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by 브리

어떤 변화는 결코 시간이 흐른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벌떡 일어나서 시도해본다고 바로 변화가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고작 이것도 못 되었나, 절레절레 고개 젓다가 문득 돌이켜보니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수준이랄까.

두 달 정도 상담을 받았고 앞으로도 더 받아보려 한다. 무슨 큰일이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떤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엉망진창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해결해야 할 것은 없어도 풀어내야 할 것들은 있을 수 있다. 적어도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나 혼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 이제 그만하기로 한다.

여름이 저물어가고 있다. 내 방은 유난히 통풍이 안 되고 창문에 다는 에어컨은 올해 유난히 말을 안 들어서 여름 내내 밤만 되면 고생했는데, 이제는 창문을 조금만 열어두어도 밤엔 아주 시원하다. 은은하게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는 덤. 밤이 좋아졌다. 아침이 다가오는 것도 이제는 막막하지 않다. 아침에 내가 왜 일어나야 하지, 의문을 갖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있는 그대로 지금의 이 삶이 조금은 더 재밌어졌다.

그럼에도 영원히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들, 거두지 못한 자기 의심들, 더 나은 내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나 자괴감 같은 것들은 어쩌면 영원할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다 현명해지는 건 아니더라고. 겁이 많아지는 건 확실하지만. 그치만 나만 이런 건 아닐 테니까. 내 삶에 영감을 주고 정신적으로 지탱해주는 수많은 어른들도 속에는 하나씩 어떻게 해도 달래지지 않는 어린아이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예민하고 유약하지만 그만큼 강인하고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하는 내가 생각하는 유일한 내일로 가는 길이다.


https://youtu.be/nn1pbxe8bAI?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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