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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Dec 22. 2020

열광의 본질

어떤 대상에 열광한다는 것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군가요?


과거에 초면이거나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스몰토크를 하게 되었을 때 종종 나오던 질문 중 하나가 이거였는데 이 질문이 나올 때면 나는 늘 당황하곤 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는 것을 넘어서 연예인에 관심이 없어서다. 하지만 이걸 얘기했다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기에 이 질문은 늘 당황스러웠다.


연예인에게 무관심해진건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였던걸로 기억한다. 그 나이대의 애들이 그렇듯이 나도 당시는 유명 연예인의 팬이기도 했고 나오는 프로그램을 다 챙겨봤었다.

그러던 TV를 보던 어느날,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가 내가 뭔가를 잘못하자 체벌을 하셨는데 TV는 끄지 않다보니 TV를 보면서 체벌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 하필 TV에 내가 참 좋아하던 연예인이 나와서 상을 받느라 참 행복해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 체벌 때문에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는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데 저 사람은 저렇게 행복하다니.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내 인생이랑 아무런 관계가 없구나... 아아...

그렇게 현실을 깨달아 버린 초등학교 2학년의 나는 급 현타가 왔고 그 이후부턴 연예인에 열광하지 않는 것을 넘어 무관심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그렇다보니 걸그룹이건 보이그룹이건 다른 연예인이건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심정적으론 동감이 되지 않았다. 물론 머리로 이해는 되어도 한편으로는 무슨 이유로 저렇게 동질시하고 열광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 또한 들었고 말이다.

아아... 호멘... 그립읍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니 이런 나도 열광한 사람이 없진 않다.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 스타들에 열광했었던 과거가 있으니 말이다. 팬들이 연예인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가고 행사를 찾아가고 때로는 숙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나 또한 경기장을 가고 훈련장을 가고 싸인 받겠다고 숙소 주변을 어슬렁 거리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이거 연예인 좋아하는 팬들과 다를게 없는거 아닌가?

나는 왜 그런 축구 스타들을 좋아하고 열광했을까? 내가 그 당시 축구를 했었으니까 그들이 하는 플레이를 닮고 싶어서? 말은 되지만 선후관계가 틀렸다. 그 당시는 축구를 보는 눈도 짧았고 어떤 플레이가 내가 좋아하는 플레인지도 몰랐다.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스타의 플레이를 닮고 싶어하고 그러다 좋아하는 플레이가 생기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들이어서였다. 득점과 승리에서 즐거움을 얻고 그 경기를 이끌어나가는 플레이에서 즐거움과 쾌감을 얻으니 그 즐거움을 주는 플레이어를 좋아하게 되고 열광하게 된다. 그렇게 보자면 열광의 본질은 즐거움에 있는 것이다.

다른 분야를 봐도 비슷한 것 같다. e-스포츠에서 큰 즐거움을 얻는 누군가는 그 분야에서 자신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페이커 같은 스타 플레이어에게 열광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큰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라면 그 분야에서도 가장 자신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연기자나 각본가, 감독을 좋아하고 열광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학문이나 직업인으로서 보이는 퍼포먼스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다. 이 경우 해당 분야의 스타에게 열광하게 되기도 한다. 결국 따지고 들어가면 다 같은 모양인 셈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나는 '연예인은 내 인생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맞는 말이긴 하다. 사실 그래서 열광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대체로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걸 생각하자. 내 인생과 상관이 있을 정도로 가깝다면 즐거움도 느끼겠지만 불편함과 좋지 않은 감정 또한 같이 느끼게 되어 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열광하기 위해선 나와 무관한 거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내가 몰랐던 것은 연예인과 내 인생은 상관이 없지만 즐거움과 상관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점에서 보자면 나는 그저 한 분야에서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다른 분야에서 큰 즐거움을 얻은 것이고 열광의 대상이 바뀐 것 뿐이었다.

그 점을 보자면 열광하는 대상이 있는 인생이 없는 인생보다는 낫지 않나 싶다. 열광하는 대상이나 분야가 없다는 건 어느 것에도 큰 즐거움을 못느낀다는 말이니까.

사람들은 참 다양한 대상에 열광한다. 어떤 때는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까지 열광을 보인다. 그만큼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분야와 포인트가 다양하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란게 없는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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