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화 Jun 12. 2024

뭔가를 사랑하면 할 말이 많아지지

브라이언 딜런, 에세이즘

나만 이런지는 모르겠는데, 무슨 주제를 어떤 톤으로 다루고 있을지가 명확하게 보이는 글(e.g.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생각합니다」 :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덧붙입니다. 예시로 든 이 책은 가장 최근에 읽었고 굉장히 좋게 읽은 책이어서 기억에 남아 절로 떠올렸답니다 :)! )은 그냥 읽게 되지만, 어딘가 추상적인 제목, 혹은 해석하기 나름인… 아주아주 여백이 많은 제목을 보면 내 나름으로, 같은 제목으로 한 권의 책을 쓴다면 어떤 내용을 쓸지를 상상해 본다. 물론 그 책의 저자가 쓴 것보다 훨씬 난삽하기 짝이 없는 글이 되겠지만, 여하간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책은 펼치기 전에 그런 재미를 준다.      



에세이즘 | 저자 브라이언 딜런 | 출판 카라칼 | 발매 2023.08.07.



저자는 에세이라는 꽤나 두루뭉술한 장르의 외곽선을 따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기에 ‘형태를 잡는’ 일로 책을 시작한다. 이런 방식으로.      


다시 말해, 에세이는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시험하는 글이 아니라 대상을 측정하는 글이다. 글 자체의 힘, 글을 쓰는 저자의 힘을 재는 글이 아니라 자기 밖에 있는 어떤 것을 재는 글이다. 에세이 쓰기 essaying는 가늠하기 assaying이다. -23쪽      


무려 버지니아 울프는 에세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에세이의 첫 단어는 우리를 홀려놓아야 하고, 우리는 에세이의 마지막 단어와 함께 깨어나 개운함을 맛보아야 한다. 홀려 있는 동안에는 즐거움, 놀라움, 흥미로움, 노여움의 온갖 경험들을 맛볼 수 있으니, 찰스 램과 함께 환상의 하늘로 높이 날아오를 수도 있고 프린새스 베이컨과 함께 지혜의 바다고 깊이 뛰어들 수도 있지만, 절대로 중간에 깨어나서는 안 된다. 에세이가 바다라면 우리는 바다에 떠 있는 섬이어야 하고, 에세이가 커튼이라면 세계 곳곳에 드리워져야 한다. -31쪽      


이쯤 되면 에세이를 쓰지 말라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반박할 말이 없다. 버지니아 울프인걸.      


그러니 나에게 쓰기란 하루 이틀 안에 작성될 수 있는 단상들의 연속 생산이다. 착상하고 완료하는 이 리듬을 생각해 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경우, 어쩌면 다른 많은 작가들의 경우에도, 삶을 소진시키는 불안의 접근을 막아주는 것은 바로 이런 리듬 덕분이다. -55쪽      


어찌 되었건 지속적으로 쓰는 사람들은 제가끔의 쓰기의 정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이 대목을 읽는 동안 떠올렸다. 내게도 나름의 쓰기에 대한 의미 같은 것이 분명 있긴 하지만, 그것이 다른 글 쓰는 이들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적어도 쓰는 동안에는 불안을 쫓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무엇인지 격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조금 슬프기도 했다.      


‘스타일’이 있는 글은 대체 어떤 글일까 생각해 보면, 가만있지 못하게 하는 글, 뭔가를 간절히 바라게 하는 글, 왠지 모르게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글, 가슴을 치는 글이다. 그런 글의 어떤 점이 가슴을 치는 것일까ᆞ 생각해 보면, 그 글의 스타일이라고밖에는 말하지 못하겠다. -66쪽     


-이즘 ism이라는 접미사를 고려하여 목차를 살펴보면 한 편의 에세이 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서정과 소재, 기교를 최대한 다루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한 권의 책 안에서 에세이라는 장르가 닿을 수 있는 영역들을 모두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책에서 다루는 세계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엄연히 존재하는 한 장르의 예술의 표면을 더듬어 밝히는 글이라고 폄하해도(절대 그럴 수 없는 책임을 강조),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여기에 새로운 앎을 더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정련하여 또 다른 이해의 단초를 창출하는 장을 열었다는 것이 훌륭한 게 아닐까.      


“글은 오브제다. 나는 글이 독자에게 체험을 제공하기를, 다만 가능한 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공하기를 바란다. 내가 쓴 것들을 체험하는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 같은 건 없다.”-165쪽     


번역자의 후기에 이 책을 아주 정확하게 꿰뚫는 설명이 있다.      


에세이 장르에 대한, 그리고 문학 독자가 여생의 본보기로 삼는 저마다의 에세이에 대한 정확한 경애의 언어를 가르쳐주는 책이다. 「에세이즘」은 ‘굳이 왜?’라는 질문에 대답해 주진 않지만, 대신 그 질문이 오장육부를 훑고 지나갈 때 정신줄을 놓지 않을 비법은 전수해 준다. -245쪽     


그러니, 조금 장황한 구석이 없진 않지만, 때론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지만, 에세이와 조금 더 깊이 친하고 싶을 때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어를 많이 아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