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에 약간의 노력을 더하면

송은혜, 일요일의 음악실

by 담화

"Music expresses that which cannot be put into words and that which cannot remain silent."

— Victor Hugo


"Music is the silence between the notes."

— Claude Debussy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애써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결코 무용하지 않다. 그런 노력들에 힘입어 결코 그려낼 수 없는 거대한 관념이자 언어이고 세계인,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물리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음악을 말하는 수많은 문장들이 있고 책들이 있다.


http://aladin.kr/p/RzBCB


엄밀히 장르적으로 구분해서, 이 책은 고전음악을 포함하여 소위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한정한 음악을 다루고 있다. 현대음악을 클래식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고, 일반적으로 감상에 다소의 진입장벽이 느껴지는 음악이라고 대충 얼버무려 두기로 한다...


음악을 듣는 사람과 하는 사람. 음악에 관련하여 우리는 이렇게 손쉬운 분류를 채택할 수 있다. 듣는 사람은 또다시 그냥 '듣는' 사람과 '느끼는' 사람 정도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떤 음악들은, 분명히 번거롭긴 하지만 약간의 공부를 더한다면 듣고 느끼는 감상의 스펙트럼이 놀라울 정도로 넓게 확장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옵션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싶다. 안그래도 지금 있는 제자리에 그대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서 뛰어야 한다는 붉은 여왕의 역설도 있지 않은가...... 전공하는 것도 아닌데 즐거움을 위해 듣는 음악에서까지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약간의 공부에 시간을 투자할 의욕이 있다면, 이 책은 아주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형식 자체를 공부하는 일은 늘 언제 어디서나 관계의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던가. 약간의 노력은 언제나 이롭다. 경험상으로는 그랬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가는 여정은 고통스럽습니다. 절정을 향해 느리게 그러나 쉼 없이 진행하는 바버의 <아다지오>처럼 우리가 버티고 살아가는 삶처럼요. 하지만 카뮈는 '돌덩이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그 캄캄한 산의 광물 조각 하나도' 시지프에게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산꼭대기를 향하는 투쟁이 인간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때문입니다. 끝없는 고행과 절망의 끝에서 누리는 찰나의 자유, 그리고 다시 시작. 삶이라는 여정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의 충실함이란 때때로 경이롭습니다. -54쪽


삶의 여정에 반드시 올라야 하는 정상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모두가 투쟁적으로 무언가를 수행하며 살지는 않지만 반복적으로 뭔가를 거듭해가며 삶을 엮는다. 그것은 어쩐지 변주곡의 형식을 닮은 듯도 하다. 그게 무엇이건 자신이 배우고 익혀서 알게 된 것들을 엮어서 하나의 큰 이야기로, 타인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자잘한 이야기들로 나누어 들려줄 수 있는 삶은 퍽 풍요로울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예술도 한여름 밤의 꿈과 비슷합니다. 예술은 마술을 걸듯 현실 세계에서 우리를 분리해 내어 꿈꾸게 만듭니다. 꿈이 깨면 환상은 사라지지만 심장을 뛰게 했던 격정은 여전히 남는 것처럼, 작품이 끝나고 나면 남은 여운 덕에 고달픈 현실을 다시 마주할 힘이 마음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솟아납니다. -286쪽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멀게만 느끼는 클래식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곁길을 열심히 내고 있는 저자의 마음도, 아마도 고달픈 현실을 견디게 해줄 좋은 친구 하나를 더 알려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한 게 아니었을까. 정말로 좋은 것은 나눌수록 더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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