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뛰어들 용기가 필요할 때

단요, 다이브

by 담화

http://aladin.kr/p/KPGOs


2057년, 서울은 물에 잠긴다. 수몰되어 버린 옛 도시, 여전히 망령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감겨 있는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제 무슨 구 어디 동이 아니라 어느 산에 사는 것으로 자신들을 구분한다. 이를테면 둔지산이나 남산 같은. 생활필수품 외에 뭔가 그럴싸한 물건을 건져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물꾼이 되어 잠겨버린 수면 아래의 옛 서울을 뒤지는 지극히 아포칼립스적인 세계에서, 선율은 인간과 다를 바 하나 없지만 인간일 수 없는 (...이라면 물에 다 불어버렸을... 테니까?) 기계 인간 하나를 찾아낸다. 서로 다른 산에 사는 어린 물꾼들이 각자 확보하고 있는 소중한 것을 내걸고 물 아래 잠긴 서울에서 쓸모 있는 뭔가를 가져오는 시합에 나섰기 때문에.


그 내기에서 물러설 수 없었기 때문에 나선 물질에서 찾아낸 기계 인간의 전원을 올린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기계 인간이 아니라 수호라는 이름과 기억을 가진 하나의 인격, 하나의 존재가 된다. 수호는 자신이 흡사 물건처럼 취급되고 있음을 알아도 기꺼이 그 내기에 나가 주는 대신 하나의 조건을 내건다. 제가 잃어버린 4년간의 기억을 찾아 달라고. 선율이 수호를 찾아냈던 큐브에 들어있던 팸플릿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아이콘트롤스의 최첨단 시냅스 스캐닝 기술은 고인의 기억과 의식을 그대로 구현합니다. 평생 플랜 구독을 통해 당신의 아이를 다시 한번 품에 안으세요. 부모님에게 못다 한 말을 남기세요. -15쪽


그러니까 수호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아이의 기억과 의식을 데이터 형태로 다운로드한 누군가의 복사본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의식을 제 것처럼 받아 안은 채로 타인의 삶을 대리하여 살아내야 하는 의무를 진 수호는 무엇일까?


그런 순간이 뭉쳐 구체적인 의심이 된 날부터 수호는 자신의 기능이 무엇일까 자문하기 시작했다. 항상 웃고, 씩씩하게 돌아다니고, 말을 잘 듣는 것. 화도 싫증도 내지 않고 영원히 햇살 아래에서 반짝이는 것. 미래도 과거도 묻지 않고 모든 시간에서 한결같은 것. 그건 딸의 기능이 아니었고 사람의 기능도 아니었다. -156쪽


선율은 문자 그대로 물에 잠긴 서울을 향해 뛰어들고 dive 수호는 잊혀진 시간을 기억해 내기 위해 뛰어든다 dive. 때로는 그냥 그대로 잊혀지게 두는 것이 나은 것도 있지만 과거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과거를 직시해야만 하는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워서 피하고 싶은 마음을 끌어안은 채로 뛰어드는 것일 테다. 직시하기 위해서. 극복하기 위해서. 두려워하는 것과 마주하기를 선택할 때 비로소 과거에 침잠하는 대신 다시 물 위로 올라올 수 있을 테니까.


삶은 어떤 식으로든 끔찍했지만 어떻게든 계속되기도 했고, 둘 사이에는 절묘한 균형이 있었다. 당장에라도 모든 걸 끝내 버릴 것처럼 진저리를 내다가도 결국에 내일을 마주하는 균형이. 거기에 이름을 붙이지는 않기로 했다. 그게 희망이든 타성이든 이제는 아무 상관없었다. -158쪽


지오는 끝내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아마도 마음의 힘일 것이다. 뾰족뾰족한 기억 위에 시간을 덧붙여서, 아픔마저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고통을 지우는 게 아니라, 잊는 게 아니라, 피해 가는 게 아니라, 그저 마주 보면서도 고통스럽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다시, 다른 시간의 발판이 된다는 것. -183쪽


이제는 성장담이 필요한 나이가 아니라 생각해도 여전히 누군가가 어떤 고통을 극복하는 이야기에서 용기를 얻을 때가 있다. 격려를 건네받을 때의 뭉클함이 있다. 그런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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