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의심해 보기: 박두진, 해

범주는 편리합니다. 물론 그만큼 성기고요.

by 난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으며 교과서적인, 정답이 있는 시를 달리 읽을 수 있는 방법과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 이번에는 박두진의 시를 읽어 봅시다. 어렸을 때 학교 컴퓨터실에서 한컴타자연습을 켜고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함께 박두진의 「청산도」를 키보드로 필사하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나 검색해 보니 이제는 프로그램에서 홈페이지로 바뀌었고, 장문 연습 카테고리에 「청산도」도 사라지고 「별 헤는 밤」도 사라지고 「서시」만 남아 있네요. 갑자기 쓸쓸해졌습니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 쓸쓸함을 박두진의 시를 생각하면서 달래 보기로 합시다. 그러면 김소월과 마찬가지로 박두진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죠. 박두진은 1916년 태어나 1998년 타계했습니다. 1939년 『문장』에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는데, 정지용은 박두진의 시에 대해서 "산림에서 풍기는 식물성의 것", "시단에 획기적인 신자연을 소개하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정지용은 그 해 박두진뿐만 아니라 조지훈, 박목월도 추천하였는데, 이 세 사람이 '청록파'로 불리는 세 시인들입니다. 이들이 청록파로 불린 이유는 세 사람이 모여 1946년 합동시집 『청록집』을 출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등단한 1939년은 일제강점기 말이었고,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등단 이후 몇 편 발표하지 못하다가 해방 직후 발표하게 된 것이죠.


곧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박두진은 공군종군문인단인 창공구락부에서 활동했습니다. 구락부는 클럽의 일본식 발음을 한국의 한자음으로 읽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공, 푸른 하늘 클럽 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는 않지만 군을 쫓아다니며從軍 글을 쓰는 문인단체에 소속되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글을 써서 군의 사기를 높이려고 한 것이죠. 박목월도 창공구락부 소속이었습니다.


전쟁 후 박두진은 연세대학교, 우석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다시 연세대학교에서 근무한 후 정년 퇴임했습니다. 이후 단국대학교 초빙교수와 추계예술대학 전임대우교수를 역임했지요. 자, 이 정도로 크게 정리해 보았으니 박두진의 「해」를 읽어 봅시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은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 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과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띄고 고은 날을 누려 보리라.

박두진, 해


시를 읽었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인 아무래도 반복과 그로 인한 리듬입니다. 솟아라, 솟아라, 살라 먹고, 살라 먹고, 솟아라, 싫여, 싫여, 좋아라, 좋아라, 좋아라, 따라, 따라, 놀고, 따라, 따라, 놀고, 솟아라… 시를 읽을 때에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 경우에는 반복이 많네. 리듬이 생기는 것 같아. 왜 반복이 많을까? 반복으로 인해 생기는 효과는 무엇이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겠습니다.


화자가 계속해서 해를 부르는 이유는 아무래도 해가 없기 때문이겠죠. 해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눈물 같은 골짜기에", "아무도 없는 뜰에" 있는 "나"는 어둡고 쓸쓸한 "달밤"이 싫다고 거진 흐느끼고 있습니다. 이 외롭고 어둡고 쓸쓸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해입니다.


"해"의 유무에 따라 2연과 3연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죠. "늬[해]가 오면"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라고 말합니다. 당장 2연에서는 "눈물 같은 골짜기", "아무도 없는 뜰"이 "해"가 비춤으로써 "홀로래도 좋"은 "청산"이 됩니다.


해가 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더 이상 쓸쓸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있는 이 곳이 좋아질 겁니다. 4연부터 6연까지의 내용, 해가 도래한 이후의 상황을 주의깊게 읽어 봅시다. 해가 오면 나는 "사슴"과도 놀고, "칡범"과도 놀 겁니다. 해가 와주기만 한다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애띄고 고운 날을 누"릴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 사슴과 칡범이 한자리에 모이면 어떻게 되나요? 칡범이 사슴을 잡아먹지 않을까요? 꽃과 새와 짐승이 어떻게 한자리에 앉을 수 있나요? 거기에 인간인 "나"까지 더해져서? 그렇다면 "애띄고 고은 날"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세하게 질문을 던져 봅시다.


쉼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를 낭송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주변에 누가 있어서 부끄럽다면 입 속으로 가만히 쉼표를 따라 읽어 보세요. 쉼표가 그은 숨의 구간을 따라 읽어 봅시다. 어떤 부분은 빠르고 어떤 부분은 느립니다. 연과 행뿐만이 아니라 쉼표와 마침표 같은 문장부호가 만드는 리듬을 느껴 봅시다. 그리고 또 질문을 던지는 거죠. 왜 이런 리듬을 만들었을까? 이런 리듬이 만드는 의미는 뭘까?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낯선 단어를 지나쳐서도 안 됩니다. "말갛다"는 뭐지? "애띠다"는 뭐지? "애띠다"는 '앳되다'를 변형한 것으로 보이는데, 앳되다는 것은 "애티가 있어서 어려 보이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계속 질문이 나오죠. "해"는 "애티가 있어서 어려 보이"는 것이구나. 어린 것이구나. 새로운 것이구나. 그러면 그건 어떤 의미일까? 라고요.


