쪽도 정치적 보상의 수혜자란 측면에서 만만찮은 상황인거다. 본인들도 엄연히 그걸로 정치적 보상을 누려왔으면서 말이다.


누구보다도 노력의 가치를 신봉했던 웃 세대들이 정치적 보상의 최대 수혜자들이며 그 정치적 보상에서 가장 소외된 세대들이 마찬가지로 노력을 외치는 것이 여기에서도 참 아이러니한 포인트다.


그런 점에서 한발짝 떨어져서 보자면 이건 누가 뭐래도 정치적 보상을 둘러싼 이권 싸움이며 투쟁이다. 노5력이나 공정성 같은 것은 그 이권이 나의 것이라는 걸 주장하기 위한 명분이고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노력에 대한 담론의 깊이가 얼마나 얕은지 또한 잘 보여주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믿는 것은 자기들 자유지만 적어도 그 깊이와 사유에 있어 노5력 만능주의는 그 바닥을 드러냈다고 본다.


덧붙임.

이렇게 쓰면 또 '노력이 아니라면 노력없이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요?'라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오독이 생길까봐 늘 글에 덧붙이는 거지만 '노력이 결정조건이 아니란 말이 노력없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가 되진 않는다'란 거다. 본문에도 썼다시피 노력 없는 성과는 없지만 그렇다고 성과가 노력이 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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