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베르너 뮐러, <민주주의 공부>
<필로소피 유니버스>의 원제는 Women of Ideas로, 1978년 동명의 BBC 프로그램인 Men of Ideas을 패러디한 것이다. 총 스물 아홉 명의 여성 철학자와의 짧은 대담을 통해 스물 아홉 가지 질문을 다루고 있으므로, 평소에 궁금했었던 내용에 대한 간략한 답 혹은 어떻게 의문을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북으로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나는 <여자란 누구인가?>, <교양>, <'안다'는 것>, <가능세계>에 대해 메모했다.
여자란 누구인가?
남녀의 본질
신경과학과 도덕
동물의 지위
피해자의 책임
비난과 불평등
사회적 박탈
추방할 권리
다문화주의와 자유주의
암묵적 편견
혐오
취향 차이
언어와 맥락
욕설
교양
신뢰
사전 동의서
'안다'는 것
직관적 앎
미셸 푸코와 지식
보부아르의 삶과 업적
메를로 퐁티와 신체
흄과 불교
아프리카 철학
플라톤과 전쟁
가능세계
철학자들의 예시
철학의 발견
철학과 대중의 삶
나이절: 또 다른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와 비교해 봤을 때 흥미롭네요. 보부아르는 성별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고 했지만 사르트르는 사회적 요소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미아: 맞아요. 하지만 사르트르처럼 돈 많은 백인 남자라면, 자신은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며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워요. 반면에 보부아르처럼 많은 걸 누리긴 했어도 타고난 성의 굴레에 갇힌 사람은 사회구조를 분석하지 않을 수 없어요.
<필로소피 유니버스>, 27쪽.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보부아르는 이 책에서 크게 두 번 언급되는데, 이 부분은 첫 번째 장에서 가져왔다. 환경의 강력함을 믿는 나로서는 서구 철학에서 몸이 등한시되었던 이유도 결국 몸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남성 중심으로 진행되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미아의 말처럼, 정신은 차치하고서라도 먼저 신체적으로도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는 존재가 몸을 중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테레사: [209] 제가 '기본 교양mere civility'이라 부르는 교양이 있어요. 대화를 나눌 때 가져야 할 최소한의 미덕으로 힘겨운 자기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교양이에요. (…)
[210] 기본 교양은 관용 사회에서 내 의견을 활발하게 말하는 데 필요한 미덕이에요. 사회규범인 존중하는 태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거나, 대화를 이어 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미덕을 말해요.
대화할 때 특별히 요구되는 이 기본 교양이, 주어진 상황과 상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는 점을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모자를 어떻게 벗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또는 상대를 어떤 방식으로 존중하고 존중을 표해야 하는지 등 단순히 행동만으로 교양을 생각하지 않아요. 대신에, 상황과 상대를 고려해 무엇이 필요한지 신중히 또는 실용적으로 판단하는 태도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그래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어요. (…) 정리하자면, 기본 교양은 상대에게 함부로 굴지 않고 또한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이에요. 의견 차이가 발생해도 대화가 중단되지 않도록 말이에요. (…)
[212] 나와 생각이 똑같은 사람하고만 이야기하는 게 물론 훨씬 편하죠. 하지만 관용 사회에서 그건 재앙이에요. 민주주의의 재앙이죠. 교양은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에요. 특히 내게 정말 중요한 사안에 대한 상대의 다른 의견을요.
<필로소피 유니버스> 209-212쪽.
이 책에서는 mere civility을 '기본 교양'으로 번역했는데, '최소 교양'으로 번역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테레사는 '교양'이 상류층의 겉치레로 인식되는 것을 경계한다. 교양이라는 것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를 뜻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를 비꼬지 않고 경청하는 태도를 뜻한다.
마사 스타우트의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는 이누이트의 예시가 나온다. 쿤랑게타Kunlangeta는 '해야할 바를 알면서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데, 거짓말하고, 속이고, 물건을 훔치고, 사냥하지도 않으며, 다른 남자들이 없을 때 여자를 농락하는 이를 말한다. 마사는 소시오패스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나, 이 또한 '기본 교양'이 없는 예시이다. 학습능력 없는 머저리 소시오패스를 처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낭떠러지에서 밀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이런 방식이 허용되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사회적으로 분리시킬 수밖에.
