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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Apr 04. 2022

4월, 은행나무 & 황무지

4월에 나에게 주는 선물

 또 다시 4월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마지막 용을 써보던 꽃샘 추위도 때 맞추어 내려준 봄비로 허무하게 물러나고, 가로수, 공원, 아파트 단지, 산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심겨진 나무에서 하루가 다르게 파란 새순이 돋아나거나 꽃망울들이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곤 하죠.
  
 나의 작업실 옆에는 가냘프고 질죽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심겨져 있습니다. 
 아마도 건물 바로 옆에 심어진 때문인지 옆으로 넉넉히 퍼지지 못하고 위로만 삐죽 올라가는 그야말로
 ‘홀쭉이 녀석’입니다.  4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올 때만 해도 유리 창 아래에 있어 내다보면 꼭대기 우듬지가 보이던 녀석이었는데 어느덧 키가 더 크게 자라 이제는 고개를 살짝 돌리면 또렷이 나를 쳐다 봅니다. 
 
  녀석이 4월이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오는 것일까요? 
  그 홀쭉이 은행나무가 힘겨운 지난 겨울 추위를 견디더니 드디어 앙상한 가지에서 잎눈을 빼꼼히 내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는 나는 어느덧 녀석과 정이 들었나 봅니다. 누런 애벌레 같은 가지 껍질을 뚫고 꾸물꾸물 삐져 나오는 잎눈이 귀엽기만 합니다.  
 
 지금은 왜소하고 썰렁하니 볼품 없지만 그래도 은행 잎이 가지를 덮고 모양을 갖출 때면, 가끔 새들이 깃들 정도로 제법 울창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그 새들은 나무 가지에서 잘 놀다가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기겁을 하고 멀리 날아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렇듯, 
 4월에 맞이하는 작업실 옆 은행나무는 나에게 겨울이 가고 진정한 봄이 왔다는 전령 역할을 해마다 톡톡히 해 주고 있습니다. 단절을 넘어 다시 연결이 되었다는, 땅밑에서 무언가가 바삐 돌고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하나의 징표이죠. 
 
 4월에 글을 쓰다 보면 늘 T. 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가 떠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이 바로 그 시기가 아닌가 싶어 용기를 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대지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p. s : 
 사족(蛇足) 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유명한 시구절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시는 분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4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라디오 진행자가 왜 4월이 잔인한 달인지를 모르겠다고 참석자와 청취자에게 묻는데 누구도 정확한 답을 못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어느 청취자 분께서 4. 19혁명이 일어난 달이라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냐고 당당하게 말씀하셔서 제가 깜놀^^ 
 (참고로, 4. 19혁명은 1960년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황무지는 1922년 영국 런던에서 씌어진 작품입니다.) 
 
 정답은 아래 글에 답이 있어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대지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즉, 4월에 대지는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기 시작하는데 반해 인간의 마음은 죽어 있는, 무미건조한 상태임을 대비시켜 그런 활기찬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에게는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시인은 말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언제 보아도, 20세기 최대의 명시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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