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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un 10. 2024

단어를 많이 아는 일

금정연, 그래서...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 저자 금정연 | 출판 북트리거 | 발매 2022.04.15.

      

제목을 먼저 붙이고 글을 작성하기도 하고 글을 써 둔 뒤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지금은 먼저 붙여두고 본문영역에 커서를 놓은 참인데, '많은 단어를 아는 일'이라고 먼저 입력했다가, 슬슬 한 칸씩 삭제하고 다시 '단어를 많이 아는 일'이라고 고쳐 넣었다. 전자는 어쩐지 소화불량에 걸리도록 한꺼번에 욱여넣는 사진 한 컷이 떠오르고, 다시 골라 붙인 제목은 사전을 넘기며 한 장씩 읽어나가는 영상이 흘러 지나가는 느낌을 자아내는 까닭이다. 단순히 블록의 순서를 바꿔 끼운 것뿐인데, 결괏값은 이렇게나 다르게 산출된다. 


캔버스에 색을 올릴 때, 밑색을 어떻게 까는가에 따라 얹히는 색이 자아내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좀 더 일상친화적인 비유를 들자면, 베이스를 어떻게 까느냐에 따라 얼굴색이 화사해지거나 가부키 분장이 되거나 또는 얼룩덜룩해지거나... 그리되는 현상 비슷하달까. 단어에 집착하느라 사전에 코를 파묻고 있는 모습은, 어떤 경우엔 너무 세부적인 디테일에만 몰두해서 전체적인 형태가 조금씩 망가지는 것도 모르는 조각가를 떠올리게도 한다. 양쪽을 다 잘하면 좋겠지만 고수의 영역이란 게 그렇게 쉽게 진출 가능한 게 아니겠지. 



정말 누가 봐도 이것이 사전이 아니면 무엇이냐- 라든가, 휑하니 지나쳐가며 슬쩍 쳐다만 봐도 저것은 사전이구나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전통적인 외관을 갖춘 사전은 사실상 멸종위기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거다. 정확히는 사전 편찬업계라고 해야 하나, 사전 편찬과 관련된 모든 산업(씩이나 되려나...)이 다 죽어가고 있으니까겠지만. 그야, 아무도 사전 같은 건 더 이상 사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사전은 인터넷으로 잠깐씩만 필요할 때 찾아보면 그만이니까,라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바닥의 원래 터줏대감인 큰 형님들은 힘들어하시는데, 예전 같으면 사전이라는 이름을 달기도 힘들었을 텐데 조금 유해진 시선으로 보자면 틀림없이 사전 가문에 편입할 수 있을 것도 같은 장르의... 그러니까 유사사전이라고 해도 될지, 그런 책들을 제법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누구도 예상 못 한, 사전계의 새로운 맹주가 언젠가 혜성처럼 등장해 흡사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언어전국시대를 평정해 줄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대혼란기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시기라, 갖은 갈등과 동란으로 나라가 종종 시끌시끌하고... (뭐, 많았죠. 사흘의 난 같은 사건들). 재미가 없지는 않았으나 재미만으로 어찌 천하가 다스려진단 말인가... 


헛소리 작작하고, 솔까말 현재의 이 나랏말싸미 근본 없어진 배경에 사전의 권세가 쇠락했음이 분명 한몫했음은 자명한 일인 바,


슬프단 거죠 뭐. 일개 시민 1이 뭐 보탤 말이 있겠나요. 구시렁구시렁.



아무튼. 


그래서 사전인 듯 사전 아닌 사전 같은 너... 들이 많이 출간되어서 읽는 재미가 꽤 있다는 결론을 꺼내겠다. 서론이 쓸데없이 굉장히 길었는데 (이걸 F로 안 읽고 한 줄 한 줄 다 읽어내려 왔으면 우선 박수 쳐드리고, 자리라도 깔아드려야 하나-) 이 책은 굳이 한 줄로 요약하자면 신조어 사전 같지만 신조어로 사회를 읽고자 하며, 도대체 우린 왜 여기까지 흘러온 것인가, 를 살펴보고자 하는 펄떡이는 마음을 문장 사이사이에 감추고 있는 그런 책이다. 에세이인데 사전 같기도 하고, 사회학 책 같기도 하고, 문화비평서 같기도 한 그런 책. 



어떤 말이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들불 번지듯 널리 퍼질 때  내 입 하나 더 그 말 위에 얹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잠깐만 멈춰서 그 말을 누가 만들었을까, 왜 만들었을까, 이 말이 퍼져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릴 때 과연 아무 문제도 없을까... 또는 뭔가가 좋은 쪽으로, 혹시 안 좋은 쪽으로 변하는 건 없을까를 10초 정도만이라도 생각하면 어떨까. 이 말이 왜 생겨났고 사람들이 여기에 맹목적으로 공감하는 걸까 한 번 의문을 가져보면 어떨까. 이런 것이 작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헤아려보는 것도.


나만의 생각일지언정, 여하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할 '계기'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내 고막을 맡긴 지도 벌써 몇 해째다. 구글의 인공지능이 내게 추천하는 건 많게는 수십 년, 적게는 한두 철쯤 지난 노래다. 밀린 학습지를 풀듯 밀린 노래를 복습하는 셈이다. 한때 나는 가요를 거의 듣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이젠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가 유행하던 시기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정작 나는 그 시절에 그 노래를 듣지 않았는데도. -77쪽


와 c... 이 문단을 발견한 순간 소름이 쭉 돋았다. 요즘 내가 하는 행동하고 너무 똑같단 말이지.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과 더는 만날 수 없다거나 이제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별은 ‘나’라는 대륙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것, 그리하여 헤어지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살면서 가까워지고 멀어진 사람들의 흔적으로 점철된 존재다. 사람들은 오고, 또 사람들은 간다. 자아의 모양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우리에게는 모두 리아스식 해안과 같은 복잡한 경계가 있을 테다. -127쪽
단어 각각의 세세한 차이를 <국어사전>은 섬세하게 짚어내지 못한다.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확인해 보라.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일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 비록 요즘엔 ‘모르는 개 산책이다’라는 말도 있는 모양이지만(이는 ‘모르는 게 상책이다’를 들리는 대로 적는 말이며,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이런 참사를 방지할 수 있다. 무척 귀여운 참사이긴 하지만…) -128쪽


그러니까 이런 거...


<옥스퍼드영어사전>을 펴내는 ‘옥스퍼드대학출판부’는 해마다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는데, 이런 정치적 상황을 반영해 2016년의 단어로 ‘탈진실 post-truth’을 꼽았다. 탈진실이란 무엇인가? 단어 그대로 진실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진실이 아닌 것. 그렇다면 그냥 거짓 아닌가? 하지만 여기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은 탈진실을 “감정이나 개인적 믿음이 공공 여론을 형성하는 데 객관적 사실보다 더 영향을 발휘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탈진실은 진실이 개인의 정치적 입장에 종속되며, 개인의 감정이 사실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리킨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포스트트루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탈진실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현실을 왜곡해 자기 생각에 끼워 맞추려고 애쓰는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고 외치는 캠페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맥락에 따라 어떤 사실이든 마음껏 선별하고 수정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까지 이어진다. -144쪽 


말은, 시대의 인상 같은 것이다. 별생각 없이 쓰고 남기는 이 많은 말들이 언젠가 화석처럼 남아 우리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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