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연휴기간 중에 재활용품을 버리러 나갔다가 녹슨 캔에 제대로 손 마디를 베였다. 말 그대로 피가 줄줄 흐르던 상황이었는데 그때 지혈보다 먼저 떠오른게 파상풍이었다. 내가 파상풍 백신을 맞은게 언제였지?
파상풍은 정말 무섭다. 보건과 위생이 사회에 자리잡은 근대말 이전까지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파상풍이다. 현대에도 파상풍에 걸렸을 때 빨리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금새 사망하는 매우 위험성 높은 병이다. 그나마 파상풍 백신이 나오면서 이 무서운 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게 되었다.
남자들은 보통 군대가면서 파상풍 예방접종을 받는다. 그리고 나는 한참 여행다니던 시기에 황열병(국내에서 걸릴 일이 없어서 그렇지 황열병도 치사율이 매우 높은 위험한 병이다) 백신과 함께 파상풍도 같이 접종했었다. 다만 파상풍 백신의 효과가 평생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정 기간에 따라 재접종을 해야한다. 근데 그 기간이 언제였는지 애매하고 내가 언제 파상풍 접종을 했는지도 기억이 애매한거다.
시기와 기간에 따라선 백신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장 병원 응급실로 가야한다. 이걸 생각하니 피와 함께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다행스럽게도 파상풍 백신의 유효기간은 10년이며 마지막으로 맞은 시기는 10년 안쪽이란 걸 알았고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고 지혈을 하고 재활용품을 버리던 걸 마저하고 집으로 올라가 소득을 했다.
참 의아한 일이다. 백신은 위험한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그리고 백신을 통해 면역을 획득한 사람들이 일정 이상이 되면 질병의 확산 경로를 차단하는 (요즘 뉴스에서 많이 봤을) 집단면역체계가 형성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 백신의 등장 이전에는 인간은 늘 질병의 위협과 함께 살아야 했으며 그 덕분에 질병으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런데 왜 백신에 대한 불신과 거부가 생겼을까?
흔히 안아키 등과 같은 백신에 대한 음모론을 믿고 거부하며 전통적인 치료법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두고 '멍청해서 저런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백신의 거부를 외치던 사람 중에는 간호사들도 있었으며 백신 대신 대체요법을 추종하는 사람들 중에선 중산층 이상 고학력자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대체요법 추종자의 대표적 인물로 나심 탈레브가 있다. [블랙스완]의 저자인 그 나심 탈레브가 맞다. 중산층 이상의 고학력자들과 나심 탈레브 같은 사람들에게까지 과연 '멍청하다'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이건 그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존재와 행동들을 부족한 내 머리로 쉽게 이해하기 위해 붙이는 진실과는 다른 딱지에 불과하다.
나심 탈레브는 인간이 오렌지를 짜서 그 과즙으로 만든 주스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게 200년에 되지 않았단 이유로 주스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다. 실제로 본인의 책에 자신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1000년 이상 충분히 검증된 물, 맥주, 와인 밖에 마시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런 극단적 사고방식의 인간이니 과학적 접근법을 추종하기 시작한지 고작 100년이 조금 넘는 현대 의학을 불신하는 거야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니 '멍청해서'가 아니라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이 진실일거다.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고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매우 아끼고 그만큼 많은 걱정을 한다. 이들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이유가 '자녀를 백신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인걸 보면 말이다.
자녀들을 둔 부모는 걱정이 많다. 최근에 6살짜리 딸을 둔 내 친구는 자기 딸이 요즘 포켓몬에 너무 빠져 있는 것 같다는 걱정을 토해냈다. 매일마다 포켓몬 얘기를 하고 포켓몬의 이름과 특징을 설명하며 모든 것을 포켓몬으로 얘기하려 든다고 말이다.
내가 보기엔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들이 공룡에 미쳐있는 것과 별 반 다를게 없어 보여서였다. 나 또한 그 나이 대에 공룡에 미쳐 있었고 공룡 이름과 습성, 몸 길이 등을 줄줄 외우고 다녔고 틈만 나면 여기 저기에 공룡 그림을 그리고 다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공룡 중독이라며 걱정하지 않았고 이건 현재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 얘기를 친구에게 해주었더니 본인도 공룡에 미쳐봤던 시절이 있었는지 딸의 행동을 이해했고 걱정을 덜어낼 수 있었다.
포켓몬 중독에 대한 걱정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룡으로의 대체를 통해 납득을 시켰지만 질병과 면역, 그리고 백신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의 대체가 어렵다. 질병과 면역은 우리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기에 상상을 하기가 애초에 매우 어려워서다. 비가시적인 요소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공통적인 취약점이다.
