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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nda Feb 25. 2021

하라 가즈오의 <가자가자 신군>

(다큐가 좋다!) 전후 일본 날 것의 싸움

<일본문화연구> : 전쟁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하라 가즈오 감독의 <가자가자 신군>(1987)

타인은 지옥이다-사르트르


1.     들어가기: 계속되는 전쟁

    하라 가즈오 감독의 다큐멘터리 <가자가자 신군 ゆきゆきて, 神軍>(1987)에 등장하는 오쿠자키 겐조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불편한 소수다. 전후 40년이 지난 일본은 풍요롭고, 평화롭게 보이지만 그의 전쟁은 43년 뉴기니 전쟁 이후 끝나지 않았다. 종전으로 일본에 돌아왔으나 어쩌다 부동산업자를 살해한 그는 10년 동안 감옥에 갇힌다. 감옥에서 그는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되는데, 그에게 닥친 엄청난 불운이 뉴기니에서 살아 돌아온 일인으로서 전쟁의 기억을 묻어둔 채 일상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린 것이다. 사르트르도 예상하지 못했을 신과 만나며 살아 남겨진 자로서의 목적을 깨달은 그는 대자적 존재다. 모든 형량을 치르고 사회로 돌아온 후 그는 국가의 얼굴이던 히로히토 천황에게 빠친코 볼을 던지고, 포르노와 합성한 천황의 전단지를 긴자와 시부야, 신주쿠 거리에 뿌리며 비겁한 자라 외친다. 그는 천황의 군대보다 상위인 신군(신의 군대)의 일원으로서 무책임한 체제와 이에 동조하는 자에게 심판을 가하는 천명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낯선 자가 되어 뉴기니전쟁 동료들을 하나 하나 방문하며 아무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 전쟁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2.     불의한 국가

    패전국이라는 오욕보다 카또오 노리히로의 지적처럼 “더 이상 진심으로 자신의 ‘의’를 믿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 전후 일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자신을 움직인 ‘이’ 혹은 ‘의’가 실은 타기할 무엇, 즉 비리이며 불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자신을 지탱하던 진리체계가 자기 안에서 붕괴하는 것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후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카또오, 1998:28). 카또오가 정답이 없다고 예견했던 바와 같이 오쿠자키 겐조라는 아나키스트가 등장한다. 국가는 통치의 정당성을 신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하려 했으나 신(천황)은 정의롭지 못했고, 이에 대해 사죄하지도 책임지지도 않았기에 피통치자들을 움켜쥐지 못했다. 베버의 이해를 통해 살펴보듯 전쟁을 선포했을 당시의 천황은 어쩌면 전통과 카리스마, 그리고 미개한 아시아에 문명과 해방을 전파하겠노라는 나름의 합리, 즉 세 가지 모두의 정당성(베버 2015:412-3, 마루야마, 2009:473-4)으로 일본인들의 복종을 설득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오오오까의 성찰처럼 패전의 결과 깨닫게 된 ‘더럽고’ ‘꾀죄죄한 히노마루’를 손에 들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카또오, 1998:90). 깨끗한 히노마루라는 ‘자랑’의 부정 혹은 ‘더러움’의 긍정은 패전 직후 국가라고하는 상상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었을 지 모른다.

    “여러분은 이 나라를 대단하게 여기지만 살다보면 뭐 일본 말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국가는 사람사이의 벽이예요. 서로의 단결을 막는 벽. 가족도 하나의 벽이고 인간을 고립시키고 유대감을 단절시켜요. 일종의 율법이랄까. 그래서 맞서 싸우는 거지요”


3.     날 것의 싸움

    사실상 천황에 빠친고 볼을 날린 오쿠자키 겐조지만 그가 시작한 싸움의 스케일은 절대 거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가 경험한 불의는 뉴기니에서 배가 고픈 병사들에게 배급량을 줄이고 국가를 제창하도록 한, 모집한 일꾼에게 그에 합당한 삯을 주지 않고 보다 큰 이념적 고취를 진작하려는 고용자의 불의이며, 전쟁을 시작하고 죽음이 다하도록 싸우라고 하급자에게 명령을 하고는 자신의 목숨과 지위는 하나도 희생하지 않는, 언행 불일치의 상급자 혹은 지도자의 비합리다. 이러한 불의가 권력이 큰 자에게 갈수록 그 피해가 더 커지는 것이다. “절대 다수의 대중들은 지배집단이 사회적 삶에 부과해 놓은 일반적인 방향에 ‘자발적으로’ 동의한다”(그람시, 1971:12, 존 앤더슨, 2013 재인용)라는 말처럼 지배체제에 묵종하는 수용자들이 이러한 불의가 지속되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눈감는 대중은 불의의 연속적인 재생을 차단하기위해 처단되거나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이 된다. 오쿠자키 겐조는 입을 닫고 기억을 묻으려는 38연대 동료들에게 가족들의 보호라는 평범한 삶의 안위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설득하고, 협박하고, 폭력을 가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동료를 위령한다는 하반신을 수술한 옛 병사를 분노에 차 발로 걷어 차고,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그의 상급자였던 중사에게 주먹을 날린다. 오쿠자키 겐조에게 지배자들이 부르짖던 정당성(예를 들면, 야스쿠니 신사는 전쟁 전과 같은 일본 국가의 존립을 위해 중요한 상징)은 이제 모욕이며, 긴장을 유발하는 원천으로 무너져 버린 지 오래다.  


