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한국식 죽음>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으로 처음 알게 된 오스틴 클레온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아티스트를 위한 실용적인 지침을 안내한다. 영감이라든가 '예술가다운' 피폐한 삶이라든가 하는 소리는 다 헛소리이며, 예술가 또한 여타 노동자와 다를 바 없이 꾸준히 작업물과 결과를 공유하고 드러내야 하는 직업임을 유쾌하게 설명한다.
최근 번역된 <킵고잉>도 읽었는데, 결국 비슷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약하자면 1) 영향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2) 일단 꾸준히 작업해라, 3) 과정과 결과를 사람들에게 알려라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바빠서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을 권하고 싶다. (물론 세 권 다 읽어도 좋다. 책 내용이 간명하고 한 권을 다 읽는 데 길어야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보여줘라, 아티스트처럼>을 읽던 중 완벽주의와 불안으로 작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제안하는 것이 '부고 기사 읽기'였다. 부고 기사를 읽음으로써 간접적으로 가사 체험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삶에 끝이 있음을 절감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를 통해 삶의 중요성을 일깨울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실 부고 기사는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것이다. "모든 부고 기사들은 결국 인간이 얼마나 위대하고 고귀한지에 대한 얘기다"라고 화가 마리아 칼만은 썼다. 지금은 죽고 없지만 그들이 살면서 해온 일들을 읽으면, 나도 일어나 인생에서 멋진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매일 아침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나는 살고 싶어진다.
오스틴 클레온, <보여줘라, 아티스트처럼>, 35.
그러나 한국의 경우, 부고 기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한국의 부고 기사는 그 사람이 생전 무슨 지위에 올랐는지, 어느 명사의 관계자인지를 드러내줄 뿐이다. 한국의 장례는 주인공 없는 장례다. 죽음도 없고, 삶도 죽은 자의 것이 아닌 것이다. 남은 자들의 삶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지, 얼마나 뽐낼만한지 자랑하는 요란한 대회장인 셈이다.
●김금동 씨(서울 지방 검찰청 검사장), 김금수 씨(서울 초대 병원 병원장), 김금남 씨(새한일보 정치부 차장) 부친상, 박영수 씨(오성물산 상무 이사) 빙부상 - 김금연 씨(세화 여대 가정과 교수) 부친상, 지상옥 씨(삼성 대학 정치과 교수) 빙부상, 이제이슨 씨(재미, 사업) 빙부상 = 7일 하오 3시 10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서 발인 상오 9시 364-8752 장지 선산
그런데 누가 죽었다고?
김승희, <한국식 죽음>
누가 죽었는지도 모르는 부고란. '잘난 누군가'만 보이는 죽음. 날짜를 작성해 두었으니 어서어서 오세요. 어서 오셔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누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화환이 몇 개나 왔는지 세러 오는 장례식.
언젠가 누군가의 장례식에 죽 늘어진 화환과 금실 자수를 놓은 조기(弔旗) 보면서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열심히 살아라. 그래야 내 장례식에 화환이 많이 오지." 죽음을 예비하기 위하여 자신이 아닌 자식을 재촉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그걸로 만족하시나요, 아버지? 정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