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M May 28. 2024

우당탕탕 가족여행 1 - 출발

첫째 딸의 새로운 발견

가족여행을 갔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여행 계획을 잡고 이것저것 예약을 한 것은 이미 두 달 전이었지만 역시나 정해진 시간은 꽤나 빨리 다가왔다. 거창하게 해외여행 (우리는 이미 해외에 살고 있다)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다 같이 가는 여행이라 다들 설레었던 모양이다. 출발 며칠 전부터는 여행 가서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제법 많이 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좀 미안한 감이 들었다. 


'우리 너무 오랫동안 여행을 안 갔나?' 


사실 최근 몇 년 동안은 각자 따로따로 여행을 다녔다. 아내와 나랑만 가거나 아니면 아이들끼리만 가거나 하는 식으로 어딜 다녀왔다. 물론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무조건 어딜 가나 다 같이 여행을 다녔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따로따로 여행이 가능해졌다. 호주에 이민 와서 우리 가족만 살면서부터 여행이라는 것이 한국 방문이 대부분이었다. 부모님도 뵙고 다른 가족들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은근히 한국 문화가 그립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다른 나라를 가거나 호주 내에서 다른 도시로 여행 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솔직히 시간도 시간이지만 4인 가족이 여행 가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였다.

 

다시 이번 여행 이야기로 돌아와서 계속하면 비행기로  1시간 반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의 다른 도시로 가는 여행이라서 출발하는 전날 저녁까지 아무도 가방을 안 쌌다. 그래도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전날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드디어 스토리지에서 여행용 가방을 끄집어내고 각자 필요한 것들을 싸기 시작했다. 그저 모두에게 한마디만 했다. 


"다들 가방은 최대한 간단하게 싸라"


나는 가방을 따로 보내고 그걸 찾기 위해 기다리고 하는 것이 싫어서 비행기에 들고 탈 수 있는 조그마한 가방을 각자 하나씩 준비했으면 했지만 두 딸들과 아내의 화장품 등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방 하나를 보내기로 했다. 그래도 예전 같았으면 가방 싸면서 이래 저래 의견 충돌도 하고 다투고 했을 법도 했지만 이번에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이건 뭐지?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 아무튼 짐도 다 싸고 내일 아침 공항까지 가는 우버도 예약했고 이제는 정말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항으로 출발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그냥 지나갈 일이 없지. 


저녁 먹은 것들을 정리하고 4일 정도지만 집을 며칠 동안 비워야 해서 이것저것 정돈하느라 핸드폰을 체크하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항공사에서 문자와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열어보니 우리 비행기 스케줄이 변경되었으니 체크인을 다시 하라는 것이었다. 오전 6시 반 비행기가 7시 반 비행기로 바뀐 것을 알았다. 어차피 에어비엔비 숙소 체크인이 오후 3시라서 그 정도 변경은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새로 체크인을 하기 위해서 항공사 앱을 열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앱을 열고 체크인을 하려고 하는데 이미 지정했던 좌석 정보가 다 없어진 것을 알았다. 순간적으로 뭐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항공편이 변경되었으니 미리 예약한 좌석정보가 무의미해졌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좌석을 예약하려고 하는데 모든 좌석들이 다 선택 불가로 뜨는 것이었다. 오직 선택 가능한 좌석들은 추가로 돈을 페이 해야만 하는 것들만 남았다. 그리고 그것들 마저도 6개 정도만 보였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으..... 이건 뭐야!!! 대체 어쩌라는 건데!!!!"


소파에서 티브이를 보던 첫째 딸과 아내는 순간적으로 내 목소리에 놀라서 돌아보면서 말했다. 


"왜 그래? 뭔 일이야?"   


