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과학으로 만들기 [1]

누구든지 시의 멋짐을 납득할 수 있게 만들겠어

by 난란

이번에는 지적 자부심을 채워 보겠습니다. 전에 '낯설게 하기'에 대하여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나요? 일상 언어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언어를 '낯설게' 만들어 언어로 이루어진 인간의 인식을 '낯설게' 하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문학성으로서의 '낯설게 하기'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죠. 이런 '낯설게 하기'의 의의나 효과에 대해 십분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전자의 경우는 보통 이전부터 문학에 관심이 있고 문학을 통해 시각이 바뀌는 경험을 한 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래 사람이란 직접 겪어봐야만 절감하는 존재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낯설게 하기'의 효과라든가 의의라든가, 이런 것들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낯설게 하기'라고는 했지만, 이것은 문학의 쓸모, 문학의 가치, 문학의 의의로 바꾸어서 쓸 수 있을 겁니다. 대체 문학이 어떤 부분에서 쓸모가 있는데? 문학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규명'할 수 있는데? 그건 문학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공유하는 '감정'이나 '느낌' 아닌가? 라는 의문과도 연결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문학성 자체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문학성을 굳게 믿는 사람들도 문학성을 '과학적으로', 즉 누구든지 납득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내가 느끼는 것, 내가 감각하는 것,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걸 이론적으로 명확히 구체화해서 보여 주고 싶은 욕망을 문학성의 차원에서 시도하게 해 준 사람이 바로 페르디낭 드 소쉬르입니다.


근대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초라고 불리는 소쉬르의 업적은 다양한데, 여기에서 주로 다룰 것은 기호의 자의성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기호의 자의성이라, 무슨 뜻일까요? 먼저 자의성, 자의적이라는 것의 의미부터 살펴보자면 "일정한 질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말 그래도 주관적이고 임의적이라는 것인데요, 바로 기호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소쉬르의 논의입니다.


기호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소쉬르는 기호가 기표(記標)와 기의(記意)의 합이라고 보았습니다. 언어는 대표적인 기호 체계지요. 그러면 이제 '사과'를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아마도 빨갛고 동그란 열매가 떠오를 겁니다. 아래 사진처럼요.


'사과'를 생각하라고 할 때 우리는 보통 이런 상을 떠올립니다. 그렇지 않나요?


대상을 가리키는 언어, 기표가 '사과'라면 그것을 가리키는 대상(빨갛고 돟그란 열매) 자체는 기의입니다. 즉 '사과'라는 글자와 대상 자체가 결합되어 우리가 아는 '사과'라는 기호로 작동합니다.


바로 이 기표와 기호의 결합 관계가 자의성을 지닌다는 것이 기호의 자의성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한국어로는 사진 속의 저 빨갛고 동그랗고 속은 하얀 열매를 '사과'라고 부르지만 영어에서는 'apple', 한자로는 '苹果', 프랑스어로는 'pomme', 일본어로는 '林檎'라고 지칭합니다. 빨갛고 동그랗고 속은 하얀 그 열매[기의]가 꼭 '사과'[기표]로 불릴 확실한 근거나 객관성은 없다는 것이지요. 왜 사과를 사과라고 불러야 하나요? 그건 오랜 시간 동안 한국(어) 사회에서 사과를 사과라고 부른 관습에서 비롯되었을 뿐,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과'라는 기호가 마치 태초부터 그랬다는 듯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낯설게 하기'가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관점을 언어를 통해 일깨운다고 할 때, 관습화된 기호 체계가 실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자의적인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과거이기도 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봅시다. 어린이들은 궁금한 게 많습니다. 해는 왜 뜨는지, 물에 손을 담그면 왜 시원한지, 왜 할머니한테 말할 때는 '-요'를 붙여야 하는지, 그리고 사과는 왜 사과인지. 지구가 자전을 해서, 손의 체온이 떨어져서, 할머니는 오래 사셨고 존중받아야 하니까, 어른들은 어떻게든 답을 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질문, 사과는 왜 사과인데? 라는 질문에는 '그냥 그런 거야'라는 궁색해 보이는 답변밖에 못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 정답이었죠. 우리는 훌륭하고 위대한 언어학자 소쉬르보다 더 먼저 언어의 자의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어른이 되면서 ("사과는 당연히 사과지. 그걸 왜 물어봐. 너 어디 아프냐?") 잊어버렸지만요.


그래도 슬퍼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어른이 된 우리에게 언어의 자의성을 의식하게 하는 것, 언어를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시로서 달성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시의 기능, '시적 기능'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로만 야콥슨입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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