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사무엘의 선택

물과 태양의 길, 당신이 마시는 커피의 숨겨진 이야기

by BREWOLOGY

제 이름은 사무엘입니다.

제 손은, 저의 존경하는 친구 아베베의 손처럼 붉은 흙으로 물들어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제 손은, 농부들이 땀으로 길러낸 붉은 커피 체리의 달콤한 과육으로 늘 끈적입니다.

저는 이곳, 수많은 농부들이 그들의 '4년 9개월의 응답'을 가지고 찾아오는 '프로세싱 스테이션(Processing Station)'의 관리자입니다.


아베베와 같은 커피 농부들이 긴 시간 인내하여 이 붉은 커피 체리를 세상에 내놓는 '탄생의 조산사'라면, 저는 그 붉은 과육의 외피를 제거하고 그 안에 잠든 '영혼(씨앗)'을 세상 밖으로 꺼내거나, 혹은 그 과육의 모든 것을 품은 채 태양 아래서 그 영혼을 더욱 깊게 물들이게 하는 '운명의 결정자'와도 같습니다.


붉은 열매가 제게 도착하는 순간, 저는 중대한 갈림길에 섭니다. 이 씨앗의 영혼을 어떻게 꺼내야, 아베베가 4년 9개월간 쏟아부은 그 위대한 수고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 앞에는 크게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물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태양의 길'입니다.


첫 번째는, '물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 방식을 '워시드(Washed)'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붉은 열매를 물의 힘으로 정직하게 씻어내는 길입니다. 우리는 기계를 이용해 붉은 껍질과 달콤한 과육을 먼저 벗겨냅니다. (이 과정을 '펄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씨앗에는 끈적하고 달콤한 점액질(Mucilage)이 단단히 붙어있습니다.


이 마지막 점액질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이 씨앗들을 맑은 물속에 담가 하룻밤 혹은 그 이상을 '발효'시킵니다. 이 시간 동안, 물속의 미생물들이 씨앗을 상처가 없이 그 끈적한 막을 부드럽게 녹여줍니다.


다음 날, 깨끗한 물로 이 씨앗들을 씻어내면, 마치 목욕을 막 마친 아기처럼, 씨앗은 '자신 본연의 순수한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 방식은, 씨앗이 자라난 '땅'의 성격과 씨앗이 품은 '혈통'의 목소리를 가장 깨끗하고 명료하게 드러내는, 정직하고 투명한 길입니다.


두 번째는, '태양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 방식을 '내추럴(Natural)'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인류가 커피를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이어진, 가장 오래되고 느린 길입니다. 저는 아베베와 같은 농부들이 가져온 붉은 열매를, '씻지 않고 과일 그대로' 넓은 아프리카의 뜰(African Bed) 위에 펼쳐 놓습니다.

그리고는 꼬박 3주에서 4주 동안, 저 위대한 태양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이것은 단순히 열매를 '말리는' 작업이 아닙니다. 이것은 '과육의 마지막 헌신'을 이끌어내는 신성한 대화입니다.


태양의 뜨거운 입맞춤 아래, 붉은 과육은 서서히 쪼그라들며 검은 건포도처럼 변해갑니다. 이 과정에서, 과육은 자신이 품고 있던 모든 달콤함, 모든 과일의 향기, 그 모든 생명의 에너지를... 자신이 감싸고 있던 '씨앗'에게 남김없이 밀어 넣어줍니다. 과육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씨앗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주니, 너는 부디 더 깊고 풍부한 존재가 되어라."


이 길은 고단합니다. 우리는 3주 내내, 씨앗들이 골고루 태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쉼 없이 손으로 뒤집어주어야 합니다. 한순간이라도 게을리하면, 4년 9개월의 기다림이 한순간에 썩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당신이 마시는 한 잔의 커피에서, '워시드'의 깔끔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씨앗 본연의 목소리'를 듣고 계신 것입니다. 반대로 '내추럴'의 진한 과일 향이나 와인 같은 복합적인 향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씨앗의 목소리에 더해, '자신을 희생한 과육의 마지막 노래'까지 함께 듣고 계신 것입니다.


어떤 길이 더 좋은 걸까요? 글쎄요. 그것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서로 다른 ‘방식의 선택’ 일뿐입니다.

‘물의 길’은 본연의 맛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선택, ‘태양의 길’은 달콤함까지 품어 풍미를 더하는 선택이지 싶습니다.


이제 물의 길이든, 태양의 길이든, 모든 대화가 끝났습니다. 과육은 사라지고, 그 안의 씨앗은 '파치먼트(Parchment)'라는 얇은 속껍질에 싸여 단단하게 잠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씨앗은 아직 '커피'가 아닙니다. 이 씨앗은 마지막 여정을 떠나기 전,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어야만 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 씨앗이 '휴식'을 통해 어떻게 더 위대해지는지에 대해 나눠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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