그리고 다시 이 시를 자신에게로 가져와야겠지요. 「해」의 시적 화자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그 상황에 대한 태도는 어떤가요? 이 시를 읽는 나는 시인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체험할 수는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독자인 나는 시의 "나"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나요? 그 때 나는 어땠나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의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1949년 9월 28일과 29일자 경향신문에 박화목은 「청록파 시인의 미래」라는 글을 투고합니다. 이때 우리가 읽은 「해」에 대하여 "칼빈니즘(칼뱅주의)"이라고 평하는데요, 「해」는 "기독교신조에서 말하는 메시아의 재림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에 대해 "고답적인 실행 없는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현실과 절연한 후에는 어떻게 현실을 구원하겠는가?는 의문이 이곳에 움트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이성적인 실천면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신앙이 현실과 어떤 방편으로 타협하며 처리할 것인가? 이것은 중대한 과제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박두진은 기독교도였고, 박화목의 말대로 "해"를 메시아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모든 동물들이 사이좋게 살았다던 에덴 동산이 "청산"으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겠고요. 박화목이 지적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해」는 작가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일 뿐, 현실에 대한 실천성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박화목의 해석은 교과 과정에서도 다루는 대표적인 해석이기도 합니다. 보통 「해」는 (1) 일제 말기에 작성되어 조국 광복을 염원하는 시이다. (2) 광복 이후 민족 화합을 염원하는 시이다. (3) 기독교적 낙원을 그린 시이다. 라는 해석으로 나뉘고, 박화목의 경우 세 번째에 해당합니다. (1)과 (2)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현실 인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3)은 그렇지는 않죠.


자, 다시 생각해 봅시다. 박화목의 글 제목은 무엇인가요? 「청록파 시인의 미래」입니다. 박화목은 박두진 뿐만이 아니라 박목월과 조지훈에 대해서도 모두 비판하는데, 공통적인 이유는 바로 현실에 대한 인식과 참여가 저조하다는 데 있습니다. 박목월은 자연의 일부를 전체로 보는 어린애小兒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조지훈은 공허한 관념 속에 살면서 기쁨과 슬픔도 구별하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박화목은 "시단의 중요한 존재들인 3씨는 민족시가 출범할 항로를 가리키고指南 있지 않은가"하는 기대를 했거든요.


여기서 우리는 '청록파'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일제 말기의 암흑기와 해방공간의 혼란기에 현실에서 초연한 태도로 자연을 소재로 시를 썼"으며, "우리말 시를 고집하며 우리 고유의 심성을 담아낸 기념비적 시집", "해방공간의 좌우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 서정시의 본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순수 서정시"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니 동시에 "일제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외면"했다거나 "행동하지 않고 침묵"해다는 비판도 따라오는 것이죠. 박화목은 후자에 대해 지적한 것입니다.


당대뿐 아니라 지금도 '청록파'에 대해서는 "시문학이 정치라든가 사회적 목적 같은 다른 이유 때문에 수단이나 도구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즉, 청록파는 현실과 분리된 창작을 중시했다 → 박두진은 청록파이다 → 박두진의 시는 현실을 다루지 않고 문학 자체의 순수성을 중시한다는 논리가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저는 현실과 순수(혹은 서정)가 대립하지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이런 논리가 강력히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청록파인 박두진은 현실에 때묻지 않는 순수한 문학을 추구하기에 「해」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은 분명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박두진은 이후 시집 『거미의 성좌』, 『인간밀림』 등에서 반공 의식을 드러내거나 부패한 정치를 비판하기도 했고, 4.19 혁명에 대해서는 학생 편에서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우리와 한 핏줄이었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같은 청록파인 조지훈도 4.19 혁명에 대한 헌시를 쓰고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신보안법에 반대 서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청록파'라는 카테고리, 범주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너는 청록파, 너는 무슨 파, 너는 어디 소속… 지식을 습득할 때 범주는 정말 효율적인 도구가 됩니다. 다만 이를 참고하되 맹신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볼 수 있군. 하지만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과연 이게 전부일까? 하는 비판적 태도, 의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시 하나조차 정확히 읽어낼 수가 없으니까요.


「해」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어떤 주제를 의도했을까요? 어떤 효과를 창출할까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근거를 갖춘다면 해석은 열린 채로 타당해집니다. 다만 근거 자체에 대해서도 우리는 계속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해」에 대한 다른 이의 해석을 들어 봅시다. 1980년 대학가요제 은상을 수상한 마그마의 「해야」입니다. 실천성이 부족하다고 비판받던 시가 한국 헤비메탈의 효시가 되었을 때, 박두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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