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하다' 대신에 이 책을

앵거스 플레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by 난란


이제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말도 시쳇말이 된 지 오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이 중요하다, 혹은 인문학이 쓸모가 없다고 하더라도 책을 읽으라는 말은 끊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문학(과 더불어 예술)은 모든 것이 교환 가능하다는 자본주의 질서가 도래하면서 더욱더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했다. 문학은 마음의 양식이 되니까? 교양을 쌓기 위해서? '교양'은 대학 졸업을 위해서 반드시 수강해야만 하는, 그러나 '전공'보다는 덜 빡센 수업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교양 같은 배부른 소리 할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번다거나, 그걸 어떻게 수익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시대 정신이 되었다. '돈을 잘 버는 능력'이 미덕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돈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승-전-수익화라는 자본주의 모델은 문학이 지니는 가치, 소용, 쓸모 같은 것들을 모두 돈으로 환원하기에는 너무 좁은 차원의 논의로 귀결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세상은 교환할 수 없는 것(돈이 안 되는 것)과 교환할 수 있는 것(돈이 되는 것)만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지 않은가?


그렇다면 문학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어떻게 삶에 적용되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 문학을 읽는 사람도, 문학을 읽으라고 가르치는 사람도 명확하게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그런 이들에게 바로 이 책,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는 문학이 왜 필요한지, 삶의 어떤 부분에서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문학의 테크놀로지는 신석기 시대의 도끼나 청동시 시대의 쟁기, 그밖에 금속과 돌과 뼈로 만들어진 여러 창조물과 확실히 구별되었다. 그러한 창조물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외부로 눈을 돌렸지만, 문학은 우리 자신으로서 살아남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내부로 문을 돌렸다.

문학은 인간 생물학에서 제기되는 심리적 도전에 맞서도록 돕는 서술적, 감정적 테크놀로지였다. 아울러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서 제기되는 의심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발명품이었다. (-) 지금도 여전히 죽음을 사유하고 심리적 충격을 덜어줄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별들을 지나 우리에게 불멸의 의미를 전해줄 수 있다.

앵거스 플레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24, 26쪽.



플레처는 문학이란 외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는 것, 오직 '인간'을 위해서 고안된 감정적 테크놀로지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문학이 (외부 문제에) 어떤 쓸모가 있는데?' 라고 묻는 것 자체가 답하기 불가능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문학은 외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외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 인간의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이다. 이 책은 문학을 활용하여 총 스물 다섯 가지의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각 장의 구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며, 이는 아래와 같다.



1. 우리 마음을 문학에 적응시키기

상처 지연의 경우, 청사진은 우리에게 (1) 오이디푸스의 재앙을 미리 알게 함으로써 아이러니하면서도 전지전능한 기분을 수용하게 하고, (2) 오이디푸스의 고통을 지원하도록 코러스와 함께 손을 내밀게 하며, (3) 고마워하는 오이디푸스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세 단계를 밟으면, 그리스 비극의 카타르시스 효과를 높일 수 있다.

2. 문학을 우리 마음에 적응시키기

상처 지연의 경우, 현대 소설에서도 수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 <남아 있는 나날>,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트라우마의 시간을 비트는 이 장치는 주인공보다 먼저 비극적 운명을 감지하게 함으로써, 우리 뇌에 우주적 아이러니를 맛볼 힘을 제공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트라우마를 통해 서로 지원하는 호혜적 경험은 현대극에서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마가렛 에드슨의 <위트>, 마샤 노먼의 <잘 자요, 엄마>,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막을 내리는 순간 우리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돌아보게 된다. 이 모든 사례에서 보듯, 우리는 타인의 비극적 순간에 함께 있어줌으로써 그들이 고마워하는 마음을 감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자기효능감을 높일 수 있다.

앵거스 플레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48-49쪽.



먼저 문학을 분석하고, 이를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인간 내부의 문제 상황과 문학을 통한 해결 방안은 뇌신경학 논의와 연결되는데, 이는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문학의 효용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각 장의 말미에는 해당 장에서 다루었던 문학 작품 외에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작품들을 제시해 주는데, 책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만화, 간혹 게임도 포함된다.


스물 다섯 개의 상황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23장 <얼었던 마음을 녹여라>이다. 이 부분에서는 문학을 통해 제2형 PTSD로 인한 무감각을 치유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제 2형 PTSD는 흔히 알려진 제 1형 PTSD 증상인 호흡곤란, 흥분, 공포, 감정 과잉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 과소-무감각 증상이 발현된다. 이런 해리 상태로 인하여 이인증이나 비현실감이 발현한다. 플레처는 이를 에우리피데스의 희비극의 특성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감정의 분리된 분석은 아테네 관객들이 비극에서 기대했던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2형 PTSD의 무감각을 치료하기 위한 첫 단계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감정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본 다음 그 감정이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 이 절차는 우리를 일종의 정신과 의사로 만들어, 감정을 분석하고 진단하게 한다. (-) 감정이 우리 존재를 위협하는 이질적 요소가 아니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요소임을 배운다.

두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사랑과 감사, 경외감 등 긍정적 감정을 자극하는 활동에 참여한다. 이 절차는 뇌에 유쾌한 기분을 일으켜 감정이 본질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점을 확인시킨다. 긍정적 감정은 뉴런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 혜택을 제공한다.

앵거스 플레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582쪽.



책은 문제 상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을 뇌신경학적으로 분석한 후, 이에 걸맞는 단계를 제공한다. 노출 치료법으로서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여타 고전 희곡과 달리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은 무감각을 치료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활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노블 코믹스인 <펀 홈: 가족 희비극>의 내용이 소개되며, 이 작품 또한 어떻게 제 2형 PTSD를 치유할 수 있는지 설명한 후 (해당 작품의 작가인 벡델 또한 제 2형 PTSD 환자이며, 이 작품은 그의 무감각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른 작품에서 이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일단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스토리를 하나 골라보라. 회고록이나 만화책, 소설, 영화 등 아무 장르나 상관없다. 그런 다음, 그 스토리를 임상적으로 읽어보라. 당신이 정신과 의사라고 가정하고 캐릭터들을 꼼꼼하게 분석하라. 부정적 감정을 다 기록한 다음 그 기원을 추측해보라. 긍정적 감정을 다 관찰한 다음 그 장점을 기록해두라. 결말에 도달하면, 의사다운 소견을 종합하여 정서적 행복감을 포용하라.

앵거스 플레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591쪽.



책에서 제시하는 스물 다섯 가지 사례는 살면서 한 번쯤을 부딪힐 만한 사건들이다. 문학을 읽는 사람이라면 내가 왜 문학을 읽는지, 어떻게 하면 문학을 삶에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회로, 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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