나는 그 질문에도 아랑곳없이 이미 패닉상태로 들어가는 중이었고 그 찰나에 만약에 이 비행기를 못 타면 어쩌지라는 그다음 비행기부터는 가격이 더 올라가고 가격은 둘째 문제고 오늘 중에 못 가는 거 아닌 가라 것으로 인해 스트레스 레벨이 이미 레드 구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앱에서 다시 여러 번을 시도해 봤지만 변한 건 없었다. 그래서 노트북을 열어서 항공사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다시 체크를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런 경우는 거의 100% 항공사에서 오버부킹을 받았고 우리 가족이 다른 비행기 편으로 보내진 거였다. 그래서 나는 항공사 욕을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을 본 첫째 딸이 그제야 나에게 와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나는 설명을 했지만 목소리와 얼굴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진정을 시키는 쪽은 첫째 딸과 아내였다. 


첫째 딸: "아빠 괜찮아, 진정해. 항공사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니까. 내가 지금 전화할게"

아내: "여보 왜 그래. 화내지 말고 진정하고 차근 차근해"


그 순간 나는 첫째 딸과 아내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하면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라는 것만이 나의 두뇌를 지배하고 있었다. 선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또 다른 방법은 그나마 남아있는 좌석 4개를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예약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이미 추가 비용 지불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 사이 첫째 딸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고 있었고 역시 내 예상대로 연결음만 계속되고 고객센터 직원은 응답하지 않았다. 좌석 예약이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러자 마자 고객 센터 직원의 목소리가 딸의 스피커 폰으로 들렸다. 첫째 딸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문제점을 이야기했고 어찌 된 것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전혀 떨림이 없는 목소리였다. 당연히 고객센터 직원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구질 구질한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나는 딸에게 이미 추가 요금을 내고 좌석 예약을 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딸은 이번에는 고객센터 직원에게 방금 추가 요금을 내고 좌석을 예약했는데 일반 좌석으로 4개를 부킹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내가 지불한 추가 요금을 다시 돌려달라고 했다. 목소리가 정정당당했다. 잠깐 기다려 달라는 고객센터 직원의 말을 듣고 나서 첫째 딸의 시선은 나한테로 왔다. 그러면서 말했다.


"아빠, 그걸 왜 결제했어? 내가 지금 고객센터에 전화하고 있었잖아? 어이구..... 정말.... 참을성을 좀 가지세요"


2분 정도 지나서 항공사 고객센터 직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매니저에게 리펀드에 대해서 말했는데 리펀드는 안 되고 대신 항공사 포인트를 주는 것은 가능하다면서 그렇게 원하는지 물어봤다. 나는 거절했다. 더 이상 이 항공사랑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포인트를 받아서 다시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실랑이 끝에 다시 리펀드는 안된다고 했고 결국 포기하고 유료 좌석으로 가기로 했다. 더 이상 얘기를 해봤자 더 나은 상황이 될 수 없다고 나는 판단했고 원래 항공편 예약할 때 싼 비행기 표를 끊었으니 추가 요금 지불해서 좋은 좌석 타고 편하게 가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그냥 그쯤에서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계속 화가 안 풀렸고 항공사 욕을 계속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내와 첫째 딸은 아빠의 모습에 실망한 듯이 내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항공사 편을 들었다. 호주 국내 여행을 자주 해본 첫째 딸은 이런 일이 자주 있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고 추가 요금을 결제하지 말고 고객 센터에 전화해서 해결하면 다 되는 것이었는데 내가 너무 패닉하고 서둘러서 그렇게 됐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나의 잘못이 없다고 말했고 그러면서 첫째 딸과 아내의 연합군과 살짝 냉전이 있었다. 나는 한마디 했다.


"에이.... 출발하기 전에 이게 뭐야. 갑자기 가기 싫어지네"


이 말에 첫째 딸은 더 이상 말하기 싫다고 하면서 한마디 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 왜 저래?"


그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둘째 딸이 와서 나한테 물었다. "뭔 일이야?"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둘째 녀석은 그 긴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나에게 한마디 툭했다. 