당신이 백신을 통해 면역을 얻었다면 당신은 그 질병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백신 때문에 질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런 경우엔 해당 질병이 가진 위험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집단 면역으로 이러한 질병의 위험에 더 잘 대처하게 된 경우라면 주변에서도 그 질병으로 고통받는 케이스를 보기가 어려워지기에 이러한 과소평가는 더욱 심해진다. 질병의 위험성에 대한 과소평가는 반대로 질병의 위험성을 낮춘 방법이 가진 부작용이나 위험성을 과대평가하게 만든다. 질병이 그닥 위협적이지 않으니 백신이 가져올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부작용이 너무 커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자녀에게 많은 관심을 쏟는 부모에게 더욱 크게 작용한다. 자신의 몸과 건강은 어느 정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자녀의 몸과 건강은 자녀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기에 부모들은 더 많은 걱정과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부작용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 백신으로 축소된 명백한 질병의 위험으로 자녀를 몰아넣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현대에 부모에게 요구하는 각종 책임감과 좋은 부모가 되라는 압력이 만들어낸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고학력 부모가 이러한 부분에서 더 많은 압력을 받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왜 백신에 대한 거부가 고학력 부모들에게서 비롯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실마리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 뿐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면역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면역에 관하여]는 여기서 우리가 면역을 이해하는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한다. 대체 면역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면역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내 몸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의 몸은 무균상태고 청정상태이지만 외부는 오염과 같은 위협적인 요소가 많고 그것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벽을 면역으로 인식한단 얘기다. 하지만 [면역에 관하여]는 이러한 면역에 대한 시각이 '신화적인 시각'이라 말한다.
면역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집단적이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장벽으로서의 면역은 질병을 타자화 시킨다. 질병은 남이 걸리는 것이고 나의 몸은 무균 청정한 상태이므로 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바로 이러한 시각이 자신의 몸에 우리의 몸과 같은 자연물이 아니라 화학물질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시각이 백신은 질병에 걸리는 남들이나 맞는 것이고 나는 맞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기 때문에 백신에 대한 거부는 다분히 계급적인 부분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몸에도 균은 많으며 질병은 언제나 나를 숙주로 삼아 타인에게 확산될 수 있으며 본인이 자각은 못해도 이미 그런 상태일 수도 있다. 단지 본인의 면역이 증상이 나타나지 않게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나의 몸은 무균 청정하지 않다. 자녀의 몸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면역은 나의 몸이 아닌 나와 주변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율라 비스는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되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생각을 녹여 면역에 대한 의학적인 부분을 다루면서도 부모로서 가진 두려움과 입장 또한 잘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이 면역이란 의학적인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에세이처럼 쉽게 읽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부모로서 겪는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에 관해서 잘 풀어내고 있는 점은 매우 좋았던 부분이었다.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분명 현대의학은 그 발전과정에서 바이러스와 세균으로 설명되지 않는 질병들을 엄마의 탓으로 돌려왔다.'더 좋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잘 키웠으면 그런 식의 병은 걸리지 않았다'라는 시각은 안아키 사건 때도 반복이 되었다.참 아이러니하다. 그 엄마들이 안아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더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라서다. 사실 육아가 쌍방의 책임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비난과 관심이 엄마쪽에 몰려있는 것은 여러 모로 이상한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도 많은 백신음모론자들이 믿는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그간 어머니들에게 물어왔던 자폐증의 책임을 제약회사에게로 넘겼다. 어쩌면 수많은 엄마들이 이 사이비의 말에 넘어간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인 율라비스가 이 책을 통해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아이에게나 자기 자신에게나 세상 모든 부분으로부터 면역을 부여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했던 내 친구는 자기 딸의 포켓몬 중독을 걱정하면서도 자기가 나쁜 아빠인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포켓몬 중독이 그럴 수도 있는 거라 생각을 하자 그 죄책감과 무게감에서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백신에 대한 거부를 보고 있자면 필요한 것은 부모에 대한 응원과 위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자신의 모든 부분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자기 자녀 또한 그렇다. 그것까지 챙기지 못해도 나쁜 부모인 것은 아니며 충분히 좋은 부모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면역을 주제로 이렇게 따뜻한 글을 쓸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아마 그 점이 이 책에 더욱 끌리게 만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책 속의 한 문장을 인용해 본다. 그러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생제, 백신, 둘 다 시간여행이야." 그 봄에 한 친구가 내게 이렇게 써 보냈다.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재앙을 예방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미래를 어떤 식으로 돌이킬 수 없게 바꿔 놓는지 누가 알겠어?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하니까 내가 내다볼 수 있는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백신을 맞히지만), 그럼으로써 내가 내다보지 못하는 재앙의 위험을 감수하는 셈이야." - 면역에 관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