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속속들이 아름다운 문장들로 채워진 글을 만날 때가 있다. 우스운 건, 그렇게 어디 한 곳 빠트릴 수 없이 밀도 높은 문장들로 가득한 책에 대해 끼적거리기가 아주 힘들다는 거다. 여백이 없달까, 끼어들 틈이 없달까. 계속 눈길이 머무는데 감히 말 한번 붙여보기엔 너무도 대단한 사람 같아서, 나처럼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말을 건다고 돌아봐나 줄까 싶은 그런 사람을 멀찍이서 쳐다보는 기분 비슷한 게 들어버린다. 그래서 그렇게, 너무 대단한 너무 좋은 나머지 좋아요, 좋아합니다. 그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하고 기억 속에 묻어버린 책들이...... 참 많다(갑분 고백 뭔데). 비록 누더기 같은 말일지언정 그래도 좋다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서는 게 너무 쓸쓸하게 느껴져서 이제는 정말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데, 하고 훗날의 내가 비웃을지언정 이제는 뭐가 좋았다고 말이라도 해보려고.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서(사람 아니다. 책 얘기다. 진짠데).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예술이 있다. 그만큼 많은 예술가와 예술평론가가 예술에 대해 말하기를 거듭했고 여전히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므로 예술에 대한 말들은 예술이거나 예술이 되고 싶어 하는 그 모든 것들의 곱절쯤 많을 것이다. 혹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소개받았을 때(누구한테 소개받았는지 요즘은 조금 귀찮아서 메모하기를 게을리했더니 벌써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세월 따라 퇴보하는 몹쓸 기억력이여...) 귀가 쫑긋했던 건 이것이 드물게 '공연예술'에 관한 에세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에세이를 사랑하는 동시에 싫어한다. 이 모순성이 성립하는 이유는 언젠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아무튼, 이 특별한 형식의 예술은 쉽게 바스러진다. 찰나의 순간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져서 붙잡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조금 형식은 다르지만, 어쨌든 감상자가 두 가지 이상의 요소에 집중해야만 하는 볼거리라는 측면에서는 영화와 비슷하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내가 오랜 시간 추종해 온) 모 유명 평론가는 영화를 볼 때마다 A4용지를 착착 접어서 바쁘게 메모해 가며 영화를 본다고도 하더라만. 그러니까 이러한 예술을 감상할 때 분석적으로 관람하고 논하느냐, 흠뻑 빠져들었다가 현실로 돌아온 후 그것이 남긴 어떠한 감수성적인 측면의 인상에 대해 후술 하느냐의 차이 정도가 있다고 하면 될까. 그런 까닭에 저자는 미리 경고의 말을 건넨다.
그러나 아무리 현재적이어도 그 글쓰기는 공허를 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글은 독자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문학 비평이나 영화 비평을 읽는 것처럼 공연 비평을 읽지 않는다. 글을 읽다 흥미로울 경우 뒤늦게 찾아볼, 작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당신은 내가 본 그것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묘사하는 나의 문장은 당신에게 기어코 낯설 것이다. 나의 흥분은 기이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독서를 계속할 인내를 품기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때로 무언가에 막히고, 충격으로 아득해지고, 성찰의 거리를 취하고, 다시금 용기와 다정으로 몰두하고, 기필코 뒤돌아 나 자신을 또한 응시함으로써 굳건해진다. 그리고 어떤 예술은 이 같은 시선의 아찔한 편력을 돕는다. -55쪽
어떤 예술을 관람하고 그에 대해 모종의 감수성을 형성하는 일은 자신의 시선을 확립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곧 내가 세상을, 내게 낯선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수용하는가를 확인하는 일이고 종국에 그것은 나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일과 같다. 비교적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 뜻밖에 상상 이상으로 옹졸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임을 마지못해 인정해야 할 수도 있다. 굳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러면 좋지'를 넘어서 항시 '당연한 걸 묻네'로 향한다. 늘 하는 말인데, 우리는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도구로 활용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훌륭한 여러 문화예술이고.
사실 저는 공연을 보자마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매우 싫어합니다. 발화의 형식 안에 한번 가둬버리면, 그 밤 저를 사로잡은 감각의 아득함이 처연히도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되도록, 가능하다면 오래오래 혼자서만 간직하고픈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66쪽
책의 구석구석에 감응하며 읽었음에도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깔끔한 글이 못 되더라도 일단 내게 왔던 한 권의 책이 빠져나가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2천 자 전후의 글로 그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를 선호하는 나와 완전히 반대되는 이유로 저자는 공연을 관람한 직후 바로 글을 쓰는 것을 저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자기만의 합당한 이유가 있는 거구나 싶어 재미있기도 하고. 저자도 말했듯이,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그는 나와 다른 영혼이었다. (...) 카스텔루치와 달리, 나는 동시대적인 것만을 다룬다. 그토록 가까운 것들로부터 나는 도망할 수 없다. 굳이 반복할 필요 없는 닮은 아픔에 대해 언제나 썼다. -184쪽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위적인 공연예술과 급진적인 예술가들에 대한 글이 그들의 놀라운 예술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해하기에 품이 드는 글을 무조건적으로 밀어내는 경향성이 짙어지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책으로 판단할 사람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대척을 이루는 관념이, 존재가 있는 세계가 건강한 것임을 잊지 말기를.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시선을 갖게 되기를. 그리하여 타인을 배척하기에 앞서 타인의 다름을 포용할 수 있는 여백을 갖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수많은 계기를 외면하지 않기를. 아름다운 글을 써주신 저자께 감사의 마음을 남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