문제는 이 '기본 교양' 없음을 마치 '권력'과' '유능함'의 필요조건이라고 우기는 데에 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본 능력, 이 '기본 교양'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효율', '실력', '능력'이라는 말도 안 되는 외피를 덧씌우려고 애를 쓰는데, 그것은 그저 능력 부족이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성 떨어지는 천재 캐릭터와 그런 캐릭터가 활약하는 컨텐츠 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카탈린: [241]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형이상학』은 이런 구절로 시작해요.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뭐든 알고 싶어 한다.' 부디 '모든 사람'에 여자도 포함되어 있기를 바라고요.
앎을 추구하는 건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과업이에요.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한 노력이죠. 그래서 인식론자들(앎의 본질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세상과 어떤 형태로 교류하[242]는지 연구해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알아야 할 것과 진리 차원에서 알아야 할 것이 서로 다르다고 말해요. 이 말이 흥미로운 건, 나를 알고자 할 때의 교류와 사실을 알고자 할 때의 교류가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걸 나타내기 때문이에요. 사람을 안다는 건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세상과 교류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필로소피 유니버스> 241-242쪽.
'앎'이라는 것은 대상/진실/사실/개념에 대한 앎과 사람에 대한 앎의 구성 요소가 다르다는 것은 흥미롭다. 나는 사과와 시와 서울에 대해서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신에 대해서 안다고 할 때에는 언제나 주저하게 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디까지의 관계를 안다고 생각할까? 그 반대는 무엇일까?
헬렌 [329] 여러 대안적인 세계가 존재해요.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우주, 은하수, 별과 지구 그리고 인간 등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세계도 있을 거예요. 지구가 없는 세계, 인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세계 등등이요. 이게 가능세계의 기본 개념이에요.
[332] 한편으로 가능세계는 그저 기술적인 장치일 뿐이에요. 필연성, 가능성, 우연성은 분석이 안 된 개념들이에요. 이 개념들에게 가능세계라는 아주 간단한 장치를 쓰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능세계라는 장치를 왜 사용하고 싶어 하는지는 형이상학적으로 심오한 이유가 있어요.
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가 가능세계에 일정한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필연성의 본질이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었어요. 몇백 년 전에 흄도 필연성의 본질을 굉장히 궁금해했어요. 흄은 필연성의 인과관계를 알고 싶어 했어요. 흄에게 필연성은 아주 모호한 개념이었어요. 제 생각에 루이스도 마찬가지로 필연성에 당혹감을 느꼈을 거예요. 필연성을 고민하다가 가능세계로 넘어오면, 이 세계에서 필연성을 지울 수 있어요.
즉, 필연성이 가능세계로 해결되기 때문에 이 세계에 필연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필연성을 세계의 일부로 보지 않아도 돼요. 가능세계를 중요하게 다루는 까닭은 바로 현실 세계에서 필연성을 지워 버리고 싶은 형이상학적인 이유 때문이에요.
<필로소피 유니버스>, 332쪽.
이 부분에서는 주로 철학적 차원에서의 가능세계의 쓸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문제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비록 악이 득시글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상의 가능세계라는 라이프니츠의 말은 하나님의 전능함에서 비롯되었으며, 볼테르의 비판은 현재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 더 나은 가능세계로부터 비롯되었다. 우리는 어떤 가능세계를 생각해야 하는가, 선택해야 하는가? 가능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행동하기 위해서 필연성을 파괴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네 부분만을 다루었으나 나머지 스물 다섯 개의 화두도 결코 가볍거나 덜 흥미롭지 않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 중에 하나쯤은 평소에 궁금했거나 생각해본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한 편의 글에 작은 포스트잇 하나를 붙여서 자신의 생각을 더하기만 해도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질 것이다. 물론 더 생각해서 찾아보고 공부하면 더 좋고. 생각하는 여자들, 사상의 여인들이 함께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