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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험 자산을 공개하는 일

김지수, 일터의 문장들

by 담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책장을 정리하는 일대 행사를 벌이곤 한다. 어떤 해에는 그 해에 갑자기 좋아하게 된, 혹은 발굴한 작가의 책을 모두 사들여서 늘어난 책들을 정리하느라 칸칸이 배열을 모두 바꾸기도 하는데 올해가 유난히 그런 편이었다. 작가라기보다는 특정 장르의 책이 엄청나게 늘어나서 장르별 진열을 다시 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인터뷰집이 예상외로 크게 늘었음을.


내겐 굉장히 이상한 취향(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이 있는데, 현실의 대화 그러니까 즉 나를 둘러싸고 혹은 내가 참여하고 있는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에는 별 관심이 없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해서 대화를 꺼려한다. 특히 그게 일상적인 대화일 경우에는 더 힘들어한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을 낭비해야 하지,라는 몹시 반사회적인 생각을 종종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나를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는 모든 모임과 약속을 최대한의 예의를 지켜 거절하는데 별로 내 진심을 안 알아줘서 상당히 고역스럽다.

그런 모난 성격의 사람이지만 자기변명을 잠깐 하자면,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것은 오로지 뭐 하나 쓸만한 정보를 찾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과의 별 의미 없는 대화, 자신을 감추면서 상대를 어떻게든 샅샅이 파헤치려는 대화, 대화를 가장한 끝없는 위로와 징징거림의 수용을 요구하는 대화(인가)인 것.


그래서일까, 타인의 목소리와 살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할 때 인터뷰집을 종종 들춰보게 되는 듯싶다. 물론 책으로 묶여 나올 정도의 인터뷰이들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유명인사들인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평범한 분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집도 없진 않더라.


http://aladin.kr/p/64eDQ


이 책은 물론 대단히 유명세를 떨치신 분들을 모신 인터뷰집이긴 하지만.


총 열여덟 사람의 인터뷰이와 프로 인터뷰어 김지수가 나눈 대화들이 실려 있다. 개중 어떤 것은 (정말 솔직히 말해서) 분량을 채우기 위해 넣었나 싶은 실망스러운 것도 있지만,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싶은 인터뷰도 있다. 그중 가장 손꼽을 만한 것은 역시 옥주현과 백현진, 장기하의 진솔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고.

힘겹게 체득한 자신만의 노하우와 스스로를 발견하는 법에 대해 가감 없이 털어놓은 세 사람의 인터뷰가 가장 좋았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자신만의 방법론을 체득한 사람이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경쟁자들이 숱하게 포진해 있을 세상에 터놓는 것은 정말이지 보통 용기와 너그러움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분 중에도 그런 분이 있었다. 자신이 이 포지션을 낚아챌 때까지 수없이 굴러 떨어지고 실패하면서 얻어낸 지식들, 노하우, 그 어떤 것도 누구에게도 알려줄 수 없다고. 그건 심지어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들에게조차 알려줄 수 없다고까지 했다. 그분이 이기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것이지. 후배들과 또 언젠가 이런 것이 궁금해할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이 걸어온 길들을 드러내어 보여준 분들에게 마땅한 존경이 돌아갔으면 좋겠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진정성은 자기다움의 윤리다.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진짜 자기의 것이어야 하고 서로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65쪽


가수의 목소리가 공기 중을 떠다니는 무형의 음원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지배하는 주술의 형태로 다가온다는 것을 나는 옥주현의 뮤지컬 무대에서 깨달았다. -114쪽


남한테 노하우를 묻기에 앞서 자기가 뭘 하면 즐거운지를 집요하게 물어야 해요. 자기 즐거움을 찾아서 집중하면 예상치 못한 길이 자꾸 나타나요. 그렇게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의 힘을, 저는 믿어요. -128쪽


성과가 없어도, 혹평이나 무관심 속에서도 나는 계속하겠다...... 눈감지 않으면 못 버텨요. (...) 그 부분에서 멘델에게 감사해요. 저는 그 자세를 멘델에게 배웠어요. 멘델이 잡종 교배 실험할 때 학계의 반응보다는 자신의 호기심이 동력이 되어 멈추지 않고 계속했고 마침내 특별한 성과를 만들었죠. 지칠 때 멘델을 생각해요. -142쪽


네. 저는 일하면서 놀아요. 일하는 즐거움이 크죠. 감독들과도 따로 만나 놀아본 적이 없어요.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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