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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Dec 24. 2020

희소성이 도시재생의 가치를 만든다

도시재생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예전에 한 빈티지 물품 가게에서 90년대 초까지 쓰이던 쟁반을 보고 사람들이 '예쁘다'라고 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엔 촌스럽다고 버리던 물건이 이제 보기 힘들어지니 재평가하는 모습이 나에겐 흥미로웠다.

마찬가지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생긴 상권의 변화는 낡은 건물, 낙후된 지역의 재발견이었다. 낡은 건물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부가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어 변화를 일으킨 덕분이다. 그 이전까지 늘 사람들은 신축 건물과 신축 상가로만 몰려들던 것을 생각해보면 큰 변화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잘 생각해보면 낡고 낙후된 건물과 지역이 그만큼 우리의 삶에서 점점 멀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오래된 건물이 과거의 추억으로 남아있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겐 새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의 대다수가 여전히 그런 낙후된 건물과 지역에 살고 있다면, 그것이 일상이라면 그런 지역에 대한 지금과 같은 반응은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도시재생이 화두가 되면서 개발에 대한 대안적 방향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나도 도시재생 자체엔 관심이 많지만 이러한 흐름에 반대하는 쪽이다. 도시재생은 왕성한 개발이 전제될 때에만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 그 재평가의 기반이 되는 희소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개발을 천박하게 여기고 재산가치를 빼면 별거 없다 주장하거나 사람들이 있는 걸로 안다. 특히나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 중에 많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노스텔지어와 희소성이라는 보정을 빼고 나면 진정 당신들이 찬양하는 것의 객관적 가치는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이달 초에 매경에 보낸 원고에 그런 내용을 담고자 했다.

그리고 어제 올해의 마지막 원고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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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카페를 갔다가 빈티지 아이템들을 인테리어로 활용한 것을 보았다. 레트로가 트렌드가 되고 오래전 아이템들이 인테리어 상품이 되는 세태에 어울리는 곳이었다. 볼 때마다 참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너무나도 촌스럽게 여겼던 낡은 물건들이 이제는 시간이 흘러 멋지고 특이하고 분위기 있는 것으로 여겨지니 말이다.


이런 극적인 대접의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 그 상품을 일상적으로 쓰던 과거에는 다들 감각이 없었는데 더 이상 쓰지 않는 지금은 다들 감각이란 게 생겨나기라도 한 걸까? 아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상품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그저 시간이 흘러 시장에서 그 수가 줄어들어 희소성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걸 뒤집어 생각하면 결론을 내리기 더 쉬워진다. 만약 지금 그렇게 사람들이 멋지게 여기는 1980~1990년대 일상 속 상품들이 흔했다면 지금처럼 멋지게 여겼을까? 즉 옛것에 대한 재평가에서 그 핵심은 바로 희소성에 있다.

마찬가지로 도심 한가운데 오래된 건물들이 창의적인 사업가나 디벨로퍼에 의해 재탄생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이런 오래된 건물들은 분명 나름대로 멋이 있으며 이를 창의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사업가들에 의해 멋지게 다시 활용된다. 그러한 것을 우리도 멋지고 특색 있다고 여긴다.

분명 그렇게 오래된 건물들은 오래전에 우리 삶과 밀접했던 건물이었고 흔한 건물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오래돼 더럽고 낡은 것으로 취급받고, 기피되던 것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평가가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일까?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그런 재평가를 주도한 사람들이나 재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낡은 건물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현대화된 아파트에 거주하거나 꽤 괜찮은 주택에 기거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옛 흔적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반대로 그러한 건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동일한 시각으로 바라볼지 의문이다. 오래된 건물은 그 자체로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노후화된 시설 등으로 인해 거주 만족도를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즉 건물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는 달라지지 않았으나 단지 우리 삶과 시선에서 멀어지고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졌기에 그 희소성의 변화가 낡은 건물들을 재평가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물론 그 속에서 직접 사는, 희소성의 변화가 없는 사람들에겐 재평가가 이뤄질 일이 없지만 말이다.


희소성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그 내재 가치와는 무관하게 흔할수록 저평가하고 희소할수록 고평가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 주거와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을 한번 재점검해보자.

세상엔 아파트를 천박하다고 여기며 단독·다세대 주택을 예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로 과거 삶의 방식이 좋았음을 이야기하고 아파트가 예전 삶의 방식을 단절시켰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연 과거 삶의 방식이 정말로 지금 삶의 방식보다 우월한 것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다. 레트로가 트렌드가 된 것은 지금은 그 레트로와 가장 멀어진 상태고 레트로가 그만큼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예전의 삶이 좋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지금의 삶이 과거와 거리가 멀고 현재 찾아보기 힘들어져서 발생한 노스탤지어지 정말로 더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다.


아파트는 주거공간을 대량 생산하고 공급하는 특성을 띠고 있다. 바로 그 덕분에 일정 이상의 수준을 갖춘 주거지를 대량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파트란 주거 방식이 우리나라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것을 천박하게 여길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아파트에 대한 저평가와 단독·다세대 주택에 대한 고평가는 아파트가 그만큼 많이 늘어났고 옛날 주거지가 많이 사라졌다는 현상의 반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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