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년 전 여자들과 손잡기

케이트 쇼팽, <실크 스타킹 한 켤레>

by 난란


<실크 스타킹 한 켤레>는 19세기, 20세기 영미 여성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처음에는 엄마한테 빌려드렸고, 다 읽으신 후에는 내가 읽었으며, 친한 후배의 생일 선물로 발송했다.


오랜만에 소설을, 그것도 단편소설을 읽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제쳐두고서라도 하나같이 재미있다. 이백 년을 버틴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면 그 정도의 질은 반드시 담보하고 있어야 할 테다. 서사, 재미, 가독성, 문학성 중 단 하나라도 모자란다면 가차없이 잊혀졌을 테니 말이다.


엄마가 깊은 인상을 받은 <뉴잉글랜드 수녀>는 이백 년 전 비혼을 선택한 여성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은 격정적이지도 흥분으로 넘실거리지도 눈물에 차 있지도 않다.



루이자는 혼자 사는 집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일에 거의 예술가에 가까운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보석처럼 반짝거리게 창틀을 닦아 광을 내고 나면 진정한 승리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옷들을 잘 개켜 차곡차곡 정리한, 라벤더와 전동싸리의 향과 더불어 순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옷장을 들여다보면 흐뭇한 마음에 젖었다. 이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문득 조야한 남자의 물품이 한없이 어질러진 광경, 이 섬세한 조화 한가운데 남자가 자리를 잡으며 어쩔 수 없이 생겨날 먼지와 무질서가 눈앞에 떠올랐는데, 너무나 충격적이라 점잖이 못하다는 양 얼른 지워버렸다.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뉴잉글랜드 수녀」, 『실크 스타킹 한 켤레』, 48-49쪽.



주인공 루이자에게 있어서 집은 자아를 녹여낸 공간이다. 루이자는 이미 '자기만의 방'을 갖고 있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평가절하되며, 반-강제로 행하지 않는 살림, 가사노동은 루이자를 얽매는 족쇄라기보다는 삶을 표현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누군가와의 결합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의 방식이 뒤틀려야 한다면, 누구든 그것을 거부할 수 있다. 지금-지금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언에는 비난과 조롱과 염려가 따라붙는데도-도 아닌 이백 년 전 여성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갔을까?


그건 책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최대한 소설의 내용이 드러나지 않도록 썼는데,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백미라는 것만 밝혀두겠다.


<뉴잉글랜드 수녀>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하나같이 잘 읽히고 재미있다. 내면 풍경을 그려내는 소설뿐 아니라 복수물, 미스터리, 스릴러도 포함되어 있다. 영국 시대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읽는 재미도 있을 법하다.


다만 한 가지 기쁘면서도 씁쓸한 점은, 작품 속 여성들이 겪는 문제와 생각이 이백 년 후 독자가 읽는 나에게 마치 어제오늘의 일처럼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백 년 전 여자들과 손을 잡는다는 것, 체온이 생생하다는 것, 그것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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