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사의 고백

이곳에서 진짜 '물맛'은, 그리움의 맛이다.

by BREWOLOGY

[들어가며: 지구라는 이름의 신화]


사람들은 내가 매일 창밖으로 별과 은하수를 볼 것이라 상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곳, 고도 400km의 철제 상자 안에서 내가 정말로 보는 것은, 저 멀리 홀로 푸르게 빛나는 단 하나의 별, '지구'입니다.


이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지구는 더 이상 현실의 땅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언젠가 살았던 곳이라는, 아득한 '신화'가 되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꿈'이 됩니다. 그리고 그 꿈의 정중앙에는, 언제나 '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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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단 한 방울의 무게 - 완벽한 순환의 고리]


지구에서는 낭비되던 것들. 이곳에서는 그 모든 것이 생명입니다. 내가 오늘 마시는 물 한 방울은, 어제의 내가 흘린 땀과 숨결, 그리고 동료의 배설물까지 완벽하게 정제하여 재탄생한 것입니다. 처음엔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내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오염도 없는 가장 완벽한 '생명의 순환'이라는 것을요.


지구에 있을 땐, 이런 순환을 잊고 살았죠. 강에서 시작해 바다로 흘러가고, 다시 비가 되어 내리는 그 거대한 순환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 좁은 우주선 안에서, 내 몸이 곧 강이자 바다이고, 구름이 되는 이 처절한 순환을 매일 겪으며, 나는 비로소 생명의 진짜 무게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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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푸른 행성을 향한 갈증]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완벽하게 깨끗한 물을 마실수록, 나는 더 지독한 갈증을 느낍니다.
그것은 수분 부족의 갈증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정제된 H₂O 분자 속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영혼의 갈증입니다.


나는 지금, '비 냄새'에 목마르고, '계곡의 물소리'에 목마르며, '파도에 발이 잠기는 감각'에 목마릅니다. 이 멸균된 물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흙과 식물과 바람의 흔적이 담긴, 살아있는 지구의 물이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결국, 내가 진짜로 그리워하는 것은 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물이 존재하게 하는 거대한 푸른 행성 그 자체인 셈입니다.


[나가며: 내 잔에 담긴 것은 고향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물이 담긴 팩을 들고 창가로 갑니다.
저 멀리 푸르게 빛나는 지구를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물을 마십니다.


이곳에서 내가 마시는 것은 단순한 액체가 아닙니다.
이것은,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에 대한 '기억'이고, 언젠가 다시 그곳에 발을 디딜 것이라는 '약속'이며, 이 차가운 우주에서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누군가 우주에서 마시는 물은 무슨 맛이냐고 묻는다면,
이제야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진짜 '물맛'은, 그리움의 맛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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