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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

by BM

올해도 이제 이틀 남았다. 매년 늘 같은 생각이지만 시간이 참 빠르다. 개인적으로는 새해가 시작되고 1월 딱 한 달이 가장 길게 느껴진다. 1월만 지나고 나면 마치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녹색 불로 바뀌자 마다 가속 페달을 밟고 출발하는 자동차처럼 그때부터는 시간이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더 빨리 가는 기분이 든다. 시간이 금이라는 말이 참 맞는 말이다.


어느덧 올해 마지막 글을 브런치에 올린다. 올해 초 브런치 작가가 되어서 나름 신기한 맘 반 그리고 즐거운 맘 반으로 2권의 브런치 북을 발행했다. 올해 초에 계획한 일중에서 계획대로 성취한 몇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 공짜로 글을 쓸 수 있게 기회를 준 브런치 플랫폼에 감사하고 그리고 발행한 글들을 읽어주신 분들 더군다나 그런 글들에 대해 '좋아요'와 '구독하기'를 눌러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은 어느덧 나에게 있어서 힐링이 되었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무너지는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무엇보다도 나 자신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여전히 정해진 스케줄을 글을 발행하는 일은 full time으로 일을 해야 하는 나에게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가 보려고 한다.




지금 회사에 15년 전쯤에 입사를 했을 당시에 한국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회사 연락처를 아무리 검색을 해도 한국 성을 가진 직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외로운 이민 생활에서 가끔 커피도 마시고 같이 밥도 먹으면서 지낼 수 있는 한국인이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입사 후 1년 반이 지나고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점점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다들 태어난 나라들은 다양했다.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중국, 대만, 중국, 유럽 어느 나라들, 뉴질랜드 등등. 정말 다국적 사람들이었다. 함께 이야기를 해 보면 억양, 음식, 문화, 기후 등등 참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일하던 직원 한 명이 퇴사를 알려 왔다. 꽤나 친하게 지냈던 터라 같이 어울리던 사람들과 의논한 끝에 환송회를 해 주기로 했고 나한테 장소를 좀 알아보고 예약을 부탁했다. 고민 끝에 한국식 BBQ를 하는 한인식당으로 결정을 하고 다 같이 모였다. 15년 전만 하더라도 시드니에서 한국식 BBQ를 제대로 하는 식당들이 많이 없었고 지금처럼 한국 음식 문화가 늘리 알려지지도 않았을 때였다.


아무튼 거의 2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모였다. 호주 회사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저녁 회식 문화가 없다. 금요일 일을 일찍 마치고 오후 4-5시쯤 회사 근처 펍에서 맥주 한두 잔 마시고 7시쯤에 곧장 집으로 가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그날은 굳이 말하자면 좀 특별한 날이었다. 식당 직원의 배려로 인해 우리는 한쪽 구석의 조용한 장소에 테이블 5개를 부쳐서 앉았다. 나는 테이블마다 고기와 소주를 주문했고 바로 음식이 차려졌다. 다들 한국식 BBQ 식당은 처음이라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래서 우선 간단하게 밑반찬이 어떤 것이고 고기는 어떻게 구우며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맛있게 먹은 방식인지도 설명을 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녹색 병은 "소주"라는 한국 술인데 내가 한국에서 회식 때마다 자주 마시던 것이라고 옛날얘기도 곁들어 말했다.


문제는 호주에서는 고깃집을 가면 식당 직원들이 고기를 구워주지 않는다. 모두가 셀프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한국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본 적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아파 왔다. 그날 저녁 나는 테이블 5개를 돌아가면서 고기를 구워주고 술도 따라 주면서 한국의 음주 문화 등등 마치 K-food전도사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 맛본 직원들의 만족도는 100% 이상이었다. 특히 소주를 너무 좋아했다.


그 이후로 그날 모인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 이름은 DKF (Drinking & Korean Food).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같은 식당을 예약하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소주와 고기를 주문해서 마시고 먹었다. 그때마다 나는 늘 고기를 구워줬어야 했으며 테이블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서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다. 함께한 직원들은 늘 끝나고 나한테 감사의 텍스트나 이메일을 항상 보내주었고 다음 모임을 기대한다고 했었다.


모임은 회사 내에서 소문이 나고 알지도 못하는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자리로 와서는 시드니에서 괜찮은 한국 식당을 좀 추천해 달라고 하거나 한국 여행을 가고 싶은데 가면 어떤 곳을 가봐야 하는지 등등 내가 마치 한국 대사관 직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계기로 그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으며 일을 하면서도 예전보다 더 수월하거나 가끔씩 힘든 일이 있어서 부탁을 해야 할 경우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나도 너무 좋았다.




