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매티슨, 연과 실
앨리스 매티슨은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미국에서는 꽤 유명한 작가이자 작가 지망생들의 멘토인 듯하다(책을 읽어보고 여기저기 좀 뒤져본 뒤에야 알게 된 사실). 「연과 실 : 잡아라, 그 실을, 글이 다 날아가 버리기 전에 The Kite ant the String : How to Write with Spontaneity and Control—and Live to Tell the Tale」은 매티슨이 자신만의 글을 쓰고자 하는 지망생들에게 건네는 친절한 지침서이다. 특히 소설과 회고록 memoir에 한해서.
대단히 직관적인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연은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즉흥성을 의미한다. 좋은 글은 성실하게 규칙을 따르기만 한다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건, 어떤 종류의 글이건 써 본 사람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내가 만나는 작가들은 다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이 책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규칙과 기법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난잡한 단계들을, 처음에는 뒤죽박죽이지만 서서히 말이 되는 글을 써 나가는 비이성적이고 몽상적인 마음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글을 쓰지만 자기 글을 판단할 때, 또는 구성이나 플롯을 질서 정연하게 정리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감이 없어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용기가 없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11쪽
그러니까 매티슨은 아예 연을 띄울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과 날려보고 싶은 마음만큼은 굴뚝같은데 방법을 모르는 사람, 일단 하늘에 띄우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연과 나를 연결하는 실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기술을 모르는 사람 모두를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의미다.
언제든 쉽게 책을 덮어버릴 자유와 권리가 있는 독자를 끝끝내 마지막 페이지까지 붙들어두기 위하여 필요한 것, 그게 무엇일까. 독자가 등장인물에게 호기심을 갖고 그에게 이입하게 만드는 비법이 무엇일까. 어떤 소설이 성공하기 위하여 반드시 독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미스터리는 무엇일까. 이야기 속에서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끼도록 몰아가는 것이 왜 중요할까. 이런 것은 '등장인물'이 움직여서 '사건'을 일으키는 종류의 글을 쓰는 작가라면 늘 궁금할 질문이고 경험으로 체득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답임을 알아도 늘 지름길을 찾게 되는 물음이다. 매티슨이 바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내러티브의 본질은 단순히 내면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 -실제 세상에서 내적 상태와 동등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이다. -35쪽
뿐일까, 이 모든 기법에 통달한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할지 암담하기만 할 이들을 위해 이런 조언을 건넨다.
자신감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자신감이 별로 없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눈병처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삶의 여러 가지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글을 써야 한다는 욕구는 저절로 생겨났고, 나는 그것이 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결론을 내리려고 애쓰지 않는다. 내가 쓴 초고가 끔찍해 보이면 사실은 괜찮다거나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라고도 애써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원고가 괜찮든 아니든 어떻게든 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만 생각한다. -257쪽
그러니 내가 글을 좀 쓴다는 자신감 같은 걸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을지라도 글에 조금의 미련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책이 부르는 독자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특히 여러 차원에서 스스로를 억압하고 살아야 했던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누구보다도 혹독하게 스스로를 검열해 왔던 이들이 자신을 글 속에서 자유롭게 풀어주는 해방감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일이 결국 다시 혼자 상상하고 혼자 질문하며, 홀로 답을 찾는 일임을 깨닫게 되고 계속되는 회의감을 견디는 일임을 알게 되어도.
작가는 늘 어딘가에서 실패하고 그 실패를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읽히는 시간의 수십 배, 수백 배에 달하는 시간을 쏟아부어 뽑아낸 한 문장이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하지 못했어도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끝까지 말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게다가 이토록 지독하게 실패해도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음에도)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을 용기가 있다면 쓰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늘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