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글

권민경, 등고선 없는 지도를 쥐고

by 담화

나는 어릴 때 대인공포증이 있었다. 누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그렇게까지 겁을 낼 필요가 있었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따름이다.


9쪽의 프롤로그 첫 문장을 패러디해 보았다. 권민경 시인은 '겁이 많았다'라고 했는데, 나는 구체적으로 사람에 대해, 낯선 상황에 대해 공포감이 심했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가장 큰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미지의 것이라고. 가족과 집을 벗어나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바깥세상은 어렸던 내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공포의 대상의 윤곽을 그리기 시작하면 두려움은 곧 옅어지곤 했다. 저게 뭐라고 나는 저걸 이렇게 무서워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이어질수록 곰곰 고민하느라 공포 때문에 가시털처럼 오도독 돋아났던 신경세포가 보들보들하게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일주일에 네댓 번 정도는 읽은 책에 대해서 리뷰를 쓰고 있는데, 제일 쓰기 힘든 장르의 책이라면 단연 에세이다. 도무지 에세이에 대해서는 여는 문장부터 뭐라고 써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이토록 사적이고 내밀한 글들에 대해 뭐라고 감상글을 보태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한두 줄이라도 뭐라고 써두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매번 '뭘 쓰냐 대체'의 기분이 되어버린다.


이럴 때 유용한 방법 중의 하나가 그 책이 나온 출판사의 임프린트나 레이블의 출간의도를 레퍼런스 삼아 (울며 겨자 먹기로) 문장을 엮는 것인데 맙소사, 지금 민음사 홈페이지 열어서 확인했다가 약간 배신감을 느꼈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당연히 카테고리 페이지에 간단한 소개글이나 기획의도를 써주셔야죠! 야망찬 의도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없다고요? 말도 안 돼. 민음사TV 채널의 열렬한 시청자로서, 갑자기 마케팅부 ***님의 성함을 부르면서 홈페이지에 레이블 별로 빨리 기획의도 올려주세요...라고 최신영상에 댓글을 달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버렸다(하지만 하지 않습니다 힘들어요).


http://aladin.kr/p/mzNls


여하간.

이 에세이집의 재미있는 점이라면, 글쓰기를 가르치는 분들이 종종 하는 조언이기도 한 '구체적인 한 명의 독자'를 생각하고 그가 좋아할 만한 글을 써라,라는 지침을 충실하게 따르는 내용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웃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최민이 재밌게 읽을 만한 소설, 읽고서 좋아할 만한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갑자기 왜 최민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추측해 보건대 나는 내가 읽었던 재미있는 소설들의 계보를 따라 올라간 것 같다. 그리고 처음 써 본 작품이면서 내게 충격을 주었던, 최민이 쓴 소설에 다다른 것이다. -26쪽


누군가가 좋아할 만한 글을 쓰고 싶은 그 욕망이 무엇인지 나는 너무 잘 안다.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우린 모두 관종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역시 현실의 지인 누군가를 단 한 명의 독자로 상정하고 쓰는 글, 이건 진짜... 뭔가... 넘어가기 힘든 벽인 것 같다.


이 글은 사실 최민이 재미있으라고 쓴 글이지만, 막상 그녀는 재미없어할지 모른다. 우리 사이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우리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제멋대로 하나의 느낌을 발견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 준 사람에게는 내 어린 시절, 어떤 한 시대를 함께한 것 같은 이상한 연대를 갖게 된다. 이 글은 그저 최민 보라고, 최민 재밌으라고 시작했지만 말이다. -65쪽


최민 (씨)가 아닌 다른 누가 봐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 건, 최민이 가지고 있을 수많은 특징과 성향과 취향 중에 우리들 사이를 이을 수 있는 공통점 한둘쯤은 있기 때문일 거다. 뭐 하나 마음 맞는 구석이 없는 사람과도 어느 순간엔 함께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우리는 어쩌면 도저히 대화가 통할 것 같지 않은 사람과도 한 구석쯤은 맞는 부분이 있을 터다.


수많은 에세이를 읽으면서, 알지도 못하는 작가들의 생활과 마음에 쓰지 않으면 안 될 어떤 상흔을 남긴 일들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며 한순간이나마 공감하게 될 때마다 생각하는 게 그거다. 따지고 보면 다들 나름으로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모두가 내가 잘못된 걸 알고 있는데 나만 인지하지 못하는 덜 되거나 모자란 부분이 분명히 있으며, 시인도 이야기하듯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168쪽) 것만 깨달아도, 큰 깨우침 하나 얻은 셈 아니겠느냐고. 그저 우리 각자가


많은 사람이 상반된 특성을 품고 살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타고난 성격을 억누르기도 하고, 반대로 없는 것들을 있는 척하며 지낼 터이다. 그럴 때가 바로 쓸쓸함이 탄생하는 순간이 아닐까.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런 쓸쓸함까지 짐작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을 미루어보지 않고 보이는 자체로 이해하는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168쪽


이런 마음을 안고 생을 버티어 나가는 존재들임만 기억하고 서로 애틋하게 여겨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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