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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과학책에서 무엇을 얻었나

강연실, 우아영, 평행세계의 그대에게

by 담화

유난히 최근 서간문의 형식을 취한 출판물이 많아졌다는 건, 그다지 출판 동향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어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해 보인다(물론 이 책은 출간된 지 1년이 훌쩍 넘었고, 그런 경향성이 시작된 건 벌써 2년도 더 되었지 않나 싶지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혼자 추측하기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람들의 고립감이 심해지고 소통의 단절이 심각해진 것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편지글은 여러모로 읽기도 편하고, 재미도 있어서 종종 읽는다. 무엇보다 그 편지의 수신인에는 이미 익명의 독자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남의 편지를 엿보는 불편감은 들지 않는다.


요즘에야 이메일로 대신하지만 편지와 이메일은 확실히 쓸 때도, 보낼 때의 마음가짐도 사뭇 다르다. 예전엔 편지를 어떤 상황에서 썼는지를 돌이켜 보면,

굳이 쓰고 싶지 않은 분께 먼저 내려놓은 심호흡을 징검다리 삼아 인사말을 적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적당히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아 억지로 아무 말이나 그러모아 보내는 편지도 있었고(대표적으로 방학기간 중에 담임 선생님에게 보내야 하는 안부 편지가 그러했다. 이제 와서 보니 선생님들도 피차 이게 무슨 고역이었을까 싶어 안쓰럽기 그지없다) 어느 정도 안면이 있지만 썩 살가운 관계는 아닌, 하지만 호감이 가는 상대에게 적어가는 편지가 있으며 편지가 아닌 그 어떤 수단으로도 신나게 말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에게 쓸 수 있는 편지, 아, 말도 못 하게 간질거리는 기분으로 쓴 편지도 있구나(예전에 남편에게 보냈던 편지를 싹 뺏어서 불살라버리고 싶었는데 이분이 감춰버리셔서 분통했던 게 지금 막 기억났다. 내 흑역사, 빨리 찾아서 없애버려야 하는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편지란 대개 그 정도다.


편지란 게 지극히 고풍스러운 의사소통의 수단인 까닭에 최소한의 형식이란 걸 갖춰야 하기 때문에 친한 사이라 해도 허물없이 '막' 쓰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의도적인 점잔 빼기가 엿보이는 글을 읽는 묘한 재미가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http://aladin.kr/p/gzN1R


이 책은 위에서 가볍게 이야기한 분류 중 두 번째에 해당한다.

이과 출신의 두 여성이 과학책을 읽으며 떠올린 이슈들을 가볍게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 책이 자리하게 될 서가의 분류를 고려했기 때문인지 진지함과 무거움의 농도에 퍽 신경 썼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너무 무겁지도, 너무 진지하지도 않은 적당한 느낌.


어떤 독자는 그 지점에서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고 또 어떤 독자는 그래서 좋아했을 것이다. 모든 책들이 그렇듯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 그게 가능하면 애초에 마케팅에서 소구대상이라는 개념이 왜 생겼겠는가.


「평행 우주 속의 소녀」는 과학을 구성하는 아주 작은 부분만을 다루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 책은 과학에 대한 저의 관점을 180도 바꿔 놓았습니다. 과학이 사회적 구성물로써 사회를 반영한다는 것, 그래서 과학을 정말 중립적으로 만들려면 모든 것을 중립적으로 만드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26쪽


본문에서 짚었듯, 이 책 역시 그러하다.

여성 과학도로서 살아온 세월이 형성한 관점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사적인 경험들이 책을 통해 어떤 깨달음과 통찰로 차곡차곡 쌓여갔을 것이다.

여기엔 그분들의 눈과 마음에 가 닿았던 과학서들로부터 그 책을 읽던 당시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발견했던 경험이 적혀 있다. 같은 고민을 안았던 경험이 있는 독자는 공감할 것이고 그런 일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독자는 알지 못했던 세상의 일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좋은 책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 아닌가 싶다. 그때 그 순간, 그 책을 읽고 있던 독자와 한순간의 접점이라도 만들어 그를 토닥이고 가는 일 말이다.


과학계에서 여성이 놓여 있었던(이 단어를 고르는 데도 무척 고심했는데, 차지했다거나 점유했다는 단어에 스며 있는 주체적인 느낌은 실상 여성 과학(공학)자들의 처우를 생각해 볼 때 도무지 호응하지 않는 서술어라 굳이 피했음을 언급하고 싶다) 자리와 그에 관한 이슈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음이 반갑다.

여성뿐만이 아니라 소외되고 있던 소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과학계가 그들에게 품을 내어주고 스스로를 계속 혁신해나가야 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다. 온갖 거창한 이유를 밀어 놓고서라도, 과학의 본위가 닿아 있는 몇 가지 키워드만 되짚어 봐도 된다. 편향에 찌든 연구에는 신뢰성이 없다.


사실, 사물이 대상화되고 타자화된 사물 그 자체로만 존재한 적은 단 한순간도 없습니다. 각각의 사물에는 다른 사물, 또는 그를 둘러싼 사람과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맥락이 늘 흐르고 있죠. -51쪽


먼 길을 돌아 저는 결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과학계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과학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여줄 수 있다는 것을요. 실험과 검증 과정의 논리접 정합성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관점'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는지가 더 신뢰할 수 있는 과학 지식을 생산하는 데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말입니다. -183쪽


사람들은 왜 과학책을 읽을까요? (...)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 봤어요. 과학책에서 우리는 안심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228쪽


과학책을 읽는 이유가 이분들과 꼭 같을 이유는 없다. 어떤 책을 읽든 우리에겐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저마다의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 내가 얻은 깨달음은 뭐냐면, 경험담은 소중하다는 것. 정제된 형태로 세상에 공유하는 경험담은 더욱 소중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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