"아빠, 항공사가 원래 좀 그래. 그냥 잊어버려" 


마치 나 혼자서 난리를 한바탕 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갑자기 쓸쓸함이 확 몰려왔다. 스스로 마음을 좀 달래고자 혼자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아내가 그때서야 방에서 나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 괜찮아. 돈 좀 더 내고 편하게 가면 더 좋지 뭐"


아내는 나름 나를 위로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을 했지만 전혀 안 괜찮았다. 이유는 돈을 더 내고 좌석을 다시 예약한 것도 아니었고 항공사에 대한 불만도 이유가 아니었다. 내가 왜 그 상황에서 혼자 패닉하고 서둘렀는지 그 당시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나 스스로가 미웠다. 그러면서 반성했다 나는 왜 첫째 딸처럼 차분히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선택을 하고 그쪽으로 결정했는지에 대한 자책을 하고 있었다.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맥주를 거의 2병을 마셨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 스케줄이 변경되는 바람에 새벽에 일어날 필요 없이 오히려 2시간을 더 자고 편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첫째 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은근히 그녀의 눈치를 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제 일로 많이 실망했나?'


아침에 공항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시드니에서 멜버른은 사실 호주에서도 가장 바쁜 비행 구간이다. 비즈니스로 출장 가는 회사원들도 많고 우리처럼 주말여행을 다녀오는 가족들도 꽤 많은 편이라서 늘 바쁘다. 국내선이라 좀 천천히 공항에 가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 도착하자마자 키오스크 머신으로 가서 일단 보딩 패스를 끊고 가방 하나를 부치는 것을 신청해야 했다. 요즘은 거의 모든 것들이 기계들이 대신해서 기계 작동법을 모르면 참 곤란할 때가 많다. 오랜만에 기계 앞에 섰는데 왠지 모르게 버벅거렸다. 메뉴가 조금은 복잡해 보였고 잠시동안 투덜거렸더니 그 사이를 못 참고 첫째 딸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척척 단계를 밟아서 필요한 것들을 다 해결했다. 다 끝난 후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나한테 출력된 보딩 패스와 가방 부치기 위해 필요한 바코드를 건넸다. 찬바람이 쌩하고 느껴졌다. 옆에서 아내와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서로 어깨만 으쓱하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까칠하기는'.


그때부터 우리 가족 여행의 리더는 첫째 딸이 되어 버렸다. 늘 내가 앞장서서 하던 일들을 이제는 첫째 딸이 하게 된 것이다. 나랑 아내와 막내 녀석은 그저 따라가기만 했다. 아내는 연신 첫째 딸이 원래 이랬나라고 놀라면서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아서 좋기는 했지만 딸에게서부터 능력 없어서 후배에게 밀린 말년 부장 같은 대우를 받는 것 같아서 마냥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는 첫째 녀석의 행동을 보고 기특하다고 웃으면서 좋아라 했다. 첫째 딸의 새로운 발견이기는 했다.


첫째 딸이 어렸을 적에 우리 가족은 처형네 가족이랑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에 살았다. 그러다 보니 왕래가 잦았고 다른 동이라고 해도 바로 옆동이라서 걸어서 가면 5분도 안 걸리는 간격이었다. 어릴 때부터 첫째 딸이 너무 내성적이고 겁이 많고 해서 늘 걱정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에 처형이 한 가지 테스트를 해보자고 했다. 첫째 딸을 혼자 처형네 집으로 심부름을 보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첫째 딸은 무섭다고 안 간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결국에 나와 아내는 첫째 딸을 억지로 밖으로 내 보냈고 우리는 베란다 창으로 울고 가는 첫째 딸을 보면서 웃다가도 걱정이 되어서 어쩌나 마음을 졸였던 적이 있다. 결국 첫째 딸은 우리가 가르쳐 준 대로 엘리베이터 버튼도 정확히 누르고 처형네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도착해서 서러움에 엄청 울었다. 첫째 딸은 그 정도로 새가슴이었고 그 소심한 성격을 고쳐보려고 참 많이도 노력했었다. 그랬던 첫째 딸이 이제는 엄마와 내가 좀 서툴다고 자기가 나서서 이것저것 챙겨서 우리 가족을 리드를 하다니. 사실 아내도 놀랄 만도 하다.


아무튼 우리 가족의 다 함께 가는 오랜만의 여행은 이렇게 출발되었다. 비록 출발부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왕 가는 거 멜버른에 가서 신나게 재미나게 놀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 좌석에 몸을 기대었다. 참고로 추가 요금을 주고 예약한 좌석은 생각보다 더 편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