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의 분노에 대한 고찰
야구팬들은 늘 화가 나 있다.
가끔 가다 보면 이들이 경기 때문에 화를 내는 건지 화를 내기 위해 경기를 보는 건지 이해가 어려울 지경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들이 대체 왜 그렇게 화가 많은지 한 번 생각 해보자.
1. 경기수
일단 경기수가 많다. 정규시즌만 144경기로 모든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많다. 이 말은 1년에 잠재적으로 화를 낼 날이 모든 스포츠팬들 중 가장 많다는 얘기다.
평균적으로 5할 승률이니 이러면 평균적으로 72일은 화가 나 있단 건데 야구팬들은 두달 하고도 보름 가까이 늘 상시적으로 화가 나 있는거다.
참고로 프로축구가 컵 대회 제외하고 리그 경기수가 36이고 각종 컵대회 포함해서 최대한 많은 경기를 해봤자 50여 경기쯤 되는데 야구팬들은 축구의 총 경기수보다도 많은 날을 화가 나 있단 얘기기도 하다.
2. 경기 빈도
야구는 다른 스포츠보다 경기 간격이 짧다. 축구는 3일 혹은 7일 간격이지만 야구는 1-2일 간격이다. 이 말은 축구는 팀이 지더라도 하루 정도 후면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야구는 어제 경기의 분이 풀리지도 않았는데 또 화가 날 수 있다는 얘기다. 화가 중첩된다. 만약 팀이 스윕이라도 당한다면 3일 내내 화가 나 있는거다.
야구는 7일 중 5-6경기씩 하는데 이건 일주일 동안 3일 이상 화를 낼 수 있단 뜻이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7일중 3일 이상 화를 내면 사실상 매일 화가 난 사람처럼 보인다. 야구팬이 아무리 자신은 아니라 해도 이 정도면 상시적 분노 상태처럼 보일 수밖에.
3. 경기의 단위
야구는 축구와 농구와 비교해서 게임이 분절적으로 진행된다. 공 하나당 플레이 하나가 나오는 식이다. 이러다보니 사람들이 플레이 단위로 화를 낸다. 아주 아주 양보하여 사람들이 공 단위가 아니라 타석 단위로 화가 난다고 완화하여 계산해 볼 경우 2017년 기준 경기당 평균 타석수는 79타석이니 이 중에 1/3 정도만 화가 난다고 가정하면 한 경기 동안 26번은 화를 내게 되어 있다. 참고로 KBO의 경기당 소요시간은 3시간 10여분 대니, 시간당 8번 이상은 화를 낸다는 뜻이다. 이게 매우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다.
아무리 화가 난 사람이라도 3시간 동안 계속 화를 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야구는 가능하다.
4. 이겨도 화를 낸다
앞의 모든 조건들이 모여서 4번으로 이어진다. 야구팬들은 이겨도 화를 낸다.
내가 이걸 확실히 느낀게 2010년대 두산팬들을 지켜보면서다. 경기에서 이겼는데 화를 낸다. 1위인데도 화를 낸다.
왜 그런가 싶겠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면 지는대로 화를 낸다. 이기면 왜 저번 경기에선 이렇게 못했냐고 화를 낸다. 2번에서 언급한대로 경기간 간격이 짧아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3번에서 언급한대로 경기 중에 이상한 플레이나 본해드 플레이가 나오면 그걸로 화를 낸다. 그 플레이로 지면 화를 낸다. 이기면 왜 편하게 갈수 있었던걸 어렵게 가냐고 화를 낸다.
이 정도면 사실상 경기 수만큼 화를 내는거나 다름 없다. 144승 무패, 승률 10할에 내용까지 완벽한 경기를 펼치지 않는 이상 화를 안낼 일이 없을거 같다. 답이 없다.
그런데 한 팀이 이래봤자 리그 전체로 보면 결국 화의 양은 동일할 수밖에 없다. 무간지옥이란게 이런거 아닐까 싶다. 행복을 위해 야구를 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무간지옥.
이쯤에서 생각을 포기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