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어느 학년 학기초였던 것 같다. 가훈(家訓)을 조사해오는 숙제가 있었어 아버지께 우리 집 가훈을 물었다. 그때 아버지께선 ‘하면된다’가 우리 집 가훈이다라고 하셨다. 그때는 너무 평범해 보이고 한자말도 안 들어있는 ‘하면된다’가 가훈이라는 게 좀 촌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다른 집은 좀 더 창의적이거나 권위적이거나 뭔가 그럴듯한 가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 집은 그냥 ‘하면된다’라니…
그런데 지금 다시 되돌아보면 ‘하면된다’라는 정말 간단 명료한 말이 내 인생의 방향을 크게 움직여왔던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마치고 나면 어머니, 아버지께서 일하는 곳까지 매일 혼자 찾아갔어야 했는데 그 여정은 김해에서 부산까지 총 3대의 시내버스를 약 1시간 30분 동안 타는 (당시 120cm 초딩 1학년에겐) 40km의 엄청난 어드벤처였다. 그런데 대단한 건 우리 마미께서는 ‘딱 한번’ 같이 버스를 타면서 길을
알려주고는 알아서 혼자 다니게 하셨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게 알게 된 것이지만 어머니께선 너무 걱정이 되어서 몰래 따라가면서 잘 해낼 수 있는지 보셨다고 한다.) 여하튼, 이 어드벤처도 처음엔 정말 무섭고 두려웠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하니까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컴퓨터/인터넷/비지니스에 빠져 살아 공부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초등학교 때는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학교 생활 보다는 학교 밖의 생활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내 성적표 또한 매우 찬란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까지 영어, 수학, 과학은 대부분 ‘가’ 혹은 ‘양’ 이였다. 학교나 부모님께 반항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학교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어떤 형과 ICQ로 대화를 하던 중에 대학 이야기가 나왔다. 그 형은 Y대 경영학과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Y대에서 멋진 대학생활을 같이하자는 말을 해주었다. 정말 순진했던(?) 나는 손빨래를 하고 있는 어머니 옆으로 가서 ‘엄마 나도 Y대 갈래. 그런데 나 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때 어머니께서 해준 한마디가 나를 공부로 이끌었다. ‘그럼, 우리 아들 당연히 할 수 있지’ 그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막바지를 지나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객관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무런 기초도 없었고 공부도 제대로 안 해본 내가 수능을 1년 정도 앞두고 이런 객기를 부리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 펴보는 공통수학의 정석, 수학1의 정석을 겨울방학 한 달간 독파했고 다른 과목들도 미친 듯이 공부했다. 기초가 너무 부족해서 수학 공식을 이해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난 할 수 있다’ 라는 생각만 가지고 무작정 머리 속에 밀어 넣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정말 운 좋게도 고3이 되는 첫 모의고사에서 전교 2등을 했고 약 1달 만에 내 모의고사 성적은 100점 이상 올랐다. 그런 운 좋은 성적 상승이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수험기간 동안 하루 3시간만 자고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엔 Y대 경영학과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명문대를 가겠다고 말도 안 되는 마음을 먹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만류했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내가 도전하겠다는 마음조차 먹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 인생이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사업자등록이라는 걸 해볼 때도 그랬고, 캄보디아로 자원활동 캠프를 가겠다고 정부에 2천만 원 신청할 때도 그랬고, 한국의 명문대를 버리고 베이징대학으로 유학을 갈 때도 그랬고,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해 인도네시아를 갈 때도 그랬고, 인도네시아에서 미국 회계사 시험을 공부할 때도 그랬고, 한국 정부와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7만 불 받아 인터넷버스를 만들 때도 그래고, 벤처캐피탈에서 일해보겠다고 할 때도 그랬다. 누구나 해보고 싶지만 감히 도전하지 않을 때, 난 무모(혹은 무식)하게 도전했고 도전하니까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말 그래도 ‘하니까, 되더라’.
최근에 주변의 지인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하지 않아서 되지 못하는’ 케이스를 너무 많이 보게 된다. 실패가 두려워서 혹은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래서 요즘에 와서야 우리 집 가훈이 정말 간단하면서도 대단한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하지 않으면 당연히 할 수 없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되고 싶다면 해야 한다.’ 정말 간단하고 명료한데 왜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주저하고 있을까?
정말 ‘하면된다’ 그리고 적어도 ‘하면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나갈 수 있고, 계속 도전하는 사람만이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난 이제 우리 집 가훈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난 앞으로도 우리 집 가훈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