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달리 읽기: 김소월, 진달래꽃

아무래도 처음은 김소월이죠

by 난란

시란 무엇인지도 공부했고, 시를 읽는 방법도 이야기했고, 시적 언어가 어떤지도 생각해 보았고, 낯설게 하기도 익혔고, 시를 전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갖추었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읽어 봅시다. 누구부터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무래도 처음은 김소월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너 나 우리가 모두 알기 때문입니다. 시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압니다. 두 번째, 너 나 우리가 모두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한국인이 사랑하는 애송시에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백 년 전 쓰인 시가 어떻게 지금까지 사랑받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김소월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김소월의 본명은 김정식으로, 1902년에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나 1934년에 사망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의 한복판을 살다 간 시인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습니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일본인 목도꾼에게 폭행당한 이후 정신병을 앓았고, 오산학교 중학부에 다니던 중 3.1운동으로 폐교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로 편입한 후 졸업했습니다.


1923년에는 일본 도쿄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하였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중퇴 후 귀국하게 됩니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40만명에 육박했던 천재지변에 당시 일본 내각은 국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하여 조선인들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립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대표적이지요. 이로 인해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합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의 원인을 약자에게 돌리는 태도가 지금은 과연 사라졌을까요? 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김소월은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합니다. 그리고 시인 김억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합니다. 1920년부터 시를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가세가 기울고, 고향 구성에 동아일보지국을 경영하였으나 그마저도 실패하고 맙니다. 결국 1934년에 아편을 먹고 자살하면서 서른 두 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자살이라는 설도 있고,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자, 이렇게 시인이 어떤 시대와 상황에서 살아가고 시를 썼는지 어느 정도 알아보았다면 이제 우리는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백 년도 더 전에 쓰인 시가 어떻게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 있을까? 조금 냉소적으로 본다면 그 작품이 좋다는 세간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민요를 바탕에 두었다니, 시의적절하니까요.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요? 김소월 말고도 민요조를 활용한 시인은 많았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다루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멈추지 말고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 김소월의 시는 전통성을 계승하기도 했고,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다룬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랑받는다는 것은 현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 과거의 글을 현재에 접목하는 것이 우리가 연습할 태도입니다.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시 읽기를 생각해 봅시다. 김소월의 대표작 <진달래꽃> 말입니다. 먼저 시를 읽어 보죠.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의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자, 어떤가요? 이 시를 어떻게 읽을까 하고 고민하기도 전에, 문제집이나 시험대비용 전과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어떤가요? 익숙하지 않습니까?


위 내용은 국어 학원 블로그에서 캡쳐했는데, 대부분의 문제집에도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마찬가지로 위와 같이 내용과 배경 지식에 의거한 해석을 잘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전달해 줍니다. 타당한 분석입니다. 주입식 수업 때문에 시가 어렵고 싫어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내용과 배경을 바탕으로 시 분석하는 방식 자체는 앞서 이야기했듯 분명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제시된 해석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의 의미를 해석해 보고 주체적으로 자기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교과서적 답변을 생각하면서도 더 넓고 자유롭게 생각해볼 수 있다는 용기를 가져 보자는 겁니다. 시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시에 이입할 수 있었나요, 혹은 그럴 수 없었나요? '이별의 정한과 승화'라는 시의 주제가 납득되나요? 만일 그렇다면 같은 주제 내에서 다른 해석을 제기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자유롭게 던져 봅시다. 다만 하나의 해석이 다른 어떤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특정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되기 위해서는 그 해석의 근거는 시 텍스트 속에 논리적으로 속박되어야 합니다. 작품은 독자의 반응에 어느 정도의 확정성을 행사하니까요. (테리 이글턴, 『문학이론입문』, 109)


그러면 시의 주제, 적어도 중심 제재 하는 '이별의 정한'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한이라, '한국에만 있는 말'을 꼽으라고 한다면 반드시 한 번은 나오는 말입니다.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인 한이 이별 때문에 생겼다는 것인데요,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나요? 시적 화자의 태도는 어떤가요? 여러분이 보기에 '이별로 인한 슬픔을 절제하고 승화하여 참고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요?


자, 조금 더 세세하게 읽어 봅시다. 시적 화자는 떠나는 이에게 진달래꽃을 뿌리고, 걸음마다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즈려밟다"? 자, 잠시 다른 말을 하겠습니다. 시뿐만 아니라 모든 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나오면 지나치지 마세요.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지나가세요. 최근 문해력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기본이 되는 어휘력의 경우 약간의 관심만 있어도 늘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찾아 보고, 시간이 있으면 적어 두고 활용하고, 시간이 없으면 한번 보고 이해한 후 지나치세요. 그리고 '모르면 한번 찾아본다'를 반복하세요.


다시 시로 돌아와 봅시다. "즈려밟다"는 "지르밟다"를 변형한 표현입니다. 그 뜻은 "짓밟다. 위에서 내리눌러 밟다." 입니다. 위에서부터 꾹꾹 밟는 모습을 "즈려밟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꾹꾹 눌러밟는 것을 어떻게 "사뿐히" 밟을 수 있는 것일까요?


이 대목 때문에 「진달래꽃」을 신라 시대 「도솔가」와 연관짓기도 합니다. 떠나는 이의 발밑에 꽃을 뿌렸기 때문인데요, 이는 불교에서는 꽃을 뿌리는 공덕이라고 해서 산화공덕散花功德이라고 합니다. 부처가 지나는 길에 꽃을 뿌려 영화롭게 만든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신라 경덕왕 때 나라에 괴변이 생기자 부처의 힘으로 이를 물리치기 위해 꽃을 뿌리며 지은 노래가 바로 「도솔가」입니다. 즉 가는 길에 꽃을 뿌림으로써 떠나는 이를 부처와 같이 높이는 효과를 만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떠나는 이는 부처만큼 귀하고, 시적 화자는 그와 헤어져야만 합니다.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다고 하니 떠나는 이의 뜻에 따르는 "인종"의 미덕을 보여주고 슬픔을 다른 차원으로 "승화"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다는 데에는 전제 조건이 따릅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라는 전제 말이죠. 내가 그렇게 역겨워서 떠난다면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합니다. (1) 화자가 "역겨워" 떠날 정도로 마음이 떠나기, (2) 화자의 분신과 같은 꽃을 "사뿐히" "내리눌러 밟고" 가기. 이 조건이 달성되어야만 화자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이별을 참고 따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이 못 보내 드리지요. 눈물도 흘릴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시는 이별을 순순히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이별을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요?


이처럼 텍스트에 의거해서, 「진달래꽃」의 화자가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였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방법을 바탕으로 학교에서 배운 내용에 머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달래꽃」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수 마야의 「진달래꽃」을 감상해 봅시다. 시를 읽고, 생각하고, 다른 누군가가 이 시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고려하며 들어 보시면 더 재미있을 겁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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