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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Oct 31. 2023

우주비행사와 전화통화를 하는 시대

노구치 소이치, 우주에서 전합니다, 당신의 동료로부터


직업 에세이는 출판시장에서 얼마나 팔릴까?


       


우주에서 전합니다, 당신의 동료로부터 | 저자 노구치 소이치 | 출판 알에이치코리아 | 발매 2023.02.08.



이 책에 대해서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짧게라도 몇 줄 남겨놓아야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적기로 했다(오늘 약간 시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의 저자는 1965년생 일본인 우주비행사다. 일생에 단 한 번도 쉽지 않을 우주비행을 세 번이나 다녀오셨는데(그것도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ISS 335일 체류로 일본인으로서는 최장기 기록이라고 한다. 굳이 일본인이라는 말을 달아둔 것을 보니 국제적으로 넓히면 이 대업을 이룬 분은 따로 계신 듯하다), 그 경험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사람마다 한 권의 책에 낚이는 경로는 다양하기 짝이 없을 텐데, 내 경우에는 특정 키워드나 문구에 잘 현혹되는 편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지만 내 경우에 귀가 쫑긋하여 잘 넘어가는 키워드 중에는 피아노가 있다. 그것도 특정 작곡가가 있다. 그런데 이 우주비행사 아저씨는 심지어 ISS에서 유튜브 라이브로 쇼팽을 연주했다고 한다(웃기는 건 이 영상은 아직도 못 봤다). 


국제우주정거장 + 쇼팽 + 라이브 =???????? 이 스케일 무슨 일인가... 물론 이 이야기는 아마도 본문에 등장하지 않거나, 혹은 그렇더라도 한두 줄의 언급에 지나지 않을 것쯤은 이 정도 연식이면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당연하지. 그래도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물론 본문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그러나 세상에 나온 수많은 책들이 무엇하나 같지 않은 것처럼(사실이 아니다. 남의 것을 고스란히 갖다 베낀 책도 많기도 많다더라), 독자도 모두 취향과 성향이 다르다. 


문장의 엮임과 매끄러움에 남달리 예민하게 구는 사람도 있고, 전체적인 흐름은 영 마뜩잖아도 어떤 한 문장이 카운터 블로를 날리면 물개박수를 치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중간쯤 가는 사람도.


대필을 맡기더라도 깔끔한 글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거칠고 엉성해서 읽기 힘든(그렇다고 문해력에 손상을 입힐 정도의 글이라면 편집자의 능력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겠지) 문장일지언정 솔직한 '저자'의 글을 후히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 이제 내 얘기를 할 차례인데 나는 인상적인 한 대목이 있다면 비교적 너그럽다. 대필한 글은 가급적 읽고 싶지 않다. 좋은 글이란 무릇 쓴 사람이 보여야 하는 법이다. 문장의 세련미와 완성도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구차한 이야기를 왜 썼느냐.


이 책을 읽고 했던 생각이어서 썼다. 솔직히 정말 눈에 착착 감기는 글은 아니었다. 그런데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전달해 주는 느낌이란 것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혹시라도 나중에 사실 이 책은 대필가가 썼습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면 배신감 쩔겠다. ㅋㅋㅋ 혹은 내 눈도 머리도 그다지 쓸만하지 않았구나 하고 자괴감에 몸부림치든가. 아무튼!


작업을 하는 중에도 몇 번이나 어둠의 입구로 빨려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손을 놓으면 나는 죽음의 세계로 떨어져 버린다. 그런 감각이 뚜렷하게 찾아왔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이 아니라 작은 '경계점'이었다. 나의 손끝만이 삶의 세계와 이어져 있고 나머지는 죽음의 세계로 막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p.46


이런 대목 말이다. 선외작업을 하면서 아득한 우주의 어둠에 먹힐 것만 같은 그 공포감을 '경계점'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순간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표현 아닐까. 활어가 맛있는 법이다(꺄륵).

 

회의장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변호사 출신이었는데, 그들은 국제연합에서 논의하는 다양한 과제의 해결책과 조항 해석에 대해 언제까지고 논의할 수 있다는 듯이 협상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Truth is negotiable."

진실은 협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내게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다.

-p.109


내가 생활하는 미국에서는 '위-데이 신드롬 we-they syndrome'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조직 안에서 대화를 나눌 때 유독 'we(우리)'와 '그들(they)'라는 두 단어가 자주 나오고 사람들이 점차 대립 구도에 서서 말을 하면 곧 조직이 붕괴할지도 모르는 징조라고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p.151


책의 말미에 이르면 당사자 연구라는 것에 대해 언급하는 챕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엄청난 압박감과 부담이 내리누르는 실전이 끝나고 나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반인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거기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충격과 낙차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우주로 떠나기 직전까지 만인의 선망을 받는 우주비행사가, 막상 지구로 귀환환 뒤에는 모두의 관심 밖이 되지 않던가. 실상 더 많은 응원과 지원이 필요한 순간은 그때부터인데도 불구하고. 


우주 개미라는 우화도 몹시 흥미로운데 이미 책의 내용을 많이 언급했기 때문에 더 이상은 쓰지 않으려 한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책을 읽도록 하시고요 :) 



연대solidarity,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낱말 중 하나인데 역시 이 책에서도 이 개념이 등장한다. 사실 이미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집어든 가장 큰 이유는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연약한 개인이고, 그러니까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곁에 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 



 202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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