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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준 Feb 08. 2021

인문학의 유행과 담백한 글

나는 담백한 글을 좋아한다

글을 쓰고 읽다보면 글에도 취향이 생긴다.  경우는 담백한 글을 좋아하는 편이다. 읽는 사람에게 부담이 없는,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지 않은 .

2000년대 중후반 부터인가 갑자기 뜬금없이 인문학이 유행을 탔던게 생각난다. 뛰어난 인재상에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복합 인재 이야기하질 않나 인문학적 글쓰기가 유행하질 않나. 인문학이 모든 문제의 해답인 것처럼 광풍이 불었던 때다.

나야 나쁠  없었다. 나는 인문학을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동양고전 읽는거 좋아했고 역사를 좋아해서 애늙은이 취급을 받아왔는데 이제서야 나도 정상인(?) 취급을 받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광풍에서 내가 목격한건 기괴한 혼종이었다.

 기억으론 스티브 잡스 때문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스티브 잡스가 Liberal Arts Technology 이야기한 것은 실용성을 갖춘 기술만 있어야 할게 아니라 비실용적인 영역이 주는 즐거움을 더해 기술을   매력있고 즐겁게 만들수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사람들은  맥락 제거하고 Liberal Arts Humanities(이쪽이 우리가 아는 인문학의 정의에   걸맞다) 외쳐댔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후부터 정말 인문학이란걸 아무데서나  갖다 붙이기 시작했는데  결과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뽐내려고 일부러 어렵게 쓴다거나 내가 이런 것도 알고 있다는  자랑하기 위해 내용과 맞지 않는 뜬금 없는 개념을 끌고오는 글들이 늘어났다.  이건 그래도 견딜만 했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어디서 줏어  인문학 용어와 개념과 표현을 마구 인용하여 치장만 화려하게  글이었다. 그런데 글은 그토록 화려한데 내용이 없다. 사람들이 그토록 극혐하던 '안녕하세요 오늘은 xx 알아볼까 해요. 이거 저도 궁금했는데요. (딴소리 왕창) 이렇게 알아보았습니다.' 끝나는 네이버 블로그 이모티콘 왕창 들어간  글의 현학 버전.


TV 나오는 인문학 들먹이던 분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특히나 '인문학적인 xx', '인문학의 결합'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분들. 이런 분들이 쓰신  중에는 참고문헌이나 참고자료 항목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번역서의 경우 출판사가 분량을 줄이기 위해 참고문헌 항목을 빼버리는 경우도 있긴 하나 국내 저자가, 학문을 정석적으로 배운 사람이 이걸 빼먹는 경우는  없다. 그렇게 레퍼런스가 없으니 그러한 책들은 검증되지 않은 썰들이 가득했다. 술자리에서나 오고갈 법한 검증되지 않은 얘기를 책에다 실어  것이다.  썰풀이를 '인문학적 시각'으로 팔고 있는 거였다.

그때 '사람들은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인문학으로 잘난 척을 하고 싶을 뿐이고 유명한 사람들도 근거 없는 썰풀이를 하기 위해 인문학을 들먹이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생각을 확실히 굳히게  이후로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보기조차 싫어졌다. 인문학이 싫어서는 아니고 단지 인문학으로 포장한 화려하기만  글을 싫어해서였다. 화려해도 내용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보통은 치장과 자기과시에 힘쓰느라 내용이 부실하거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때부터 더더욱 담백한 글을 좋아하게 됐던  같다. 내가 나심 탈레브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싫어하기도 하는  바로 이런 담백함과  반대 방향에 있는 사람이고 글이어서다.

몇년 전부터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는데 에세이에서도   취향이 반영된다는  느꼈다.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어느 정도 절제해서  글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건 에세이의 특성상 그래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감정이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니까, 생각과 감정에 걸맞게 글을 무척이나  쓰든가 아니면 자신의 글에 걸맞게 생각과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 물론 글을 빼어나게  쓰는  매우 희귀하기에 대부분은 절제가  나은 거고.

감정이나 생각을 담백하게, 담담하게 써내려가기 위해선  감정과 생각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보는 쪽이다. 그리고 절제된 감정과 생각을  글엔  시간의 흔적이 느껴진다. 절제를   좋아하는 이유다.

물론 시대적 트렌드가 인스타에 인용하기 위해 예쁘게, 있어 보이게 잔뜩 꾸미고 치장한 문장들이  인기가 있다는  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절제가 더욱 돋보이는거 아닐까. 오히려 그런 절제 속에서 생각과 감정이 더욱 짙게 배어 나오는 거니까.

높은 곳에 있는 물은 노력하지 않아도 아래로 흐르고 주머니 속의 송곳은  튀어 나온다.  이렇게 생각하며 자랐다.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과시하지 않아도 깊이가 있다면 자연스레 드러나게 되어 있고 억지로 지나치게 꾸미지 않는 것이  예쁜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표현하는 것보단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쪽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도  담백한 글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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