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렇거든요 근데 진짜로 변한 게 맞을까...
요즘 굉장히 유명한 어떤 소설가의 인터뷰 모음집을 읽고 있는데, 거의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2/3쯤 읽어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상당히 놀라고 있다. 사람이 이토록 한결같을 수가 있나. 나쁘게 말하면 평면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일관성이 있다. 내가 쭉 읽어왔던 그의 소설에서도 그런 인상을 많이 받긴 했는데 인터뷰로 마침표를 찍은 듯한 그런 느낌이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랑은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이네.
어릴 때의 나는 숫기가 없어도 이만저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출석을 부를 때 대답조차 잘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꼭 필요한 말이어도 그 말을 하지 않고 상황을 모면할 수 있으면 말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걸 증명하는 사건이 여덟 살 때 있었다. 당시엔 초등(국민) 학생이 열 정류장 이상의 거리를 버스를 타고 등하교하는 것이 아주 당연했다. 버스비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60~80원 사이였을 것이다.
초등 1학년이었던 나는 목에 투명한 동전지갑을 걸고 웃옷 속에 넣어 다녔다. 아마도 엄마의 방식이었겠거니 짐작한다. 하루치 버스비가 그 지갑 안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그날, 모친께서 바쁘셨거나 뭔가를 착각하신 탓에, 예를 들어 60원을 넣어주었어야 했다면 50원짜리와 10원짜리 대신 100원, 10원 동전을 넣어주셨던 것 같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그걸 학교 앞 문구점 같은 데서 잔돈으로 바꾸거나, 기사님께 이거 넣어도 되냐면서 100원 동전을 드렸을 것이다(생각해 보니 그땐 안내양 언니가 있었던 것도 같고 가물가물). 여하간 방법은 많았다. 돈이 모자란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 맹한 것(누구 말하는 건지 내참)은 동전을 만지작거리면서 한참 고민을 하다, 냅다 집 방향을 향해 걸었다. 참고로 그 구간은 상당히 걸음이 빠른 지금의 내 속도로도 평균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다. 여덟 살 초등생은 한 시간이 족히 걸렸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당연히 공중전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사정 설명을 한다던가 하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집에 올 시간이 한 시간이 족히 넘었는데도 귀가하지 않는 아이 때문에 집이 뒤집어졌을 것은 자명한 일...(놀이터에서 놀다 온다든가, 친구집으로 샌다든가 하는 일이 일절 없는 극소심 초딩이었으므로)
소심의 레벨이 엎치락뒤치락하긴 했어도 어쨌든 극아이 I의 본질은 어디 가지 않았다(장미 서리 좀 감행했다고 I가 E가 되는 천재지변이 일어나진 않았다). 고3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20대에 접어들며 놀랍게도 극내향인의 성향은 완전히 거죽을 뒤집어 입어, 극 E까지는 아니어도 누가 봐도 훌륭한 -_- E가 되어버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쌈닭의 기질까지 얻어서, 이 기질이 원래 있었는데 뒤늦게 발현한 것인지 아니면 이 거친 세상을 살다 보니 내가 살려면 변해야겠다 싶어 I인자를 무참히 격퇴한 E인자가 뇌를 점령한 것인지는 모르겠고. 사람이 어떻게 변해도 이렇게 변할까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궁금했는데 의외로 그런 사람이 적지 않은 것에 안심했달까, 그랬는데 또 한결같은 사람을 발견하니 내가 이상한 건가 잠깐 고민하게도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큼.
게다가 나를 정말 놀라게 했던 건 극 I스러웠던 큰아이가, 정확히 나와 같이 어느 순간 극 E로 진화했다는 사실이었다. 어릴 때 동네 이모들이 어머 우리 누구구나, 하고 아는 척을 하면 인사는커녕 시선도 마주치지 못해 내 뒤로 숨어버릴 정도로 소심했던 애는 어딜 가고 온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핵인싸가 된 아이를 보며 너 누구니, 눈을 동그랗게 뜰 정도로 급변했다는 걸 상기하노라면 역시 사람은 한두 가지 명제로 이러하다 저러하다 말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존재가 맞는 것도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좋아하던 작풍을 버리고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작가들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나조차도 순간순간 가치관이 변하고 10년 전과 지금이 다른데 나는 그렇게 못 하면서 남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못할 짓이다 싶은 것.
잠깐 처음에 언급했던 책 얘기로 돌아가면, 그 작가는 자신의 크게 변한 순간과 그때 썼던 작품에 대해 꽤 여러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하는데 나는 [보다 큰 틀에서] 그의 작가적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고 느꼈기에, 타인들이 누군가가 변했다고 느끼는 시점과 자신이 스스로 변했다고 느끼는 시점이 일치하는지 혹은 어긋나는지, 혹은 그런 사소한 부분이 변했어도 보다 근원적인 정체성은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인지...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혹은 크게 변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하고. 하여간 맨날 뭐가 이렇게 궁금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