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어때서, 양동신 지음
자주 사지는 못하지만 꽃을 좋아한다. 꽃을 좋아하는 만큼 싫어하는 꽃다발의 스타일이 있다. 예를 들면 장미 백송이를 축구공마냥 둥그렇게 말아 놓은건 싫어한다.
내 취향은 좀 더 '자연스러운' 스타일이다. 잎을 많이 활용하고 잎과 꽃이 서로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섞여 있고 서로 높낮이가 달라서 입체감이 부여된 꽃다발. 색도 강렬한 색이 포인트를 주는 정도로 들어가면 자연스러움이 더욱 배가 된다. 이걸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들에서 꽃과 풀을 그대로 한아름 따온 듯한 느낌의 꽃다발'이다.
그런데 내가 '자연스러운 스타일'이라 쓰긴 했지만 사실 실제 자연에선 그런거 없다는 걸 잘 안다. 진짜 자연 상태에선 내가 예쁘다고 표현할 만큼의 잎과 꽃의 밀집도가 나오질 않고 서로 다른 꽃이 제대로 어우려져 있지도 않다. 잎은 상하거나 시들어서 누렇게 변색된 경우도 많고 생각보다 지저분하다. 물론 자연적으로 핀 꽃과 풀에서 제대로 만든 꽃다발 이상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매우 드물게, 운이 좋아야 목격할 수 있는 정도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자연스러운 스타일'이야말로 실제 자연에는 잘 없는 유사 자연이며 인공의 극치라는 점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자연 또한 마찬가지다. 분명 자연이 아름답긴 하지만 자연에 아무런 보호 없이 노출된 인간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괜히 고대인들이 자연을 신으로 숭상한게 아니다. 이걸 나는 예전에 남미여행을 가서 느꼈다. 사람을 압도할만큼 아름다운 대자연을 눈으로 보고 체험하며 정말 아름답단 생각을 했지만 관광상품화한 구역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고립될 경우 내 발로 살아나오기가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게 참 아이러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철저하게 인공의 통제로 보호받는 환경 하에서만 누릴 수 있다.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안전한 발판 위에 발을 딛은 인간만이 그 아름다움을 누릴 여유가 되는 것이다. 인공의 통제와 보호가 없다면 아름다움은 공포의 대상이 되고 생존을 걱정해야 할 문제가 된다. 당장 길도 없는 산에서 밤에 고립되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자연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음에도 전혀 아름답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또한 자연 중에서도 인간이 아름답게 여기는 부분만 인간에게 노출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여러 부분 중에서도 인간들이 아름답고 여기는 부분은 상업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인공적인 개발을 통해 더 많은 인간에게 노출될 수 있게 만든다. 이 때문에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는 자연 또한 어느 정도 인공이 가해진 산물이란 얘기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 여기고 인공을 못생기고 나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이분법에 불과할 뿐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이런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책이 바로 [아파트가 어때서]이다. 제목이 아파트이긴 하지만 내용은 우리가 인공의 극한으로 꼽는 건설과 토건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자연과 환경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분들은 대체로 댐 같은 것을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물은 흐르는 것이 자연스럽고 깨끗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토건을 통해 조성된 인공은 자연의 파괴력에서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댐이 등장한 이후로 인간은 가뭄이란 충격에서 좀 더 자유롭게 되었고 한강과 낙동강을 비롯한 국내의 강에 무수한 댐이 들어서면서 강을 끼고 있는 도시들은 더 이상 강의 범람이란 문제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인공이 우리에게 탄탄히 서 있을 수 있는 발판이 생겼고 그제서야 우리는 자연을 두려움이 아니라 편안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이미지는 현재와는 한참 다른 과거의 이미지인 경우가 많다. 아마도 토건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도 비슷할 것이다. 환경파괴와 검은돈, 부패 등등. 물론 20세기 산업화의 시대에 토건업이 그러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정녕 그것이 문제라면 토건의 문제점을 줄이는 방식으로 해결을 하면 될 것이지 토건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10년이면 자연도 크게 변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연이 몇번 변할 정도로 오래된 인식으로 현재를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인공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은 깨부수는 것이 좋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자연이라 이야기하는 것 중에서 정녕 인공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없다. 서울시민들이 누리는 한강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인공이 만든 유사자연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한강 공원과 자연적인 범람을 막는 인공적인 치수의 결합이 있기에 사람들이 한강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인공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파괴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사람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 또한 인공이기 때문이다. 대도시가 바로 좋은 예다. 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매우 좁은 지역에 모여 살면서도 그로 인한 오염과 파괴를 최소화하는게 바로 현대의 인공이다. 더군다나 앞서 꽃다발의 예처럼 고도의 인공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순수 자연 이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형성된 것이 도시의 유사 자연들이고 말이다.
[아파트가 어때서]는 도시와 인공에 대해 사람들의 통념과는 다른 시각을 던진다. 인공은 지나치게 사람들로부터 혹평을 받고 있다. 인공의 기반 위에서 우리가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필터링해 취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과도한 평가절하인 셈이다. 인공에 대한 혹평이 고정관념에서 기반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가 해야할 것은 인공의 배척이 아니라 인공의 발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