그러다가 몇 해 전부터는 그 모임에 더 이상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더 이상 모임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도 있었고, 나 자신이 다른 팀으로 옮기면서 그 모임에 있던 사람들과 일적으로 좀 멀어진 것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사정도 컸다. 그렇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모임이 시작되었으며 여전히 그 모임이 이어져 가고 있으며 여전히 한식당에서 한국식 BBQ와 소주를 마신다는 얘기를 간간히 그 모임의 멤버들을 통해서 듣고 있었다.


때 마치 올해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그 모임에 나가는 친한 직원 두 명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거의 5년 만에 만남이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자연스럽게 DKF 모임에 대해서 말을 했다. 여전히 내가 구워 주었던 한국 고기 맛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고기를 어떻게 구워야 할지 모르겠고 어떤 음식을 주문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올해 마지막 모임을 할 예정인데 내가 왔으면 좋겠다고 아니 꼭 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가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어느 날 문자가 날아왔다. DKF 연말 모임이 잡혔으니 꼭 오라는 메시지였다. 약속한 것도 있었고 옛날 추억이 그립기도 해서 컨펌 메시지를 보냈다. 예전에 자주 모이던 고깃집은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어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하는데 어디가 좋겠는지 추가로 물어봤다. 몇 군데를 추천해 주니 그중에서 한 식당을 예약했다고 고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모임은 평일 금요일 저녁이었다. 요즘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지라 서둘러 일을 마치고 시티 한인식당으로 나갔다. 당시는 연말이 가깝기도 했고 금요일 저녁이라서 시티의 모든 식당들은 사람들로 벅적벅적 거렸다. 5분 정도 늦게 식당에 도착하니 내가 아는 몇몇이 입구에서 보이고 간단하게 인사를 한 후 왜 안 들어가고 서 있냐고 물었더니 인원이 너무 많아서 실내에 에이컨이 나오는 장소에 테이블을 세팅하기 힘드니 야외 테이블을 준다고 했나 보더라. 그런데 그날은 날씨가 무척 더워서 야외 테이블이 썩 좋은 옵션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홀 매니저(한국인)를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부탁을 했더니 겨우 안쪽으로 테이블을 받을 수 있었다. 다들 내가 와서 가능하다고 그러면서 자리에 앉았다. 주문은 당연히 나의 몫이었다. 다들 나를 가리키면서 네가 막 알아서 주문하면 된다고 너를 믿는다는 둥 농담을 건넸다. 메뉴판을 보고 있으니 그 가게 여사장님이 테이블로 오셨다. 그러더니 우리 모임을 기억한다고 하시면서 다시 와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신기했다. 5년도 더 전의 일인데 다 기억하고 계셨다.


평소에는 녹색병의 소주를 시키곤 했는데 그날은 특별히 푸른색병의 진로 이즈 백을 시켜줬다. 다들 이건 뭐냐고 묻길래 내가 대학 다닐 때 유행하던 소주라고 말하면서 레트로 버전이라고 말해 줬다. 음식도 나오고 소주도 몇 잔씩 돌아가고 하니 분위기는 물어 익어갔다. 다들 내가 모임에 돌아온 것이 신기하다고 하면서도 그동안 궁금했다는 싹의 인사를 했다. 아무도 내가 왜 안 온 건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다시 이렇게 돌아온 것이 너무 좋다고만 했다. 그러면서 10년이 넘게 만들어 온 우리들의 추억들을 말하면서 그날 저녁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날 저녁 식당에서 처음 보는 멤버를 만났다.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서 서로 말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그 친구는 개발팀의 시니어 개발자로 최근에 회사에 들어왔고 나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 모임의 역사에 대해서 대충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었다. 술잔이 많이 돌아가고 나서 그 친구가 언제 간 내가 기획하는 플랫폼 개발팀에서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이 기억난다.


네가 부러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아직도 기억해 주고 다시 컴백한 것을 환영해 주다니 말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해 봤다. 16년 전 처음 호주로 이민 와서 정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 시작했어야 하는 그 절박한 심정과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푸라기도 잡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나를 알리고 나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시드니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그 모임의 친구들처럼 나를 기억해 주고 나를 불러주고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그 친구들에게 소홀했던 나의 소심한 행동과 마음들이 부끄러웠다. 그들은 항상 같은 곳에서 있었던 것이고 그들은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다시 돌아온 나를 환영하고 안아 주었다.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들은 각자 알아서 살아가고 내 주위에 사람들이 점점 살아져 가는 내 나이 또래가 되면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적어도 그들은 내가 살아온 날들이 후회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늘 같이 지내던 가족들, 친척들, 학창 시절 친구들, 그리고 직장 동료들이 생각나곤 한다. 비록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민 와 멀리 살아서 그들을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내가 그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마음속으로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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