4.     부끄러운 기억

    다큐 속에서 뉴기니 전쟁의 기억을 추적하는 모두가 직면하게 되는 것은 결국 ‘돼지고기’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종전 후 두 명의 병사가 사령관의 명령에 의해 사형당한다. 5개의 소총이 군간부들에게 주어지는데, 1개의 소총엔 총탄을 넣지 않은 상태다. 그래야 총을 쏘는 자들의 부담을 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생병은 뉴기니에는 돼지가 없다는 얘기를 담담히 전한다. ‘검은 돼지고기’는 원주민을, ‘흰 돼지고기’는 백인/일본인을 지칭했다(위생병은 백인을 지칭했으나 이후 일본군들에게 ‘흰 돼지고기’는 금지되어 있었다 라는 말을 통해 같은 일본인임을 알 수 있다). 허기진 일본군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인간사냥을 시작했던 것이다. 너무 빠른 원주민은 잡을 수조차 없었으며, 같은 부대원들 중 연약한 자가 다음의 희생 대상이 된다. 포로였던 오쿠자키 겐조에 따르면 그들과 전쟁하던 적군들에게서조차 볼 수 없었던 비인간적인 참상이다.        


5.     타인은 지옥

    어쩌면 오쿠자키 겐조는 한때 그의 동료들이었던 옛 전우들에게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부끄러움을 집요하게 들추는 거슬리는 존재다. 입을 닫은 전우에게 처형당한 두 병사의 사진을 들이대며 뉴기니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니 사실을 말하라고 강제한다. 전쟁의 참혹한 기억은 오쿠자키 겐조의 온 생을 삼켜 버렸다. 그는 비참한 전쟁을 야기한 채 무책임의 기만을 보이는 최고 지도부(천황과 총리)와 그 하수들을 응징하는 심판자로서의 라이프스타일을 취한다. 비단 그 뿐이겠는가?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 모두 40년이 지난 후에도 죽은 자의 꿈을 꾼다. 묘비 앞에 흰쌀밥과 우메보시로 소박한 밥상을 올리며 살아남은 자들은 헛된 노래를 부른다. “엄마는 부두에 나가~ 오늘일까 내일일까~ 저기 저 머나먼 곳~ 이역의 전장터에서~ 부디 살아만 있어다오~ 귀국선을 기다린다~.”

    이러한 지옥은 오쿠자키 겐조가 주장하듯 더 큰 체제의 문제일 것이다. 분명 전쟁 때 일본이라는 국가는 자신들의 병사를 즉자적 존재로 만들었다. 마루야마가 논했듯 “각자가 행동의 제약을 자신의 양심 속에 지니지 않고 보다 상급자(궁극적 가치에 가까운 사람)의 존재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독재 관념 대신에 억압의 이양에 의한 정신적 균형의 유지”(마루야마, 2009: 61)를 취하며 그 체제에 편입된 사물과 같은 부품의 삶은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오쿠자키 겐조)과 마주했을 때 그 타자적 시선으로 말미암아 지옥을 경험한다. 이러한 거대한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는 자유로운 주체의식 없이는 타파할 수 없다.


6.     나가기: 저항의 다른 이름인 루쉰

    “절망은 길이 없는 길을 가는 저항에서 나타나고, 저항은 절망의 행동화에서 드러난다”(다케우치 요시미 2004, 이영진 2014:38 재인용)는 다케우치의 말처럼 오쿠자키 겐조는 거대한 국가 체제에 맞서 총을 쏜다. 그의 한발은 10여년의 감옥 생활과 맞바꾼 계획이다. 책임지지 않는 일본 사회에 더 이상 동일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절망에 찬 그는) 나름의 저항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쿠자키 겐조의 행동을 평가하는 것은 그가 다큐를 통해 남기고자 했던 행보를 지켜본 자들의 몫일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독립군으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했고, 그의 저항은 한국의 전 역사를 통해 추앙된다. 오쿠자키 겐조는 자국민에게 총을 겨눈다. 그는 신군이지만 그를 영웅으로 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오쿠자키 겐조가 절망의 끝에서 만난 신을 통해 자기 삶의 목적을 이해하는 방식은 비트겐슈타인이 종교적 믿음을 유아론적이라 칭했듯 일인칭적이다. 그의 정체성으로 드러낸 ‘신군’이라는 말은 그가 선택한 군인으로서의 삶의 태도와 행동의 방식을 설명해주는데,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받기 어려운 그의 실천, 즉 전쟁으로 절망한 그와 국가와의 싸움은 그의 인생을 통틀어 쉽게 끝나지 않는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 이영진, 2014:37 재인용). 매우 생경한 ‘날 것(生)’의 인생, 신의 군인으로서 오쿠자키 겐조를 다큐를 통해 마주하며 지배권력의 힘과 그에 맞서는 미약한 저항, 그리고 전쟁과 같은 강력하고도 파괴적인 기억과 그로 인해 갖게되는 인간의 감정과 신념, 그리고 실천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참고문헌>

하라 가즈오 감독, 1987, 다큐멘터리 <가자가자 신군>

카또오 노리히로,1998,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창비

존 앤더슨, 2013, 문화 〮장소 〮흔적, 한울아카데미

마루야마 마사오,2009,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한길사

막스 베버, 2015, 경제와 사회1, 문학과지성사

이영진, 2014, ‘제국’의 그림자와 마주한다는 것, 일본연구제59호, 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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