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소비를 좋아한다.
“뭔 소리야 돈 쓰는거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라고 할 사람이 있어서 덧붙이는 건데 소비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욕망과 결핍을 좋아한단 얘기다. 소비는 단순히 어떤 상품에 돈을 쓰는 행위가 아니다. 소비는 당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를 보여주며 그 어떤 말보다도 당신이 누구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책도 엄연히 상품의 하나라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잘 보여준다. 한번은 예전에 어떤 분의 사무실에서 그 분의 책장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꽂힌 책들 가운데 어떠한 공통점이나 취향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어떤 분야건 많이 접할수록 취향이란게 형성된다. 굳이 일하는 사무실에 책을 꽂아뒀다면 어떠한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높은데 거기에서 어떠한 공통점이나 취향이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며 읽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해를 막기 위해 얘기하자면 이건 비웃을 일도, 부정적으로 볼 일도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싶어하는 현시적 욕구가 있는데 그걸 무엇을 매개로 어떻게 드러내는가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이 경우는 그 분이 책을 매개로 자기 자신을 표현한 것 뿐이다. 그리고 이 점을 반대로 뒤집으면 가장 잘팔리는 것은 대중의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나 책의 경우는 이게 잘 드러나는 상품 중의 하나인데 삶에 꼭 필요한 상품은 아니면서 상품간 가격차가 거의 없는 저렴한 특성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품들이 품질 차이가 매우 명확하고 이 품질차이가 가격에 반영되는데 반해 책은 그렇지 않기에 베스트셀러는 대중의 욕망과 결핍을 아주 적확하게 반영하게 된다.
베스트셀러의 이러한 속성을 잘 보여주는 책이 페친인 한승혜님이 이번에 쓰신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이다. 최근 5년 동안 나온 28권의 베스트셀러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이유로 대중에게 선택 받았는지를 쓴 책이다.
재치 넘치는 표현과 적절한 비꼼 덕분에 이 책을 ‘베스트셀러를 까기 위한 책’으로 읽을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의 내용이 부실하고 앞뒤고 안맞는 점을 적절하게 놀리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이 책에 빠지는지, 그리고 이 책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투영하고 무엇을 보고자 하는지를 잘 짚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을 읽다보면 베스트셀러를 선택한 대중들의 욕망과 결핍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힐링 도서들은 아주 일반론적인 얘기들과 하나마나한 얘기들, 그리고 앞뒤가 안맞는 얘기들이 많다. 그래서 책을 읽어본 사람들의 경우는 ‘이게 무슨 책이냐’라는 반응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한 권의 책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문장 모음집으로 인식한다면 서로 상충되는 하나마나한 얘기들은 어느 상황에서도 인용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스스로를 다잡거나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할 때 이런 다양한 문구들은 매우 유용하다. 모두가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떤 면에서는 힐링 도서들이야말로 사람들의 현시적 욕망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이 책에서 소개된 ‘오베라는 남자’는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 유독 인기가 높은 책이었는데 이 오베라는 캐릭터를 보면 중년 남성들이 투영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읽을 수 있다. 까칠하지만 속은 따뜻한 남자, 알고 보면 깊은 과거가 있는 남자,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해해줄 따뜻한 여성을 원하는 남자.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렇게 드러나는 욕망을 딱히 비웃을 건 없다. 여성 취향의 소설들도 성별만 바뀌었을 뿐이지 그 또한 욕망이 노골적으로 투영되긴 마찬가지니까.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유치한 책들이 이렇게 많이 팔리냐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원래 욕망이란게 유치한거다. 그래서 이 욕망을 유치하지 않게 표현하고자 다양한 방식으로 애를 쓴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노골적이고 유치한 부분 때문에 베스트셀러는 스스로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비웃음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이렇게 베스트셀러를 혐오하는 사람들조차 베스트셀러를 멀리 하는 방식으로 ‘좋은 책을 구분할 줄 아는 자신의 안목’을 과시한다는 점이다. 결국 어느 쪽이나 각자의 방식으로 욕망을 드러내고 과시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이 음악 시장과 힙스터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란 것이 우리 모두 인간이란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는 베스트셀러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지만 실제론 그 베스트셀러를 소비하는 대중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를 읽기란 쉽지 않다. 많이 읽다보면 본인만의 취향이 잡히기 시작하는데 이러면 베스트셀러와 안맞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 쓰겠다고 본인 취향에도 맞지 않는 책을 꾸역 꾸역 읽었을 저자의 고생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나는 재미있어서 읽는다. 그런 점에서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는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도 재미있었지만 저자 본인이 정말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내려갈 책이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