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함께 떠오르는 그 무엇이 있어서
“어서 오세요.”
둥그렇고 풍부한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주인이 인사를 건넸다. 조연우는 깜짝 놀라 잠시 자신을 반갑게 맞아준 카페 주인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다소 큰 키에, 머리를 짧게 친 여자가 연우가 먼저 입을 열기를 잠시 기다리다가 눈웃음을 지었다.
“혹시 뭔가 궁금하셔서 들어오신 걸까요?”
그제야 자신이 주인 여자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연우가 당황하여 오른손을 다급히 내저었다.
“아니요,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주문할게요. 그러니까...”
메뉴판이 어디 있는 거지. 대개 카페에 들어가면 메뉴판이 보이는 위치에는 나무로 짠 상부장이 붙어 있었다. 당황한 연우가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메뉴는 여기 보셔도 되고요, 저기서 편하게 보셔도 되는데.”
그녀가 가리킨 곳은 출입문에서 네 걸음 정도 뒤편의 벽면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칠판에 분필로 쓰여 있는 메뉴판이 향수를 자아냈다. 잠시 고민하던 연우가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저기, 그, 라떼 주세요.”
“시럽은 따로 드릴까요?”
“네, 네.”
밖에서 흘긋 들여다봤을 땐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어 궁금했는데 고개를 들자마자 유리창에서 발견한 커피, 라는 두 글자를 보자마자 발은 저절로 움직여 계단을 올랐다. 신기한 장소였다. 분명 카페인 것 같은데 가게 안은 흡사 잡화점 같은 분위기였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장식장 안에는 주인의 소장품인지 판매품인지 알 수 없는 그릇과 특이한 소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커피를 내리던 주인이 연우의 호기심을 읽은 듯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권했다.
“편하게 구경하셔도 돼요.”
“... 이건 다 판매하시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요. 판매하는 물품은 가격표가 있어요.”
“아, 네...”
나중에 천천히 구경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연우는 마땅한 자리를 찾아 실내를 휘둘러보았다. 이런 분위기를 가리키는 말이 있었는데, 뭐였더라.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안쪽으로 드넓게 트인 공간을 본 연우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수도권이라면 이렇게 좌석을 배치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연우가 중얼거리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사방이 목가구였다.
“커피 나왔습니다.”
산만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연우가 켕기는 짓을 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움츠리며 민망해했다.
“어, 갖다 주실 줄은...”
“별 것도 아닌데요, 뭘.”
“그런데 되게 예뻐요, 여기.”
좀 더 세련되게 칭찬의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자신의 평범한 표현에 자괴감을 느끼는 연우에게 주인이 웃어 보였다.
“감사해요. 손님이 예쁘게 봐주셔서 그렇겠지요.”
“아뇨, 진짜요.”
아, 정말 딱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 텐데, 분명히 어딘가 있는데. 왜 꼭 어떤 말은 하고 싶을 때에는 생각이 나지 않다가 지나간 뒤에야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타야 하는 기차를 놓친 기분이 이럴까.
“설마 이 가구들 다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네에.”
“이런 테이블은... 맞추면 비싸... 죠?”
“아무래도, 좋은 물건을 만들려면 좋은 재료를 써야 하고, 좋은 재료는 합당한 대가가 드니까요.”
주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연우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동조하는 빛을 보이자 한결 안심한 기색이었다. 그녀가 맛있게 드세요, 하고 카운터로 돌아가고 나서 연우는 마음 편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신나게 구경했다. 낯선 구조의 카페였지만, 친근하고 다정했다. 이유가 뭘까를 열심히 고민하던 연우가 이내 아아, 하고 스스로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거렸다.
그거네, 질감.
무엇 하나 낯선 소재가 없었다. 설령 벽돌이나 회반죽을 실제로 만져볼 일이라곤 없는 환경에서 쭉 살아왔다 하더라도 그런 소재로 구성한 공간에 들어오면 누구나 너그러워지게 마련이었다. 보자마자 늘 예민하게 경계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는 사람들의 신경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신경안정제 같은 질감을 갖고 있는 소재들만이 이 실내를 구석구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카페 주인 여자의 목소리.
연우는 그런 목소리를 내는 악기를 알고 있었다. 소위 클래식이라고 하는 음악은 잘 모르지만, 그 악기의 음색은 어찌나 익살스럽고 특이한지, 그러면서도 다정한지. 이 공간에 대한 인상 깊은 칭찬의 한마디를 못 한 것은 아쉬웠지만 이것만큼은 꼭 주인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연우가 손 바쁘게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언니, 지난번에 언니가 가르쳐 준 악기, 뭐였지? 그거, 목관악기. 좀 귀여운데 약간 비음 섞인 것도 같고, 부드러운 소리 나는 거.]
답은 3분쯤 지나서 왔다. 오랜만에 문자해서는 갑자기 웬 생뚱맞은 질문이냐며 타박 어린 한 마디를 한 지인은, 금세 답을 알려주었다. 급한 마음에 연우가 허둥지둥 카운터 앞으로 달려갔다.
“저기요, 사장님.”
“네, 뭐 필요하세요?”
“바순 닮으셨어요.”
순간 주인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갔으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정돈하고 다시 친절히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사장님 목소리요. 바순이라는 악기가 있는데, 사장님 목소리하고 굉장히 닮았어요. 나중에 꼭 한번 들어보세요! 저음인데 되게 귀엽고 근데 또 상냥한 소리가 나는 악기예요.”
연우가 재차 당부하듯 힘주어 말하자, 그녀가 웃었다.
“네, 꼭 들어볼게요.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표제어_연상하다/모티브_ Mendelssohn 「Lied ohne Worte in E Major, Op. 19 No.1 played by bsssoon]
# 이 엽편은 제 소중한 친구이자 이 글의 진짜 모티브가 되어준 공간, 木連의 주인 이연화 님께 드리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