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시다고요? 에이 거짓말은...
이야기는 뭇 독자들의 가슴에 이상한 낭만을 심는다. 무릇 그것이 이야기의 본령인지도 모른다.
열* 살, 파릇파릇 십 대에 접어든 여중생 담화는 어느 날 벼락을 맞은 듯 어떤 단어에 사로잡힌다. 천상 도시소녀였던 그 애는(오글거리는 3인칭 서술, 송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얘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이 글은 3인칭으로 쓸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더랬다) 학교에서 막 배웠던 어떤 단편소설의 한 장면에 무지하게 설레버려서 이건 꼭 한 번 해보고 만다, 그리 마음먹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담화는 그때도 한다면 하는 애였다. 문제의 소설과 장면이 대체 무엇이었기에.
199*년의 열* 살, 담화는 중학생이었다. 국어교과서에 실린 단편소설들 네 편이 간판스타의 왕좌를 놓고 자웅을 겨루던 시절이었다. 그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위그든 씨의 사탕 가게>, <별>, <마지막 수업>, 그리고 <소나기>. 담화는 그중에서도 <...>의 어떤 한 장면에 심하게 꽂혔는데 그에 대해 썰을 푸는 순간 대체로 이런 반응들이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같이 별 헤아려 줄 목동은 어디서 구하게?"
"설마 자두씨를 은박지에 싸서 가져갔냐?"
이거보세요... 그거 아니야. 아니라고.
담화는 몇 번이고 입술을 질근거리며 찰진 속엣말을 뱉을까 말까를 고민했지만 곧 그만둔다. 늬들이 범의 큰 뜻을 어찌 헤아릴 것이냐.
낭만은 질투와 은근히 닮은 데가 있어서, 어찌어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에 들러붙어 자생한다. 그러니까 현실화 가능성이 0.01%라도 존재하는 데에서 싹을 틔우지 어떻게 봐도 말이 안 되는 가정에는 낭만도 생기지 않는 법이다. 달리 말해 양 치는 목동 어깨에 기대서 잠든다, 이런 건 낭만은커녕 망상 축에도 못 끼는 거라는 걸 담화는 일찍이 터득하였기에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 치들을 내심으로 비웃는다.
훌륭하게 교과서적으로 삐딱한 10대 답게, 입꼬리를 비쭉이면서 하교하던 담화는 문득 코끝을 찌르는 향기에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헤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사방이 붉고 향기롭다. 때는 6월, 이상한 낭만을 품고 있던 중딩이도 그 향기의 근원지를 발견하고야 만다. 향수를 쏟아놓은 듯한 냄새를 들이마시던 담화는 뒤늦게 찾아온 거대한 깨달음에 환호하며 중얼거린다.
찾았다, 내 서리 거리.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제 온당한 의문을 가지실 때가 되었다. 언급한 단편소설 중에 아이들이 서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소설은 없다. 단언컨대 없다. 그러면 도대체 왜, 서리는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서리라는, 어린아이들에게나 허락된 괘씸 무쌍한 그 장난질을 가장한 도둑질이 담화의 낭만이 되었던 것인가!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었던 나의 사춘기 감성은 아마도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부도덕한 결론에 이르렀던 것 같다.
이런 장면이 나오는 작품이 위의 목록 중에 있다. 굳이 뭐라고 언급 안 해도 다들 아시리라.
"저게 뭐니?"
"원두막."
"여기 참외, 맛있니?"
"그럼, 참외 맛도 좋지만 수박 맛은 더 좋다."
"하나 먹어 봤으면."
소년이 참외 그루에 심은 무밭으로 들어가, 무 두 밑을 뽑아 왔다. 아직 밑이 덜 들어 있었다. 잎을 비틀어 팽개친 후, 소녀에게 한 개를 건넨다.
해당 장면을 설명하며 이 비슷한 걸 옛날엔 서리라고 했거든, 하며 아련한 눈빛으로 설명하시던 선생님은 그 먼 옛날 한 서리하셨던지, 그것이 얼마나 박진감 넘치고 스릴만만한 모험인지를 설파하시다가 한순간 삐끗하셔서 어릴 때 한 번쯤 해볼 만한 짓... 까지 말실수를 하셨다가 긴급히 백스텝을 밟으시며 엄연한 도둑질이다, 알지? 하고 성급한 무마를 시도하셨으나 3*년이 지난 지금 말씀드리건대 선생님, 선생님은 그때 본의 아니게 꽤나 많은 아이들에게 서리에의 낭만을 키우셨습니다. 제가 바로 산증인 입니...
각설하고.
겁도 많았고 소심하기까지 했던 내가 무슨 강단으로 담장 너머 아래로 죽죽 흘러내리고 있었다곤 해도, 엄연히 남의 집 사유재산에 손을 댈 생각을 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담화는 장미 서리를 감행하고야 만다. 깜장비닐을 손목에 걸고, 야무지게 전정가위를 챙겨 들고. 꽃향기에 취해서, 마치 제가 탐관오리의 재산을 슬쩍 빼돌리는 홍길동이라도 된 양 기묘한 짜릿함에 취해서 홍야홍야 가위질을 하느라 당시 동네를 수시로 순찰하던 방범대원 아저씨가 뒤에서 팔짱을 끼고 그 꼴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치고 계신 것도 모르고.
결론은 호된 꾸지람과 눈물바람이 섞인 자수로 끝나는 듯했으나 훈훈하게도 장미서리범의 어처구니없는 짓거리에 박장대소하신 이웃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인심 좋게 덥석덥석 잘라주신 꽃가지들로 인해 그날부터 며칠간은 담화의 조그만 방이 장미 향기로 아찔할 정도였다는 해피엔딩.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다들 살면서 한 번쯤은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이불을 걷어차는 기억이 있는데(정정. 하나 이상) 김담화에겐 그게 이거라는... 뭐 그런 얘기였습니다. 으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