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브리얼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내일 아무것도 기대할 일이 없을지라도,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고 행복임을 아마도 알고 있을 것 같은 샘, 안녕. 당신은 1/4 한국인이니 어쩌면 내가 쓴 이 문장 그대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잠시 생각했다가,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맙니다. 아닐 것 같아요. 언어라는 건 의외로 정밀한 코드 위에 설계된 거라 그 세계에서 오랫동안 자신을 묻어온 거주자가 아니면 반사적으로 반응하기 힘든 구석이 있거든요. 게다가 당신의 어머니도, 조부모도 쭉 영어로만 대화해 왔을 것 같아서요.
마음에도 없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인간의 두뇌가 실로 훌륭하게 코딩됐다는 증거는 '아 어쩌라고'의 뜻으로 '죄송합니다'를 발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샘은 생각했다.
(...)
그러나 본래 정직하고 예의 바른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말하면서 저것을 뜻하거나 느끼거나 행동까지 가능케 하는 이 필수불가결한 프로그래밍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 -15쪽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맞닥뜨린 이 문단에 이르러 저는 샘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당신이 생각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긴 한데 그 '보통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진 않아요(아마도?). 당신이 얼마나 born to be a programmer 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락인 셈이죠.
세상에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샘 매서 하나뿐인 건 아닐 거예요. 특히 게임에서 긍정적인 정서에 흠뻑 젖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그런 생각 안 해봤을 리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게임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아늑한 안정감을 주는 세계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테니까. 그리고 샘은 그런 게임들- 무엇보다도 동키콩과 함께 조금 힘겨웠던 유년기를 지나왔던 어린이들 중 하나였을 테고.
"아냐, 내 동기는 아주 단순해. 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그거 좀 진부하게 들리는데." 세이디가 평했다.
"그렇지 않아. 우리 어렸을 때 게임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오후 내내 신나게 놀았던 거 기억나?"
"당연하지." 세이디가 말했다.
"난 가끔 무시무시한 통증에 시달렸어. 죽고 싶다는 마음을 누르게 해 준 유일한 건, 잠시 내 몸을 벗어나 완벽하게 기능하는 몸, 사실 완벽 그 이상이었지. 그런 몸에 들어가서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
(...)
"하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기분 좋은 걸 만들고 싶어. 우리 같은 꼬마들이 잠시나마 자신의 문제를 잊은 채 플레이하고 싶어 할 만한 것을." -119쪽
그래서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소년 샘은 플레이어에서 제작자로 탈바꿈합니다.
다른 사람하고 같이 노는 것은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 그것은 속마음을 열고, 나를 드러내고, 그 때문에 다치더라도 감내하겠다는 뜻이다. -44쪽
이런 철학을 갖고 있었던 샘이 세이디를 친구로 받아들인 이후, 가족 이상으로 가까운 이로 여기게 됐을 때의 감정이 쭉 지속됐다면 어쩌면 샘의 인생은 보다 평탄했을 것이고 이야기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물 드라마처럼 흘러갔을 거예요.
그 미로들은 세이디를 위한 것이었다. 게임을 디자인하는 일은 결국 그 게임을 플레이할 사람을 그려보는 일이다. -45쪽
하지만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본격적으로 게임 산업에 뛰어들게 되자 친구가 그리 많지 않았던(없었던 쪽에 가까웠겠지만) 샘이 세이디와 쌓았던 우정은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색을 달리하게 됩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친구보다 동업자, 경쟁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는 사업 파트너 관계로 변해가며 예상치 못한 감정들이 끼어들었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워졌을지 상상이 가요. 거기에 동업자로 가세한 샘의 친구 마크스는 이렇게 쿨하게 충고하죠.
"우정이란, 일종의 다마고치 키우기 같은 거거든." -99쪽
우정은 다마고치 키우기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다마고치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죠. 다마고치는 일방적인 돌봄만으로도 충분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요. 관계의 지속이 확실하게 보장되죠. 예측가능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정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다마고치와 달리 상대도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자신만의 옳고 그른 기준이 있지 않던가요. 갈등이 없을 수 없는 관계잖아요. 게다가 머리 아프게도, 샘과 세이디는 아주 오랜 친구지만 그 이상으로 오래된 말장난 같은- 이성 사이에 어떻게 우정이 성립해,라는 언설에 기어코 휘청이는 순간이 스쳐가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그 모든 상처와 추억을 함께 안고 갔을 때 그것은 위대한 우정이 됩니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받길 원했지만 이해받지 못한 상처를 안고 감정적으로 뒹굴었던 진창의 기억을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그 순간에 이른다면 말이에요.
"놀이를 하는 사람들. 그게 우리 게임 중 하나일 때도 있고. 그냥 아무 놀이라도 상관없고.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상상하면 저 밑바닥에서 희망이 살짝 느껴졌어. 아무리 세상이 엿같아도 거기엔 반드시 놀이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619쪽
당신들의 인생을 뒤흔들어버린 비극적인 사건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 덕분이 아니었을까 짐작해요. 맥베스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은 스산하게 다가오는 종말을 암시하지만 샘 매서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희미한 희망과 의지로 빛나는 내일이네요. 건투를 빌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