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자가 조금 넘는 이야기로 의미의 음영을 더할 수 있기를
#11. 꺼리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10대만큼 타인의 시선에, 평가에 예민한 시기가 인생에 또 있을까 생각합니다. 가장 나답고 싶으면서도 나다움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두렵죠. 저 역시도 한참 전에 그런 때를 지나쳐 왔고 해랑이의 마음을 쓰면서 다시 한번 열네 살, 방과 후 동아리(당시는 CA라고 불렀던 것 같아요)를 정할 때 사실 하고 싶은 건 따로 있었으면서 얌전하게 독서반에 손을 들었던 우울한 기억이... 그런데 결국 지금 제 모습을 돌아보면 그게 맞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2. 체득하다
수하가 윤준에게 추천해 주었던 책은 필립 K.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였습니다! 영화 말고 원작 소설도 혹시 여유가 되신다면 꼭 읽어주세요. :)
본문에서 윤준이 쓰고 있는 독서기록법은 제가 예전에 아이들에게 추천해 준 방법이기도 했어요.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을 베껴 쓴다든가, 그것마저도 힘들면 좋아하는 페이지를 찾아 첫 문장을 옮겨 쓴다든가 하는 식으로. 요즘은 통 리뷰를 쓸 짬이 없어서 저도 읽은 책 중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한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는 방식으로 바꿨는데, 그나마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더라고요.
#13. 헤아리다
호경이 썼던 한 줄의 말은 제가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현시대의 언어는 갈수록 과격하게 극단적으로 흐르고 있죠. 생각이 필요한 말이 죽어가는 현장이 안타깝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민주 같은 생각도 갖고 있어요. 원래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설령 빌런이라 하더라도 그 인물을 빚어낸 사람을 어딘가 조금 닮아 있잖아요. 그나저나 본문에도 썼던 학생들 에피소드는 사실 엄기호 선생님(일 겁니다 아마)이 어딘가의 팟캐스트에서 실제로 겪으셨던 일화를 재미나게 이야기해 주시는 걸 조금 각색해서 썼는데 들으면서 그야말로 웃기고 슬펐던 기억이 나네요. 비슷한 이야기가 모티브가 된 책에도 실려 있긴 합니다.
#14. 조율하다
타인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면서도 그의 감정을 절대로 해치지 않으려고 각별히 노력하는 훌륭한 청자의 태도를 가진 사람을, 정혜윤 PD 님 말고는 쉽게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허구의 캐릭터라면, 물론 미하엘 엔데가 창조한 모모가 있지만요. 사람 대 사람으로 진솔한 대화를 하고 싶을 때 우리는 정말이지 많은 것들을 조율해야만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15. 역린
이 기획물을 시작하기 전에 나름 홀로 다짐한 것이 있는데 술어에 해당하는 품사만 건드리자,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컨셉은 무슨 *의 컨셉, 내가 그렇지 뭐. 하고 자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첫 발자국을 찍은 부사 ‘불현듯’에 브라보. ㅋㅋㅋ 아무튼 처음에 냅다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을 땐 이런 스토리가 될 줄 몰랐는데(원래의 아이디어 스케치는 이게 아니었다는 뜻) 유진이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되었군요. 하지만 저는 원래 생각한 것보다 이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어요.
와, 이렇게 세 번째 후기를 썼습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너무 바쁜 일이 있어서 업데이트를 한 번 거르긴 했는데 그럭저럭 1주일에 두 편씩은 꾸준히 유지한 것 같아 나름 뿌듯하네요. 스스로 끝을 정해두고 시작한 뜻풀이 쓰기는 아니었는데,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그럼, 좋은 주말 보내시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