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화 Dec 20. 2024

좋은데 좋은 걸 어떻게 말하면 좋지

박솔뫼,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

참으로 이상하다. 무슨 사소설을 쓰는 것도 아닌데 너무 개인적인 얘기를 많이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순간순간 흠칫할 때가 있다. 현실 인연들에게 가능한 한 온라인 정체성을 오픈하지 않는 것도 유사한 이유 때문이기는 하다. 그들이 아는 나와 어느 정도 속살을 드러낸 나를 굳이 일치시키고 싶지 않은 그런 요상한 마음. 그런데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실제의 인물과 그의 속내를 함께 읽을 수 있을 때 책이 훨씬 재미있어지는, 어쩐지 약간의 죄책감과 더불어 길티 플레져적인 기쁨을 느끼고야 마는 그런 미묘한 기분이 있다. 


오늘 아침 막 읽기를 마친 책 한 권도 그랬다. 


http://aladin.kr/p/tq6Ji


책을 읽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진심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 잠이 들어도 좋은 일이 일어난다니, 책을 읽어서 생길 수 있는 수많은 좋은 일들 가운데 이렇게 사소하고 귀여운 이득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깜찍한 제목을 보고 내가 기껏 했던 생각이란 이런 것이었다.


1. 책 읽다 졸면 바닥에 떨어져서 책등 상하는데.

2. 고개 휘꺼덕휘꺼덕 헤드뱅잉 하면 안 그래도 아픈 목디스크 더 심해질 텐데. 


아무튼, 각설하고.


박솔뫼 작가는 이 책이 '평소 좋아하던 소설이자 소설을 쓰기 위해 반복해서 읽었던 소설들에 관해 쓴 글'이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지만, 물론 퍽 많은 소설들이 지면을 통해 소개되고 호기심을 자아내긴 하지만 내겐 그보다 그가 사랑한 작가들에 바치는 설레는 고백처럼 읽혔다. 작가뿐만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을 이끌어 나가는 인물들에게도. 박솔뫼 작가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작가로구나 싶었다. 물론 작가라면 인간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하지만, 어느 작품의 어떤 인물이 자신에게 그토록 의미가 있는지, 무엇이 그리 좋은지를 열심히 말하고 있는 그를 보면 절로 웃음이 머금어지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볼 때의 흐뭇함과 즐거움이란 게 있지 않나.

책을 덮고 나면 무슨 연유인지 세세한 내용을 잊기 바쁜 내게, 아직도 그가 애정 어린 마음으로 호명하며 들려주었던 작가들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반짝이는 동경과 사랑의 마음을 묻힌 채로 남아 있다. 


그는 눈앞에서 자신의 말로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장소를 향해 좀 더 멀리 갈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 말은 생생하고 듣는 이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 말도 있을 것이다. 부패한 말 그저 하는 말의 벌판에서 누군가는 온 힘으로 온몸으로 생생한 말을 던지며 조금씩 앞으로 밀고 나가고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오래오래 생각할 것이다. -29쪽 


이 주변부를 빙빙 도는 미진한 느낌. 좋은 것이 왜 좋은지 설명하는 것의 어려움. 하지만 그건 내가 볼라뇨 소설의 좋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에 느끼는 미진함이지 볼라뇨의 소설 속 많은 통로에 대한 것은 아니다. 볼라뇨는 통로와 창이 많은 작가이고 그래서 여러 번 들어갈 수 있다. -56쪽 


책이 주는 아름다운 순간은 이럴 때 같다.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다른 작품을 이어주는 것. 그리고 이 책의 끝부분 이제 막 일을 시작해야 하는 주인공을 보며 타카노 후미코의 「노란 책」도 다시 읽고 싶어졌다. (...) 페이지마다 이런 말을 속삭이게 하는 책이 소개해준 책친구들을 늘 사랑하고 있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171쪽


이런 우연은 대체 누가 만드는 것일까. 그건 다 책요정이 하는 것이겠지? 책의 요정은 이 책과 저 책을 이 책 속 장면을 다른 작가의 이야기로 놀라운 타이밍에 만나게 한다. -180쪽 


마지막 인용문에 관해서인데, 이건 정말이다! 나도 꽤 여러 번 겪은 일인데, 처음에는 너무 신기해서 몇 번이고 눈을 부벼가며 이게 정말 우연일까 의심도 했는데 몇 번씩 경험하다 보니 이제는 '아, 또네' 하는 정도가 되긴 했지만, 의외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생각하기로는 한 권을 진득하게 다 읽고 다음 책을 읽는 성실한 독자보다는, 나처럼 메뚜기 읽기를 선호하는 유형의 독자에게 잘 일어나는 일은 듯하다. 가장 최근의 경험이라면 바로 어제 오전인데, 마침 다 읽었던 「오래된 책들의 메아리」를 덮고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을 읽기 시작했을 때 만난 문장의 의미적 연속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새로운 이름을 주는 것은 새 피를 수혈하는 것과 같다. 그건 사랑의 행동이며, 연인들의 특권이다. - 「가벼운 마음, 25쪽」


「오래된 책들의 메아리」에 이 문장이 정확히 구현되어 있는 관계가 존재한다. 이런 연결성을 발견할 때마다, 책들 사이에 수줍은 인사와 눈웃음이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괜스레 혼자 웃곤 한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의 전체를 이야기할 수 없기에 항상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냥 '다 좋다'라고 하기엔 그 좋아하는 마음의 깊이가 너무 얄팍해져 버리기에 늘 망설이게 된다. 이 좋음의 어느 부분을 부각해서 말하는 것이 상대에게 가장 진실하게,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될지를. 자신이 소개하는 작품들이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그런 설렘이 잔뜩 묻어나는 글이어서 읽는 사람마저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